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젊은 사람에 양보하라는 동네 어른과
한 번 더 하겠다는 경수 형님의 대결
말은 많았지만 투표 결과엔 모두 승복

어릴 적 130가구 600여 명이 살던 고향 마을은 장성해 돌아와 보니 전체 인구가 40명이 채 안 된다. 사진은 전형적인 농촌의 겨울 풍경으로 글의 내용과 무관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릴 적 130가구 600여 명이 살던 고향 마을은 장성해 돌아와 보니 전체 인구가 40명이 채 안 된다. 사진은 전형적인 농촌의 겨울 풍경으로 글의 내용과 무관하다.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연말이 다가오자 마을에서 이장 일을 보고 계시는 형님께서 식사를 한번 하자고 불렀다. 식사 자리에 가서 보니 이장님과 친구 일우와 후배 상근이가 미리 와서 같이 앉아 있었다. 향어회에 술도 한잔씩 나누면서 올해 농사일에 고생이 많았다며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장님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사유를 설명했다.

“상근아, 너는 다음에 할 수 있잖나.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을 이장을 나에게 양보해 주라.”

그러자 상근이는 이번에 이장에 나서는 이유를 설명했다.

“5년 전에 제가 이장이 되고 마을 통장을 집어던지고 했을 때 형님이 이장을 안 받았으면 제가 그냥 이장을 했을 것 아닙니까?”

나도 친구에게서 전날에 들은 말이 있었다. 창열이가 약 15년 마을 이장을 맡아 일해오던 중 조합장 선거에서 입후보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신고했던 모양이었다. 그 포상금으로 4000만원을 받았는데 그 때문에 같은 면 이장들의 따돌림을 받게 돼 더 이상 마을 이장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다시 이장을 뽑았는데 상근이가 이장이 되었다. 그런데 상근이가 술을 좋아하고 약간 성질머리가 있다 보니 마을 어른들이 상근이에게 통장 잘 관리하라고 당부를 두세 번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상근이가 통장을 집어던지면서 이장 못 하겠다고 하여 경수 형님이 대신 이장을 맡아온 것이다.

2년 전 창열이가 다시 이장이 되겠다고 나서 결국 투표에 들어갔는데 경수 형님이 겨우 한 표 차이로 다시 이장을 맡게 되어서 오늘까지 이어졌다.

경수 형님은 앞으로 영속성이 있는 마을 꾸미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또 마을에서 자신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형님을 눌러 앉히기 위해서 이장을 2년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형님의 얘기를 듣고 내가 거들었다.

“형님, 마을을 위해서 뭔가를 하시겠다는 것은 좋습니다만 누구를 기를 못 펴게 하겠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상근아, 형님이 한 번 더 하고 넘겨주고 싶다는데 그렇게 좀 해 주면 안 되겠냐?”

식대를 상근이가 계산하려고 나가는데 경수 형님이 양보를 하지 않았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언제 상근이의 부인이 와 있었는지 상근이를 태우고 바로 떠나버렸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마을에는 약 130가구, 인구수로는 한 집에 5명씩만 잡아도 600명이 넘게 살았다. 마을은 네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웃담이 몇 호 되지는 않지만 도랑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고 다음 볕담이 가구 수도 제일 많고 마을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다음에 샛담이 있었는데 마을 안에서는 작은 아들들이 새로 집을 지어 나가서 샛담이라고 부른 것 같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골담에서 살다가 볕담이나 웃담으로 이사를 했는데 골담은 아마도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공간이라 여겨진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은데 들어가면 꽤 너르다. 골 안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바람을 피하거나 마을을 숨기는 공간으로는 좋은데 들판과 거리가 있어서 농사를 짓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현재 마을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 집에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사는데 전체 인구가 40명이 채 안 된다.

2022년도 며칠을 남겨두고 마을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의 총회가 열렸다. 11시부터 총회를 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월남서 시집 온 부인들이 세 명이 있는데 이장이신 경수 형님과 상근이, 그리고 나의 이웃에 사는 형식이의 부인이다. 대체로 이분들은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부녀회원과 함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 온 동네 주민들이 다 모였는데 한 방은 남자들로 다른 한 방은 여자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릴 적에 함께 살아왔고 또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일 년에 서너 번씩은 마을을 다녀갔던 터라 내가 모르는 분이 없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농기계들을 보관할 창고 지을 터를 경수 형님이 제공하고 20년 동안 마을에서 사용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자 경수 형님은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창고 위에 태양광을 설치해 버렸다. 공동 농기계들을 보관 중인 마을 공동창고 /사진=정진권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농기계들을 보관할 창고 지을 터를 경수 형님이 제공하고 20년 동안 마을에서 사용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자 경수 형님은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창고 위에 태양광을 설치해 버렸다. 공동 농기계들을 보관 중인 마을 공동창고 /사진=정진권

모르는 남자 두 분이 함께 있었는데 한 분은 동네 한가운데 예전 곽상네 집에 들어와 사는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얼마 전에 정자나무 앞 순경 형님의 밭을 사서 들어온 분이었다. 두 분 다 착해 보였는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한 분은 회의 도중에 나갔다.

