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2)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바뀐 여행 일정
꿩 대신 닭 심정으로 찾아간 불상
규모에 압도됐지만 교통비만 10만원
나 홀로 당일치기 여행 가는 날. 2021년 9월 1일. 이바라키 현(茨城県) 미토 시(水戸市)에 있는 일본정원 카이라쿠엔(偕楽園)을 향해 출발했다. 이 곳에 가보고 싶어진 이유는 일본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정원에 관심이 갔는가. 코로나19 때문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이시가와 현(石川県)의 켄로쿠엔(兼六園)이 코스에 들어있는 단체여행에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3대 정원의 하나가 도쿄에서 가까운 이바라키 현에 있다니 그 전에 봐 두자는 계획이었다. 3대 정원의 또 하나는 오카야마 현(岡山県)의 코라쿠엔(後楽園)이다.
룰루랄라. 나 답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했기에 여유로웠다. 우아하게 갈아타는 전철 홈에 도착. 우선 전광판을 확인했다. '왜······?!' 내가 탈 전철 안내가 없다. ‘1번 홈 맞는데?’ 스마트폰을 보이며 역원에게 물었다. 전철회사가 다르니 개찰구를 나가서 다른 홈으로 가란다. 우아하게 서 있던 발에 모터가 달렸다. 전력 질주. 운동화에 감사 감사. 10시 31분 출발 특급 열차. 보인다. '문이여! 닫히지 말아라!' 후다닥... 싹! 세이브! 도루에 성공한 야구선수 기분이다.
조금 있으니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리에 털석 앉아 흘러내리는 땀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평일 오전. 전철 안은 텅텅 비었다.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고 도쿄의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도중에 우시쿠(牛久)라는 역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동네 이름인데 이 역을 보는 건 처음이다. 남편의 고모님들이 사셨던 동네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자매들이 다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전쟁을 겪으신 분들. 전후의 고난을 살아낸 분들이다. 누군가 이 동네에 정착했고 여자 형제들을 불러 모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착한 도쿄에 내 여동생이 왔듯이 말이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새파란 것들도 있어서 품종이 다르구나 하고 짐작만 한다. 시간 조정을 위해 멈춰 있는 열차 안에서 상상을 해 본다. 이 곳에도 '지주'라는 사람이 있겠네. 『토지』의 평사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남의 땅을 빌려 농작물을 심었던 내 부모님 생각도 났다. 도대체 '땅'이라는 건 뭔가. 생각하지 말자. 하지 마. 나는 지금 여행 중이야.
11시 40분. 연근 밭, 토란 밭, 벼가 익어가는 논을 봐서일까. "오늘 점심은 아주 맛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목적지인 카이라쿠엔(偕楽園) 사진들을 보며 꿈에 부풀었다. 매화와 벚꽃이 필 때가 절정이라지만 지금은 배롱나무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 오는 날의 정원은 생생하고 좋을 거다. 비가 와서 사람이 더 없을 거란 기대도 함께. 그러다 들어간 홈페이지. 9월 12일까지 임시 휴일. 코로나19 때문에. 하아!
다른 곳도 관공서에서 하는 모든 시설이 휴일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멍했다. 읽다가 덮었던 책을 아예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미토 역에 도착.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 건물 외에는 사람 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어디서 밥을 먹지.
호텔이 보였다. 느긋이 점심 먹고 책이나 읽다 가야지. 이바라키 명물 '히타치 쇠고기' 덮밥 요리를 시켰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 동네다운 뭔가를 해야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와인 생각이 났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알코올 제공을 하지 않는단다. 대신에 논알콜 와인이 있다고 권해온다. 의심스러웠지만 없는 거 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주문했다. 그런데 없는 게 나았다. 요리는 쇠고기가 부드러웠던 것과 양하를 써서 좋았던 거 외에는 큰 감동이 없었다. 이래저래 정말 아쉽네.
