[송미옥의 살다보면2]
배 고프면 음식 갖고 서로 싸우게 되고
배 부르면 자존감 높아지고 여유 생겨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면서 알게 된 것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도시 외곽마을이다. 휴게소가 가깝다 보니 거기서 유기되었다는 소문만큼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많이 돌아다닌다. 유기센터에 신고를 하지만 잡으면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너나없이 측은지심으로 사료를 놓아둔다. 정이 많은 동네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에 고양이 한마리가 기거하기 시작한 요즘에 일어난 일이다. 아침 먹이를 내 놓으면 어디서 오는지 별별 고양이들이 모여 현관 앞이 전쟁터가 되었다. 꺼멍이 얼룩이 점박이 등등 아침이면 빠지지 않고 출근하는데 얼마나 살벌한지 모른다.
우리 집을 터전으로 잡은 노랑줄무늬 고양이의 밥그릇 사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얼마 전엔 한 녀석의 눈두덩이 찢어지고 어떤 녀석은 귀에서 피가 흘렀다. 치료를 해주고 싶어도 내가 나가면 모두 도망간다. 싸우는 건 영역다툼 때문인데 야생동물들의 타고난 습성이라 했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듣기에도 예민해진다. 왜 하필 우리 마당에서 어수선하게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딸은 친정에 올 때마다 고양이 간식을 한보따리 들고 온다. 눈치 보며 기웃거리는 그들이 애잔해서 여기저기 간식을 놓아주며 이름을 지어 부른다. 치즈, 다롱이, 까망이 등등 이름도 예쁘다. 언젠가부터 딸의 모습이 보이면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서도 쏜살같이 달려와 야옹거리며 딸의 바짓단을 몸으로 슬쩍 비비거나 잡아당긴다. 밥 주는 나에겐 본척만척하는 녀석들인데 그렇다면 사람을 차별해서 알아본다는 거다.
얼마 전 지인의 집에 가서 본 풍경이 생각났다. 고양이 사육장도 아닌데 마당에 고양이 무리가 서로 어울려 놀고 있었다. 거기 녀석들도 유기묘라고 했다. 사람에게 손을 안 주지만 피하지 않고 유령 보듯 서로 스쳐 지나다녔다. 한 마리가 친구를 부르고 새끼를 낳고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지금은 고양이 공원이 되었단다.
고양이들이 모여 있어도 싸우지 않았다. 농원도 볼거리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는 듯한 모습은 더 눈길이 가고 신비했다. 우리 집 녀석들은 만나면 싸우고 다치니 보는 마음도 상그럽다고 푸념하며 평화로운 동물 공원 같은 지인네 마당을 딸에게 보여주었다.

딸이 사진을 보더니 진즉에 말하고 싶었던 풍경이라며 슬쩍 돌려서 말한다.
“고양이 눈으로 보면 엄마네 집은 뉴스에 나오는 못된 원장이 경영하는 고아원이지. 밥을 쬐금밖에 안 주잖아.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공평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랍니다. 호호호.”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반찬이라곤 푸성귀 찢어 넣은 커다란 양푼에 보리밥을 쓱쓱 비벼주면 투덕거리면서도 함께 먹었다. 꽁보리밥이라도 배가 부르면 그냥 행복했다. 배고픔은 살아있는 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이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는 탈북민도 첫 번째 이유가 배고픔이라고 한다. 지금도 전쟁 중인, 땅을 뺏기지 않으려는 작은 나라도 뺏으려는 큰 나라도 먹거리 전쟁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한 놈이라도 배불리 못 먹을 만큼 작은 밥그릇이 문제였다. 우리 집 밥그릇이 ‘나만’을 위한 거라면 거기엔 ‘함께’라는 그릇이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작은 밥그릇을 일등으로 차지한 놈은 양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위협받는 고난을 치러야 했다. 지인의 마당처럼 우리 집에도 밥그릇과 물그릇을 폭이 넓은 그릇으로 바꾸었더니 요즘은 거짓말같이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도 밤새 어디서 헤매다 왔는지 세 마리가 모여 함께 주둥이를 박고 아침을 먹는다. 배가 부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 함께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관련기사
- [송미옥 더봄]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 [송미옥 더봄] 할머니들의 지갑을 열리게 하는 블루베리의 색다른 효능
- [송미옥 더봄] 설거지 블루스(4) 인심 좋은 앞집 언니가 휴게소 직원용 밥을 맡게 된 사연
- [송미옥 더봄] 설거지 블루스(3)-실버 취업, 마음을 바꾸니 고된 일도 보약
- [송미옥 더봄] 설거지 블루스(2)-고속도로엔 차들이, 개수대엔 접시가 휙휙~
- [송미옥 더봄] 설거지 블루스(1)-밥 잘 주는 앞집 언니
- [송미옥 더봄] 가즈아 두바이~ 살아 있으면 어디든 못 가랴
- [송미옥 더봄] 궁지에 몰렸을 때 선뜻 손 내밀어줄 친구, 있나요?
- [송미옥 더봄] 우리집의 막강 권력자 그녀를 소개합니다 (1)
- [송미옥 더봄] 우리집의 막강 권력자 그녀를 소개합니다(2)
- [송미옥 더봄] 24시간 잠을 자라고 한다면
- [송미옥 더봄] "9월에 태어난 당신은 먹을 게 많아 배는 안 고프겠네"
- [송미옥 더봄] 소형차로 장거리 운전하면서 생긴 해프닝···고향가는 길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 [송미옥 더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란
- [송미옥 더봄] 가을의 정령 도토리를 주우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