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16)
표고 1500m···도쿄에서 당일치기 여행 가능
일본인이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산악 리조트

아이들이 다 크고 난 후, 바다는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보러' 가는 곳이 되었다. 나에게는 발 담그는 정도가 딱 좋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산속이다. 그것도 등산이 아닌 숲길 걷기.

2022년 5월. 봄이 무르익어 갈 즈음, 일본 사람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한다는 산악 리조트 나가노현(長野県)의 가미코치(上高地)를 찾았다. 관광버스 당일치기 단체여행, 나 홀로 참가다.

표고 1500m에 있는 피서지. 물이 풍부하다고 유명한 곳. 아직 더운 시기는 아니었으나 여행 상품 안내에 올라온 다이쇼이케(大正池)라는 연못 사진에 반해서 신청했다. 에메랄드빛 연못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거기에다가 숲길을 걷는단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표고 1500m의 5월 초순은 초봄인 듯 했다. /사진=양은심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표고 1500m의 5월 초순은 초봄인 듯 했다. /사진=양은심

김밥을 싸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주먹밥을 샀다. 물이 좋은 곳이라고 하니 발 담글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수건과 양말을 준비했다.

아침 7시 10분 신주쿠를 출발. 코로나19 때문에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껴야 했고, 잡담 금지. 수분 공급 외에는 음식도 먹어서는 안 되던 시기였다. 그렇다 해도 들떠 있는 분위기는 전해져 온다.

야마나시현(山梨県)을 거쳐 나가노현(長野県)의 가미코치에 도착한 것은 11시 40분. 중간에 두 차례 휴식 시간은 있었지만 어쨌든 4시간 반을 달려온 셈이다. 출발지점인 다이쇼이케 입구로 이동. 길가에서는 연못이 보이지 않았다. 입구의 계단을 내려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늘도 연못도 어찌 그리 맑고 아름다운지. 장시간 버스 이동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호다카렌뽀(穂高連峰)와 에메랄드빛이 아름다운 다이쇼이케. /사진=양은심
아직 눈이 남아있는 호다카렌뽀(穂高連峰)와 에메랄드빛이 아름다운 다이쇼이케. /사진=양은심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 일행들과 떨어져서 마스크를 벗고 걷기 시작했다. 확실히 공기가 다르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호강이라니. 시작부터 대만족이다.

한동안 걸으니 습지가 나타났고 타시로이케(田代池)라는 연못 안내판이 보였다. 습지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연못이 나왔다. 이렇게 맑은 물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는 느낌이었다. 하늘도 아니고 산도 아닌, 물을 오래도록 쳐다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타시로이케'라는 연못. 물이 이렇게 투명할 수도 있나 감동했다. /사진=양은심
'타시로이케'라는 연못. 물이 이렇게 투명할 수도 있나 감동했다. /사진=양은심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혼자서 여행하는 남자분들이 서너 명 있었다는 거다. 코로나 시대여서였는지, 산악 리조트여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여행지보다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쩐지 동지 같았다. 이름 모를 동지.

가미코치(上高地)의 맑은 물에 일행이 손을 담그고 있다. /사진=양은심
가미코치(上高地)의 맑은 물에 일행이 손을 담그고 있다. /사진=양은심

이날의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었다. 참가 신청 때부터 기대했던 산 위 계곡물에 발 담그기. 그런데, 5월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표고 1500m다. 물이 차가워도 너무 찬 거다. 마치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얼얼했다.

5초 이상 담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호강을 언제 해보나 싶어서 서너 번에 나눠서 발을 담갔다 뺐다 했다. 얼굴엔 빵 터진 미소. 눈앞에는 호다카 연봉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건 정말 최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바라본 경치. /사진=양은심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바라본 경치. /사진=양은심

얼얼한 발에 새 양말을 신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오~ 뽀송뽀송. 아직도 그때의 발의 감촉이 생생하다.

머무른 시간은 약 4시간. 호텔 라운지에서 케이크 세트를 먹을 수 있는 티켓이 있었다. 점심을 대충 때웠으니 맛있는 '3시의 티타임' 시간을 즐겨야지. 호텔이 있는 갓빠바시로 향했다.