디저트로 커피를 마시다 문득 '우시쿠 다이부쓰(牛久大仏)' 생각이 났다. 이곳으로 올 때에 본 우시쿠(牛久)의 명물인 거대한 불상이다. 검색해 보니 공공기관이 아니어서인지 영업 중이었다. 하지만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커피를 들이키고 호텔을 뒤로했다. 오늘 여행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어떻게 시작한 여행인데!

우시쿠 역에 도착하고 바로 택시 타는 곳으로 갔다. 우시쿠 다이부쓰로 데려다 달라니 먼 곳인데 괜찮냐고 되물어온다. 얼마나 걸리냐 하니 20분 정도 걸린단다. 버스는 없는 것 같고 목적지가 그곳이니 데려다 달라 했다. 지루한 시골길을 꼬불꼬불 달렸다. 봄이면 꽃이라도 있으련만 여름의 끝자락이다. 꽃도 드물었다. 가끔 배롱나무꽃이 보일 정도였다. 택시 요금 3620엔. 이래서 운전수가 멀다고 했구나 싶었다. 4000엔 드리고 덕분에 편히 왔다고 내렸다.
택시 운전수의 말이 우시쿠는 평평한 지형인데도 120m나 되는 불상이 동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단다.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다. 나 또한 관람하고 난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갑자기 거대한 불상 옆모습이 나타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쓰러지지나 않을까 무서울 정도였다. 120m나 된다는 거대한 불상. 불상 모양을 한 건물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철로 뼈대를 만들고 시멘트로 몸 부분들을 만들어 조립한 불상.
입장료는 불상 안까지 올라갈 거면 800엔, 정원만 구경할 거면 500엔이란다. 3시 반이 다 되어 간다. 5시까지 다 볼 수 있겠냐고 물으니 가능하단다. 그럼 가봐야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일.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향로에 향을 피우고 걸어 들어가다 보니 정원이 보였다. 목적지였던 카이라쿠엔(偕楽園)에 가지 못한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다이부쓰 안으로 들어갔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불상들이 맞이한다. 우선 그 규모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창문이 없어서 들어서자 마자 숨이 막힐 듯 했다.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불상의 크기를 보여주는 안내판을 보고 120m의 의미를 실감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본 적은 없지만, 불상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였을 거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40m란다.
맑은 날에는 85m에 있는 전망대에서 후지산도 보인다는데, 잔뜩 흐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슬슬 멀미 기운이 돌아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원 쪽에 라벤더 밭이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마스크를 벗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집에 가자.

그런데 또 한 번의 해프닝 발생.
역까지 가는 버스가 평일에는 오후 3시까지밖에 없단다. 오-마이-갓! 올 때도 4000엔이나 냈는데 또 4000엔을 들여야 한단 말인가!! 미치겠다. 여기가 관광지 맞아? 나 같은 뚜벅이는 오지 말라는 거야? 이 동네 지사가 누구였더라? 공공기관도 아닌 곳에서 지사를 소환하다니 나도 참. 그런데 이건 관광정책 상으로도 문제다. 최소한 마지막 버스는 문을 닫는 시간쯤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올 때 탄 택시 운전수 인상이 좋아서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20분 걸린단다. 비가 오니 천막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란다. 네네. 선물을 사려니 현금만 된단다. 요즘 세상에 이런 데도 있구나. 버스가 있다고 해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한 번이면 족한 곳이 되어 버렸다.
이번 여행에서는 나의 미숙함이 아주 많이 드러났다. 급행열차에 타고 나서라도 영업 상황 검색을 했으면 미토 시의 임시휴일 정보를 알았을 거다. 방향을 틀어서 불상 보러 갔으면 3시 이전에 보고 나왔을 것이고 택시 탈 일도 없었을 거다. 얼추 계산해보니 불필요한 교통비만 만 엔은 썼다. 만 엔이면 당일치기 버스여행 하나 갈 수 있었는데! 여행 다닐 작정을 하고 보니 안 써도 되었을 경비가 너무 아깝다.
그래도 뭐, 무사히 귀가 했으니 감사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