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4)
이바라키현(茨城県)히타치시(日立市)의 JR히타치역
새벽 3시에 출발한 미니여행··· 일출명소에서 아침까지

한 5~6년쯤 일출과 노을에 빠져 살았다. 빠져 산다 해서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집 옥상이나 걷기 운동을 하는 강가에서 소소히 즐기는 정도다. 건물들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하루가 밝아옴에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룰루랄라다.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신이 난다. 하루를 마감할 즈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무사했던 하루에 감사한다. 얕아졌던 숨이 깊어지고, 굳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인터넷 세상에서 보는 멋있는 일출과 일몰은 내 눈을 호강시켜 준다. 붉게 물들어가는 수평선이나 산능선 풍경은 동경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컴컴한 시간에 길을 나섰을 사진가들. 그저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 순간에 그곳에 있었을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작심했을 즈음, 어떤 경로였는지는 잊었으나 붉은색에 가까운 오렌지색으로 물든 역의 사진을 보았다. 한국 블로그였는데 일본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역'이란다. '이런 데가 있어? 어디지? 도쿄에서 가까운가?' 눈이 커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유리창이 온통 오렌지색이었다. 유리창은 물론 바다가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가보고 싶었다. 검색을 시작했다. 도쿄에서 가까운 이바라키 현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지만, 첫 전철을 타고 가도 일출을 볼 수는 없다. 나는 뚜벅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차까지 처분해서 우리는 자가용도 없다. 어쩌지? 미리 가서 숙박해야 하나?

살짝 고민하는 동안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 친구들한테 물어보자.' 라인 그룹 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일출이 보이는 역이 있다는 데 갈 사람 있어? 문제는 누군가가 운전해서 가야 해'. 한 친구가 그런 데가 있었냐고 손을 들었다. 일본인들에게도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인 거다.

일정을 조정하고 날을 잡았다.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해 뜨는 시간 5시 20분. 목적지까지 2시간 정도 걸리니 3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마음이 설렌다. 이미 여행은 시작된 거다. 일출 보고 역 안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 먹고 돌아오는 미니 여행이다.

 

고속도로에서 본 새벽 하늘. 서서히 물들고 있다. 마음이 급해진다. /사진=양은심
고속도로에서 본 새벽 하늘. 서서히 물들고 있다. 마음이 급해진다. /사진=양은심

바닷가에 있다는 유리창으로 된 전철역을 향해, 두 여자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파란 하늘 끝에 보이기 시작한 오렌지색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제발 수평선에도 구름이 없기를. 온통 오렌지로 물드는 일출을 볼 수 있기를!

드디어 역에 도착. 수평선에 짙은 구름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쉬웠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불타오르듯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는 사진에 반해서 꼭두새벽부터 만나러 온 바닷가 역 안. 아쉽게도 작품 사진이 나올 만한 일출은 아니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건 유리창이 상처 투성이었다는 거다. 붉게 물들었다면 몰랐겠지만 이 날의 햇살은 역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이지 못했고, 유리의 상처가 눈에 띄었다. 성스러운 일출을 앞에 두고 나는 왜 유리창에 난 상처에 눈이 갔을까.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역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성스러운 일출의 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사진=양은심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역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성스러운 일출의 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사진=양은심

차라리 밖에서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역 밖으로 나왔다. 역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최고다. 서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잠시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전신으로 햇살을 받아들였다. 집 옥상에서 보는 일출과는 달랐다. 집 옥상에서 보는 일출은 일출이 아니었다. 일출이 다 끝난 후였던 거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옥상에서 보는 소소한 나의 일출은 하루를 여는 숭고한 순간이다.

 

아침 5시 반쯤, 일출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진=양은심
아침 5시 반쯤, 일출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진=양은심

사람들이 빠져나간 시간. 알콩달콩 사진 찍기 놀이하는 젊은이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어찌나 이쁘던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아이들. 우리도 젊은이들 흉내내어 실루엣 사진을 찍어봤다. 요즘은 나를 넣어서 찍는 사진에 관심이 없다. 찍는다 해도 멀리서 찍는 사진이 좋다. 내가 내 얼굴 사진 보는 게 어색하다.

 

노을에만 관심이 갔던 나를 놀라게 한 장면이다. 해가 뜨고 난 후 사람들이 다 떠난 곳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즐기는 관점이 다름을 느꼈다. /사진=양은심
노을에만 관심이 갔던 나를 놀라게 한 장면이다. 해가 뜨고 난 후 사람들이 다 떠난 곳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즐기는 관점이 다름을 느꼈다. /사진=양은심

일출을 감상하는 이벤트 홀 오른쪽에 있는 카페는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일출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는 국도 6호선 '히타치 바이파스(日立バイパス)'를 드라이브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바다 위를 달린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듯하여 바다위 길이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 산책을 했다. 바다 건너에 보이는 공장지대가 환상적이었다. 어슴프레 보이는 모습이 꼭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성 같았다. 내 눈에 환상으로 보이는 그곳에는 누군가의 현실이 살아 움직이고 있겠지.

 

오른쪽에 바다 위에 만들어진 국도 6호선 '히타치 바이파스(日立バイパス)'가 보인다. 그리고 정면에는 공업단지가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사진=양은심
오른쪽에 바다 위에 만들어진 국도 6호선 '히타치 바이파스(日立バイパス)'가 보인다. 그리고 정면에는 공업단지가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사진=양은심

7시가 되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로 안내 받았으나 햇빛이 너무 따가워 햇살이 안 드는 안쪽 자리로 이동했다. 노안인 우리에게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너무 혹독했다. 우리가 비운 자리에는 젊은이들이 자리했다. 뜨거운 햇살에 꿈쩍도 하지 않고.

검색하면서 눈독을 들였던 핫케이크와 주스를 주문했다. 코로나 시대, 오래간만의 친구와의 외출. 맛있게 식사까지 마치고 우리는 귀갓길에 올랐다. 빨리 집에 가서 한숨 자자는 말과 함께. 아침 8시였다. 목적을 달성해서인지 알차게 하루를 마친 기분이었다. 이제 하루의 시작인데 말이다. 

 

아 카페에 가면 한 번은 먹어보라는 핫케이크다. 꽤 볼륨이 있었지만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사진=양은심 
아 카페에 가면 한 번은 먹어보라는 핫케이크다. 꽤 볼륨이 있었지만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사진=양은심 

히타치역 건물은 이 지역 출신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 씨가 디자인했다. 2011년에 완성했으며 2014년 철도 국제 디자인 컨테스트 역사(駅舎) 부문 '블루네일 상'을 수상했다.

 

차에서 바라본 역 이벤트홀과 카페. 건물이 꺾이는 곳에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 홀이 있다. 툭 튀어나온 곳이 카페다. 오로지 바다를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양은심
차에서 바라본 역 이벤트홀과 카페. 건물이 꺾이는 곳에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 홀이 있다. 툭 튀어나온 곳이 카페다. 오로지 바다를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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