이장님이 올해 마을에 들어온 수입과 지출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런데 그 보고서에는 세 군데 오타가 있었다. 전x환 50만원 찬조가 5만원으로, 유x경 50만원이 5만원으로, 최x분 30만원이 3만원으로 동방기계에서 서류를 만들어 오면서 오타가 난 것이다. 내가 핸드폰으로 계산을 해 보니 전체 금액은 정확히 맞았다.

그런데 창열이가 계속해서 경노회 12만원 들어왔다가 나간 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졌다. 그러다가 또 이번에는 예전에 창고에 두었다가 팔아버린 농기계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기계를 사용도 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창고에 방치해 두니 몇 년 전에 전체를 들어내어 고물상에 팔고 그 대금은 각자에게 배분했던 모양이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농기계들을 넣어 둘 창고 지을 터를 경수 형님이 제공하고 20년 동안 마을에서 사용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자 경수 형님은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창고 위에 태양광을 설치해 버렸다.

그러자 동네 어른들이 경수 형님에게 따지고 들었는데 경수 형님은 보관하던 장부에서 20년 전에 기록해 두었던 그 부분을 찢어 없애 버린 것이다. 결국은 창고가 있는 한은 그 창고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창고라는 계약서를 다시 썼다.

경수 형님 땅에 지어진 창고에 대해서 말이 나오고 그 창고가 창고 뒤편 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 보상을 누가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경수 형님은 마을 창고를 다시 지으려고 했으나 철조 씨가 91년도에 마을회관 자리를 자기 앞으로 등기를 해놓아서 못 짓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철조 씨는 동네에서 길은 쓰되 그것을 마을에 잘라주진 못하겠다고 응수했다.

나중에 일우도 들어왔는데 철조 씨 담벼락이 자기 땅을 침범했다고 하는 것이다. 서로 물고 뜯는 아수라장 판 회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에 대충 형님이 그래도 제일 나이도 많고 바른 얘기를 했지만 서로에게 오랫동안 쌓인 감정은 풀 길이 막막했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자금에 대해 보고하다가 해결도 나지 않는 쓸데없는 말들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렸다.

이번에는 이장 선거를 할 차례가 되었다. 경수 형님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이미 상처를 많이 입었다. 마을 어른들은 “지난번에 투표를 해보니 마을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져서 안 되겠다”고 하며 경수 형님과 상근이가 밖에 나가서 의논해서 한 사람을 정해서 들어오라고 하였다. 경수 형님은 “내가 언제 또 더 하겠소. 한 번 더 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고 상근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경수가 두 번이나 했으니 이번에 젊은 사람에게 양보해 주어라.”

“옛날에는 15년도 했었는데 왜 더 못한다는 말이요?”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투표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번에는 내가 장내 정리를 하였다.

“형식아, 저 달력을 잘라서 투표용지를 좀 만들어라.”

경수 형님이 1번, 상근이가 2번을 받았는데, 내가 투표용지에 1과 2를 적었다. 마을에 이사 와서 사는 젊은 남자분이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식을 설명했다. 그 와중에서도 철조 씨는 “경수 네가 양보해라”라고 고함을 쳤다.

“80이 되어도 다시 이장을 할 수 있다.”

“하던 사람이 그냥 해도 되지.”

“젊은 사람이 해 보겠다는데 넘겨주어라.”

어쨌든 마치 옛날 시장판처럼 떠들썩했는데 그래도 볼펜을 빌려 가면서 모두 투표를 했다. 마을에 최근에 이사 온 젊은 양반이 커다란 양푼을 들고 다니며 투표용지를 받았다. 철환 형님이 달력을 길게 펴놓고 1번과 2번이라고 적힌 아래에 ‘바를 정(正)’자 표시를 해 나갔다. 2번만 계속 나오니 누군가가 “골담 사람들만 투표를 했나?”라고 외친다.

전체 36명이 참석한 중에 두 분이 먼저 떠나고 34명이 남았는데 피선거권자 두 분이 빠지고 32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그중에 한 표는 아예 표시하지 않았고 또 한 표는 1번과 2번 중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유효표 30표 중에 2번이 25표, 1번이 5표였다.

마을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격받고 응수하던 경수 형님은 이제 일체 할 말이 없었다. 경수 형님이 좀 더 어진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한 게 패인인 것 같았다. 누군가 “이장은 할매들 사는 집에 불 꺼진 전구 하나라도 바꾸어 줄줄 알아야지”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주민 총회가 열린 마을회관. 경로당과 건강관리실을 겸하고 있다. /사진=정진권
주민 총회가 열린 마을회관. 경로당과 건강관리실을 겸하고 있다. /사진=정진권

한순간 마을회관은 정적에 휘감긴 듯 조용해지고 사람들도 모두 숙연해졌다. 수없이 외치던 말들도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모든 것은 끝이 났고 잠잠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묵묵히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나는 친구와 경수 형님을 모시고 그 향어 횟집으로 갔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형님을 위로해 드리려고 간 것인데 형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 마을에 평생을 산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면서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마을 사람들의 앙금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그 옛날 이 마을의 이장 아들로서 귀향한 나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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