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6)
야마가타 현(山形県) 긴잔 온센(銀山温泉)
일본인들이 한 번쯤은 가고 싶다는 온천 마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곳

산골 마을이었다.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서 산속에 있다는 건 알고는 있었으나 그야말로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마을이 보였다. "아!"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손바닥 안에 들어 있는 듯한 마을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그것도 유명한 온천 마을이. 여행 초보자인 내가 단체 여행이 아니라 혼자 왔으면 꽤 헤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사진=양은심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사진=양은심

긴잔(銀山)이란 이름은 은 광산(銀鉱山)에서 유래한다. 에도 시대에는 일본 3대 은산(銀山)이라 불릴 정도로 번영했었다고 한다. 한창 때는 인구가 22만명 이상이었다고.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가 우연히 온천을 발견한 것이 온천 마을로서의 시작이란다.

은 광산이 폐광된 후 다이쇼(大正/1912~1926) 시대와 쇼와(昭和) 초기에 걸쳐 마을 중심을 흐르는 긴잔천(銀山川) 양쪽에 목조 건물이 세워지면서 온천 마을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소개된 NHK드라마『오싱(1983)』의 촬영지로 쓰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마치 타임 슬립한 것처럼 대정 시대의 로망을 느낄 수 있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곳. 여행사의 선전 문구를 봤을 때는 온천 마을에서 산책만 해도 즐겁다는 말이 의문이었으나 실제로 가보고 알았다. 체재시간 2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숙박객 외에도 개방하고 있는 온천에 몸을 담가보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느긋이 머물고 싶은 동네였다. 내가 갔을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문 닫은 가게가 많아서 아쉬웠으나 첫길인 나에게는 모든 게 흥미로웠다.

고즈넉한 모습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난 작은 온천 마을. 작지만 신비로운 풍경에 눈이 커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을 입구에서 끝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다니 우선 끝에 있는 폭포를 향하기로 했다. 백은폭포(白銀の滝/시로가네노 타키). 단풍 들기 전의 녹색 나무와 일본 특유의 빨간 다리, 그리고 하얀 폭포가 만들어내는 경치라니. 눈과 마음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높이 22미터. 제주의 정방폭포가 23미터라 하니 비슷하겠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아름답지 아니한가.

 

높이 22 미터의 시로가네토 타키 /사진=양은심
높이 22 미터의 시로가네토 타키 /사진=양은심

폭포를 보았으니 이제 돌아가면서 천천히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폭포 근처에 있는 고케시 가게가 영업 중이었다. 코로나 시대. 문을 연 가게를 보면 우선 반가워진다. 하지만 경기도 안 좋은데 보기만 하고 나오게 되면 미안할 것 같아서 밖에서만 보다가 아이스크림 먹을 때 쓰면 좋을 듯한 스푼이 보여서 들어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상외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즈 고케시 공방(伊豆こけし工房). 고케시 등의 상품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다. /사진=양은심
이즈 고케시 공방(伊豆こけし工房). 고케시 등의 상품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다. /사진=양은심

일본에는 3월에 여자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오히나 마츠리(おひな祭り)가 있다. 예전부터 오히나 마츠리 때에 현관에 장식할 히나 인형을 하나 사고 싶었다. 기모노를 입힌 인형이 아닌 도자기 작품을 찾고 있었는데 이 가게에서 '고케시 히나 인형'을 보게 된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도자기 작품은 많이 봐 왔지만 고케시로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나무로 만든 것이라면 지진 때에 떨어져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인에 반했다.

문제는 가격과 크기이다. 큰 것이 1000엔 비싸다. 현관에 놓았을 때 너무 작으면 티도 안날 거다. 어쩌지. 1000엔 놓고 망설이는 내가 우습지만 고민했다. 점주는 웃으며 당연한 일이라며 충분히 생각하라고 기다려 줬다. 점주로부터 고케시 인형이 탄생한 스토리를 들으며 히나 인형을 천천히 보고 또 봤다. 큰 것으로 할까 조금 작은 것으로 할까. 색은 무슨 색으로 할까.

참! 이 가게는 드라마 『오싱』에서 오싱의 엄마가 일하는 가게 촬영에 쓰였단다. 갑자기 기분이 고조된다. 드라마가 뭐라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가 아닌가. 흥분하는 날 보며 점주는 조곤조곤 고케시 히나 인형의 탄생 스토리를 들려준다.

고케시 히나 인형은 10년(2021년 기준) 전 손님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목이 긴 고케시는 지진이 났을 때 쓰러지지만, 히나 인형은 안정감이 있어서 쓰러질 염려가 없다. 그리고 나무이니 깨질 염려도 없다. 처음에는 회색과 빨간색 한 쌍이었는데 3년 전쯤에 또 다른 손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란색과 빨간색을 만들게 되었단다. 나는 파란색과 빨간색 한 쌍을 사기로 했다.

 

고케시 히나 인형. 3월이 오면 현관에 장식한다. /사진=양은심
고케시 히나 인형. 3월이 오면 현관에 장식한다. /사진=양은심

다음으로 이곳에 오면서 꼭 보고 싶었던 '고테에(鏝絵/고테 그림)'를 보러 갔다. '고테에'란 여관 간판 등에 그려져 있는 그림인데, 미장이(左官)가 쓰는 '고테'라는 도구로 그린다. 여관의 이름 혹은 행운을 부르는 그림이 많다. 옛날 행사를 그린 '고테에'는 그림책의 그림처럼 화려하단다. 고테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긴잔 온천만큼 많이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았으면 그냥 쓱 지나쳐버렸을 '고테에'. 사진 위쪽에 장식되어 있는 것이 고테에다. 거리의 미술관이라 해도 좋지 싶다. 다른 곳에도 고테에가 있었으나 이 건물이 가장 많았다. /사진=양은심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았으면 그냥 쓱 지나쳐버렸을 '고테에'. 사진 위쪽에 장식되어 있는 것이 고테에다. 거리의 미술관이라 해도 좋지 싶다. 다른 곳에도 고테에가 있었으나 이 건물이 가장 많았다. /사진=양은심

우체통이 있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점주에게 "이 우체통은 현역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활짝 웃으며 "물론이죠. 장식이 아닙니다"란다. 여행지에서 나에게 보내는 엽서를 썼다. 처음 나선 단체여행 나홀로 참가 기념이다. 쑥스럽기도 하고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살짝 가슴이 설레였다.

 

기념품점 '에도야'. 사진 오른쪽에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사진=양은심
기념품점 '에도야'. 사진 오른쪽에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사진=양은심

집합 시간이 가까워 온다. 버스로 돌아가기 전, 잠깐 동안의 족욕(足湯)으로 발의 피로를 풀었다. 온천 마을에 왔는데 발 정도는 담가 봐야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수건을 준비해 왔는데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거다. 다행히도 일행 중에 족욕을 마친 사람이 빌려줘서 발을 담글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다시 한번 가고 싶다. 혼자 묵기에는 숙박료가 비싸다니 다시 단체 관광 신세를 질 지도 모르겠다. 숙박할 수는 없더라도 그때는 느긋이 온천도 하고 동네 안을 즐기고 싶다. 

 

강 양쪽을 잇는 작은 다리들이 소소한 분위기를 만든다. /사진=양은심
강 양쪽을 잇는 작은 다리들이 소소한 분위기를 만든다. /사진=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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