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봄이면 가장 먼저 꽃 소식을 알려주는
수선화 닮은 친구와 멋진 여행 꿈꾸다

가뭄 끝에 황금비가 내린다. 만개했던 벚꽃도 꽃비가 되어 내린다. 어제까지 감탄사를 연발하던 풍경이었는데 꽃비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깊숙이 가라앉는다. 우산도 없이 마당을 거닐다 보니 한쪽 구석에 수선화가 한 무더기 피어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가 봄을 알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추운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가 봄을 알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가을, 친구가 신변 정리한다며 옷이며 이것저것 비싼 것들을 챙겨 주었다. 베란다에 있던 수선화 구근도 보따리에 있었다. 어수선한 마음에 데려온 의붓자식마냥 보이지도 않는 마당 한쪽에 아무렇게나 묻어놓았다. 당연히 얼어 죽은 줄 알았다. 수선화는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찬 서리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일곱송이 수선화’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긴 하루 어느덧 가고 황혼이 물들면
집 찾아 돌아가는 작은 새들 보며 조용한 이 노래를 당신께 드리리.
······
나는 집도 없고 땅도 없습니다.
당장 제 손에 움켜쥘 지폐 한 장도 없고요.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저 굽이치는 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을 보여줄 수 있고
사랑의 키스와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 황금빛 수선화는 햇빛 속에 찬란히 피었다가
우리의 나날들이 다하면 시들어 가겠지요.
······'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무음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빤짝거린다. 부재중 전화가 몇 개나 와 있다. 수선화 구근을 준 친구다. 비도 오고 기분도 울적하니 매운탕 먹으러 가잔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

8년 전 안동으로 이사와 친구가 없던 나는 여성회관에서 하는 캘리그라피 반에 들어갔다. 나의 뚱뚱하고 후줄근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액세서리 하나 없이도 품위 있고 아름다웠다. 그녀와 짝이 된 후 나도 점점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는 메이크업 프리랜서다. 잔칫날, 주인공의 연령대를 넘나들며 그들의 얼굴을 화려하게 변신시켜준다. 그는 60대지만 50대보다 젊게 보인다. 거기에 마음까지 넓고 깊다. 어쩌면 그리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가장 빛나고 화려한 날을 연출해 준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고 상상해봐. 단정한 복장은 고객에 대한 예의야, 이 일은 뒷담화 소개로 역사를 만드는 곳이거든. 호호~”

그렇게 웃음을 주던 그녀가 4년 전 직장암을 선고받았다. 한동안 심한 우울함에 시달렸지만 빨리 털고 일어났다. 자식도 없고 혼자니 구차한 모습으로 오래 살 이유가 없다며 의사의 수술 권유를 외면했다. 살아온 날들이 허무해서 일도 그만두고 쉬려고 했는데 함께 일하던 후배들이 자꾸 불러냈다. 고마운 마음에 아직까지 조금씩 일한다.

서로가 자매 같고 이모 같은 존재다. 나는 마땅히 도울 게 없어서 마당에 농사지은 푸성귀를 갖다 나르고 함께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가끔씩 여행도 갔다. 그렇게 몇 년간 잘 지냈는데 작년 겨울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가니 암세포가 대장까지 전이되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에 대수술을 하고 힘든 항암치료도 이겨냈다.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가발을 머리 홀딱 빠진 뒤에야 써본다며 웃었다. 

우리가 사는 곳의 저쪽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산 너머 남쪽에는 누가 살길래~ 노래를 부르며 두바이 여행을 꿈꾸는 어느 날의 오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사는 곳의 저쪽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산 너머 남쪽에는 누가 살길래~ 노래를 부르며 두바이 여행을 꿈꾸는 어느 날의 오후.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겨울에 우리 두바이 가자. 소소한 경비는 내가 낼게. ‘TV에서 해외여행 프로를 봤는데 너무 좋더라.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한대. 지구 반대쪽 부자나라래."

죽기 전에 두바이를 꼭 가보고 싶다는 친구를 위해 차 한 잔을 마시며 세계지도를 핸드폰 화면에 꺼내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네 앞 꽃 잔치도 못 가는 주제에 우리 마음은 멀리도 갔다. 하하하.

수선화 꽃말은 ‘자기 사랑’이라 한다. 고독을 이겨낸 생명이 씩씩한 친구와 같다. 늘 긍정 마인드인 그대여, 굿바이만 아니면 된다. 살면서 보고 겪는 죽음도 삶도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면 별것 아니라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 뭐 별거 있나. 멀리 함께 걸어갈 동무가 있고 또 살아 있으니 어디든 못 가랴. 

“가즈아 두바이~ 그때까지 건강 챙기기 필수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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