치즈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상상 이상이었다. 다음에 오면 다시 주문하게 될 것 같다. 5월 초순의 가미코치는 초봄이었다.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한여름에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사에서 나누어 준 티켓으로 주문한 치즈 케이크와 커피 /사진=양은심
여행사에서 나누어 준 티켓으로 주문한 치즈 케이크와 커피 /사진=양은심

2022년 8월 말. 한여름이다. 다시 가미코치를 찾았다. ​이번에도 관광버스 여행이다. 5월에는 다이쇼이케(大正池)에서 갓빠바시까지 걸었다. 이번엔 갓빠바시에서 묘진이케(明神池)까지 걷는 코스를 선택했다. 주요 목적은 '도리이가 있는 연못'을 보는 거였다.

다른 참가자들은 다이쇼이케에 내렸다. 갓빠바시에 도착하니 10시 30분. 묘진이케로 가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야말로 나 홀로 여행. 머무른 시간은 3시간. 좀 빠듯하다.

구름이 가득 낀 날이었다. 묘진이케로 출발하기 전 갓빠바시 근처의 풍경. /사진=양은심
구름이 가득 낀 날이었다. 묘진이케로 출발하기 전 갓빠바시 근처의 풍경. /사진=양은심

처음 걷는 길이었고 걷는 사람도 적어서 살짝 긴장했다.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울창한 나무들이 나를 감싼다. 일상에서 찌든 세포가 열리며 독이 녹아 나오는 느낌이다. 세제 광고에서 때가 흐물거리며 퍼지는 것처럼 몸속의 독들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굉장했다. 마치 원시림 같았다. /사진=양은심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굉장했다. 마치 원시림 같았다. /사진=양은심

혼자 걷는 숲길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우렁찬 물소리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콸콸 흐르는 물소리와 솔솔 부는 바람이 전신을 마사지해 준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몸과 마음이 해방되어 생기가 돈다. 이런 호강이라니. 오길 잘했네. 내 몸을 숲속에 풀어놓는 시간이 참 좋다. 망아지 띠라서인가? 하하.

갓빠바시에서 묘진이케로 가는 길. 마치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길이다. /사진=양은심
갓빠바시에서 묘진이케로 가는 길. 마치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길이다. /사진=양은심

멀리 보이는 다리를 건너나 싶었는데, 왼쪽에 묘진이케 안내판이 보였다. 오늘의 목적지이다. 큰 도리이를 통과하니 산장 카페가 보였다. 등산객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어서 좀 놀랐다. 산속 수행에서 갑자기 속세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사진의 도리이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산장이 나오고 묘진이케가 나온다. /사진=양은심
사진의 도리이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산장이 나오고 묘진이케가 나온다. /사진=양은심
묘진이케 입구. /사진=양은심
묘진이케 입구 /사진=양은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제1 연못과 제2 연못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은 도리이가 있는 제1 연못이다. 산속에 있는 연못이 신비로워서인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도리이 앞에서 차분해졌다. 5엔 동전을 넣고 손을 모았다. '제가 다시 올 수 있기를.'

신사 등에서 헌납할 때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5엔짜리 동전을 던진다. 없을 땐 50엔.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5엔(고엔)과 인연(고엔)의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한다. 나도 5엔짜리를 모아두었다가 여행 때에 쓰곤 한다.

제1 연못. 아무도 없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사진=양은심
제1 연못. 아무도 없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사진=양은심

 

다른 각도에서 찍은 도리이 /사진=양은심
다른 각도에서 찍은 도리이 /사진=양은심
묘진이케 제2 연못이다. /사진=양은심
묘진이케 제2 연못이다. /사진=양은심

사진 찍으며 볼 거 다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은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성큼성큼 걸었다.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야말로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산악 리조트 지역으로 인식하게 되고 유명해진 '가미코치'. 우리 인간이 먹고 살아가기 위한 목적이 아닌 오락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랬다.

지금도 가미코치의 하늘과 산과 계곡의 경치가 눈에 선하다. 다음엔 가을에 가보고 싶다. '인연이 있기를. ご縁がありまえように(고엔가 아리마스요우니).'

아직 눈이 쌓여있었던  5월 어느 날의 호다카 연봉과 갓빠바시. /사진=양은심
아직 눈이 쌓여있었던  5월 어느 날의 호다카 연봉과 갓빠바시. /사진=양은심
녹음이 짙은 8월 말경의 호다카 연봉과 갓빠바시. /사진=양은심
녹음이 짙은 8월 말경의 호다카 연봉과 갓빠바시. /사진=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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