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8)
원폭 돔·평화의 불꽃·위령비는 일직선상에 있었다
원폭 참상은 77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형형
2박 3일간의 히로시마 여행길에 나섰다. 세계문화유산이 두 개나 있는 곳. 이츠쿠시마(厳島) 신사와 원폭 돔이다. 이츠쿠시마 신사는 언젠가 벚꽃이 피었을 때 가보기로 하고, 히로시마 시에 머물며 걷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첫날은 히로시마 현립 미술관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일본정원 슈케이엔(縮景園)을 보는 것으로 마쳤다. 미술관 입장권에 100엔만 더 내면 정원 관람까지 할 수 있다.
400년 역사가 있다는 슈케이엔은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간 정원이었다. 현립 미술관에는 원폭 피해를 다룬 대형 작품들이 꽤 많았다. 히로시마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코너에서 만난 쿠사마 야요이의 '우주에 갈 때의 핸드백' 등의 작품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달랬다.

둘째 날은 히로시마 성, 구치소 벽화, 히로시마 미술관, 원폭 돔,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히로시마 성은 딱 내가 간 날까지 내부 수리 중이란다.
천수각에 오르는 건 포기하고 벽화가 있는 구치소로 발길을 돌렸다. 5년에 걸쳐 그렸다는 200m에 달하는 구치소 벽화. 에도시대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벽 너머가 구치소라니 마음이 살짝 심란했다.

히로시마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립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히로시마 미술관은 촬영 자유였다. 그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또 봤다. 실컷 보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미술관 카페에서 맛있는 카레를 먹고, 원폭 돔을 향했다.
'원폭 돔'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공원 중앙쯤에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뒤엎는 등장이다. 시가지 길옆이다.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있어서 원폭 돔은 일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상의 흔적이 일상이라니. 보존하느냐 없애느냐로 고민할 만도 했겠다 싶었다. 입구에 있는 비석에 합장하고 철책 너머의 원폭 돔을 돌아봤다.

원폭 돔이 있는 곳과 평화공원을 잇는 다리를 건넜다. 조금 걸어가니 '원폭 어린이 상'이 보였다. 원폭 피해로 숨진 어린이를 위한 위령비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이학이 걸려 있다.
누군가 종을 쳤다. 아이들 조각상이 아름다운 종소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하다. 저 종은 아무나 칠 수 있나? 잠시 생각했다. 결론은 누구나 쳐도 된다였다. 나도 조심스레 종을 쳤다. 낭랑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평화의 불꽃'으로 이동한다는 수학여행단 뒤를 따랐다. 가이드가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한다. 불꽃은 두 손을 모았다가 펼친 듯한 구조물 중앙에서 불타고 있다. 한순간도 꺼지는 일이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핵무기가 사라지는 날 '평화의 불꽃'은 꺼질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평화의 불꽃 너머에 위령비가 있다. 학생들 옆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2022년 현재 원폭 피해 사망자 수는 33만3907명이다. 사망자 수는 매해 3000명에서 4000명씩 늘고 있다. 위령비 안에 있는 사망자 명부는 124권이나 된다.
수학여행단을 안내하는 방식은 관광 가이드와 안내 봉사단에 따라 달라 보였다. 가이드들은 청산유수 같은 설명을 하지만, 묵도를 유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 또한 그저 원폭 피해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공원이라는 정도의 이해만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장면을 보았다. 지긋한 나이의 안내 봉사자가 설명을 듣기 전에 함께 묵도를 하자고 학생들을 유도했다. 나는 왜 그저 사진만 찍었을까. 서둘러 손을 모았다.

그런데 손을 모으며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는 내가 있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하여 10개월째로 접어든 전쟁.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목숨을 건 저항. 문득 머리가 복잡해진다. 과거에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나라의 평화공원에서 현재 침략을 받아 힘이 든 나라를 염려하는 상황이었다.
위령비 너머로 평화의 불꽃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려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저 멀리 원폭 돔이 보인다. 위령비와 평화의 불꽃과 원폭 돔이 일직선상에 있다. 어떤 사람이 설계했지? 설계자의 의도를 접한 느낌이었다.
이 글을 쓰며 찾은 설계자의 이름은 탄게 켄조(丹下健三/1913~2005). 히로시마의 재정비에 정열을 쏟았고, 원폭 돔을 보존할 것인가 없앨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일었을 때, 후세를 위해서라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건축가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자료관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 원폭 피해의 참상을 보고 난 후 힘들어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서 잠깐 본 것만으로도 충격이 컸었다. 여행 첫날 본 히로시마 출신 화가들의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무거웠다. 자료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을 보며 나는 숙소로 향했다.
여행 마지막 날. 도쿄로 돌아가기 전에 히로시마 성을 찾았다. 천수각에서 원폭 돔이 보일까. 보였다. 제주도의 4.3 평화공원이 떠오른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4.3이 밀접한 것이듯,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원폭 피해의 기억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매해 치러지는 추도식에 대한 타지방 사람과 히로시마 사람들의 온도 차가 클 것임은 상상하고도 남았다.
히로시마현 지사는 세계를 향해 핵무기 근절을 외치지만, 수상은 그 외침에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현실. 핵무기가 사라지는 날 꺼질 것이라는 평화의 불꽃이 꺼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느긋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동네 산책이나 즐기려던 히로시마 여행은 원폭 돔과 평화공원의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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