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잠을 잘 잔 날은 얼굴 주름도 펴지고 미소 짓지만
잠이 부족한 날은 짜증만 나고 인상도 험악해져
일하고 남는 시간 잔다? 잠자고 남는 시간 일하라!

잠을 잘자야 하루의 시작도 잘 나간다. /게티이미지뱅크
잠을 잘자야 하루의 시작도 잘 나간다. /게티이미지뱅크

눈만 뜨면 머리어깨무릎발~ 통증을 노래하는 앞집 어르신이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6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아도 전쟁은 수시로 터지는데 그땐 나이에 상관없이 화성과 금성에서 온 외계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출석 도장 찍듯 하지만 위험한 수위를 슬기롭게 조절하는 모습은 타의 귀감이 되고 존경스럽다.

부인이 이번에  타온 병원 약은 통증 억제에 수면제 처방까지 있어서 자주 늦잠을 잔다. 새벽잠 없는 남편이지만 늦은 아침도 잘 참아주더니 어젠 불쑥 화를 냈다. 그리 잠만 자다가 고추는 언제 따고 남편 굶겨 죽일 거냐고. 가끔 버럭하는 남편이 야속하고 화가 나서 부인은 종일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럴 때 애가 타는 건 남편이다.)

오늘 새벽, 남편보다 먼저 일어난 부인이 남편을 깨웠다. 깨 털러 가자고···. 어제는 부인이 종일 입도 벙긋 안 해서 이제나저제나 기분이 풀릴까 눈치 보던 중인데 새벽에 깨우니 벌떡 일어났다. 암만, 이제는 하라는 대로 해야지 맘먹고 따라나섰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폰도 두고 나와 시간도 모르고 도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해서 밭머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보니 모기에게 다 뜯기고 앞이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배가 너무 고파 그냥 돌아서 왔단다.

할머니 함박웃음 지으며 내게 귓속말로 하시는 말씀,

“원래 깨는 볕에 바싹 말려서 대낮에 털어야 하거든. 일 욕심 많은 영감탱이 밉살스러워 새벽 3시에 깨워서 나갔거든. 호호호. 나는 망 모자 쓰고 두꺼운 옷도 입고 나갔거든. 호호호. 영감은 그냥 따라 나와서 저 팔뚝 봐라. 모기한테 다 뜯겼거든. 호호호.”

참나. 작은 위로가 되는 소심한 보복이 깨소금 맛이다. 장단 맞춰 흥얼거리는 말씨에 아픈 곳을 잠시 잊었다. 함박꽃처럼 웃으신다. 한편으론 고소하지만 모기에게 물린 팔뚝을 보노라니 애잔해서 자꾸 말을 걸어 본다.

“영감, 이거 맛이 어떠우? 간장 더 넣을까? 된장 넣을까?”

모기에게 잡혀간들 어떠리, 고생만 시킨 부인에게 어젠 밥 굶겨 죽일 거냐고 생뚱맞은 소리 했다가 종일 삐쳐있어서 좌불안석이었다. 화가 풀린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 영감님, 갓 시집온 새댁처럼 살살 눈웃음치며 말 거는 부인을 보니 그냥 기분이 좋다. 그래도 허세는 부려야 나답게 사는 거지, 짐짓 나에게 들으란 듯이 큰소리치신다.

“보래보래, 저 할망구 내게 말 걸고 싶어서 안달이다. 내가 들어주나 봐라. 으흠“

“하하하··· 호호호···”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 석양처럼 아름답다.

잠을 잘 자야 꿈도 이루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잠을 잘 자야 꿈도 이루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지만, 머리어깨무릎발이 차례로 삐걱거려도 틈새에 마취제 같은 소소한 웃음으로 최면을 거는 어른들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어떤 힘든 상황도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게 사는 날까지 행복해지는 비결 같다.

잠은 참 모순이 많다. 내가 아닌 타인이 잠이 많으면 게을러서 그런 거라며 버럭증을 내면서도 내가 늦잠을 자면 관대하기가 태평양보다 넓다. 나 역시 잠을 푹 잔 날은 바람 넣은 풍선처럼 얼굴 주름도 펴지고 하릴없이 입이 귀에 걸리는데 충분치 못한 날은 짜증만 내고 인상 험악한 불독형 얼굴이 된다. 잠이 그냥 보약이 되었겠나.

실버를 위한 강의를 듣다가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노동이나 활동을 하고 집에 와 휴식과 함께 잠을 자고 다시 많은 시간에 일과 활동을 투자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뒤집어서 활용해 보라는 거다.

결론은 하루 24시간이 잠을 자는 시간인데 잠이 안 오는 시간에 일하고 활동하라는 거다. 그러면 일도 행동도 여유롭고 더 즐거워진단다. 세상에 이런 멋진 발상이···.

달리고 달려서 무언가를 채우고 쌓아야 하는  나이를 지났으니 이젠 잠에 대한 관점을 바꿔 봐야겠다. 가끔은 달이 지고 해가 뜨고, 그 해를 머리에 이고도 잠자리를 못 벗어나는 나에게, 이불속에서 엉덩이를 쳐들고 온갖 신을 다 동원하며 잠과 흥정하는 나에게 ‘자라 자. 더 자, 푹 자···’라고 해줘야지. 자다자다 잠이 안 오면 그땐 일어나 부지런히 일해야지. 생각만으로도 여유롭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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