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9)
미야코지마 제도 둘러보기
1월 16일은 오키나와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작은 집 같은 미야코지마의 무덤
1월 16일은 오키나와(沖縄) 후손들이 모이는 날이다. 정월과 오봉(추석), 기일은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16일에는 타지에 나갔던 자손들이 다 돌아온다. 오키나와 본토에 있는 나하(那覇) 공항에서 미야코지마(宮古島) 공항까지 임시 항공편이 마련되고 회사와 학교는 임시 휴일로 정해지기도 한단다.
토지가 다르면 문화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일본 생활 30여 년이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놀라는 나를 보고 오키나와 출신인 일행이 자기도 한 달 뒤에 친정에 올 거라고 했다. 우리의 여행은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였다.
미야코지마의 묘는 작은 집 같다.
길가나 밭에 보이는 작은 건물에 눈이 갔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종종 보였다. 하나일 때도 있고 작은 집들이 나란히 혹은 앞뒤로 모여 있기도 했다. 문득 가고시마(鹿児島)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사쿠라지마(桜島)가 보이는 곳에 있는 묘에는 지붕이 있었다. 화산재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가이드에게 작은 집이 뭐냐고 물었더니 묘란다.
코로나와 태풍으로 몇 번이나 취소되었던 오키나와 여행. 어느 날 컴퓨터를 딸깍거리다가 미야코지마 2박3일 여행 상품을 찾아냈다. 직항편으로 가는 여행을 예약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 메일을 보니 나하 공항에서 갈아타는 코스였다. 다른 상품과 비교하다가 택한 듯한데, 기억이 없다. 핑계에 오키나와 본토에도 '발도장' 찍지 뭐. 기상 이변 등으로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12월 14일을 기다렸다.
오키나와 본토에 있는 나하 공항에 내렸다. 날씨가 신통치 않다. 온통 먹구름이다. 첫날은 화창할 거라는 예보여서 하루는 괜찮겠다 싶었는데 실망이다.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키나와에 왔음을 실감했다. 이곳은 미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미야코지마 공항까지 약 1시간. 공항 로비에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코로나 시대 여행에서 처음 보는 가이드였다. 갈색 피부와 깔끔하게 묶은 머리,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가 야무진 인상이었다. 두 번째 날은 자유 시간이어서 첫날과 마지막 날만 동행할 거라고 섭섭하다는 농담으로 우리를 웃게 했다.
미야코지마 제도(宮古島諸島)를 둘러보는 버스 여행. 첫날 코스는 미야코지마에 있는 스나야마 비치(砂山ビーチ)를 보고 이케마 대교(池間大橋)를 건너 이케마시마(池間島)를 구경하고, 눈소금 제염소(雪塩製塩所)에 들러 견학한 후, 이라부 대교(伊良部大橋)를 건너 이라부지마(伊良部島)로 가서 사와다 해변(佐和田の浜)과 도구치 해변(渡口の浜)을 관광하고, 시모지지마(下地島)로 가서 도오리 연못(通り池)을 구경한 후 호텔로 가는 일정이다. 부디 비만 오지 말기를.
1992년에 이케마 대교, 1995년에 구리마 대교(来間大橋), 2015년에 이라부 대교가 개통되었다. 이라부 대교는 길이가 3540m로 첫 청원에서 40년 만에 개통된 다리라고 한다. 일본에서 통행료 없이 건널 수 있는 가장 긴 다리다. 이 다리들 덕분에 미야코지마 제도를 둘러보는 관광이 가능해졌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의 표정에서 날씨에 실망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웃는 얼굴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야코지마의 바다는 구름이 껴도 비가 와도 이쁘다고. 이곳 날씨는 일기예보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안심하는 웃음이 버스 안을 채웠다.
가이드 말마따나 미야코지마의 바다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아름다웠다. 베이지색 모래밭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눈과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늘이 파랬으면 얼마나 더 이뻤을까.
바다가 보고 싶어서 온 여행이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야코지마의 문화와 풍습이다. 먼저 나쁜 기운을 막는 풍습이 신기했다. 길을 걷다 보면 '이시간토(石敢當)'라고 쓰여있는 돌이나 벽을 보게 된다. 나쁜 기운이 돌아다니다가 부딪혀서 앞에 있는 집으로 튕겨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이시간토'에 부딪힌 나쁜 기운은 부서져 사라진다고. 호텔에 있는 설명을 읽은 후로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는 내가 있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묘'를 친근하게 여기는 문화다. 묘가 집 바로 옆에 있기도 했다. 궁금하던 차에 가이드가 설명한다. 미야코지마 사람들은 묘가 무섭다거나 꺼리는 감각이 없단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묘 지붕에 올라가서 놀기도 했다고. 괘씸죄에 걸릴 것 같은데 아니란다. 그만큼 묘는 친근한 존재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묘의 지붕은 아이들이 올라가 앉아서 놀아도 될 정도로 넓었고 튼튼해 보였다.
게임기를 손에 들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나쁘지 않다. 조상님들이 "요 녀석들" 하면서 궁둥이를 톡톡 두드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1월 16일에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조상을 기린다고 하니, 조상의 영혼과 자손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자유 시간인 둘째 날은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갈 예정이었으나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책 읽고 빗속에 산책을 즐긴 후, 혼자 참여한 일행들과 오키나와 민요를 연주하는 이자카야에 갔다. 민요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흥에 겨워 춤까지 췄다. 그런데. 중학교 때에 한국 무용반이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내 몸은 로봇 같았다. 이럴 수가. 상상 속에서는 잘 췄는데. 이 당혹스러움을 어쩌냐. 강렬한 추억이 되었다.
제주도 사투리를 다른 지방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듯, 오키나와 민요를 알아듣는 일행은 한 명도 없었다. 오키나와 출신조차도. 완전히 외국어다. 탐라국이었던 제주 출신인 나는 류큐국(琉球国)이었던 오키나와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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