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하우스 쥐 잡으라고 들인 새끼 고양이
처음엔 도망 다니다가 차츰 가까워져
개 사료에 길들여져 생선은 본체만체
손자 같은 내 친구 홍시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도 아내도 문을 묶지 않고 홍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하우스 문을 굳게 닫는다. 작년 6월에 우리 곁에 와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떠나갔다.
어릴 적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홍시는 나하고도 또 이 세상과도 인연이 이 만큼이었나 보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은 놓치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고 싶어 한다. 즉 모든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이 괴로움이 되고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홍시를 홀가분하게 내보내고 홍시도 또다시 태어나는 세상에서 산뜻한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곁을 떠나간 홍시가 더 나은 세상에서 안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 2022년 6월 17일.
아침에 아내가 일어나지 못해서 박스를 만들지 못했다. 오이 배송자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서 오지 말라는 통보를 하려고 창열이네 하우스에 갔다.
“형님, 하우스에 쥐가 많지요?”
“그래 두더지가 득실거리더라.”
“우리 이 에미 고양이는 사냥을 아주 잘해요. 매일 쥐를 한 마리씩 잡아서 이 앞에 갖다 놓아요.”
이미 창열이 부인이 고양이 새끼를 한 마리 상자에 담아 놓았다.
“형님, 제일 똑똑한 놈으로 골랐습니다.”
어린 새끼들은 고슴도치인들 귀엽지 않으랴! 상자를 열어보니 커다란 눈이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어린 고양이는 온몸이 검정과 흰색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는데 머리 부분은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지하에 사는 주인공의 가면처럼 절반은 흰색,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에 싣고 와서 방에다 풀었더니 구석으로 도망을 간다. 밖으로 나가서 바구니에 담으려는데 다시 도망을 갔다. 싱크대 아래 구석에 있는 녀석을 쫓아서 세탁기 쪽으로 보냈는데 아내가 막고 있으니 다시 돌아서 내 쪽으로 오는 녀석을 잡으려다 뒤쪽 다리를 잡다 보니 순식간에 돌아서는 내 오른쪽 검지를 물었다. 이 어린 녀석이 물었는데도 손톱에 구멍이 나고 피가 흘렀다. 아내가 호박 바구니에 담아서 집을 만들어 주었는데 손잡이 구멍을 통해서 도망을 가 버렸다.
어린 고양이는 박스 쌓아 놓은 부근에서 간간이 우는 소리는 들리는데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없는 밤에라도 나와서 먹으라고 멸치를 담아 놓았는데 아침이면 깨끗이 없어졌다. 아마도 동네 사는 길고양이들이 와서 먹은 것 같다.
일주일쯤 지나니 빼빼 마른 상태로 힘이 쑥 빠져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박 박스 1000여 장을 쌓아놓은 맨 밑에 나무 팔레트가 어린 새끼 고양이 정도만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약 일주일을 버티다 나온 것이다. 나는 고양이 소리가 차츰 줄어드는 것을 알고 그 속에서 죽은 것 아닌가 하고 늘 걱정했는데 비록 축 늘어졌지만 스스로 걸어서 나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고양이는 차츰 나와 아내에게 익숙해지고 먹이를 먹고는 3m 높이의 박스를 타고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냈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같은 수컷 고양이 큰 녀석을 제일 무서워하였다. 큰 수컷 고양이는 같은 수컷을 어린 고양이라도 물어서 죽이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 집에 배달 오는 여성 배송원이 있었는데 어린 고양이를 보고는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와서 건네주고는 그 간식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라고 충고해 주었다. 가족들에게 고양이 이름을 공모했는데 손자는 ‘누룽지’ 그리고 아들은 ‘홍시’를 추천했다. 우리는 어린 고양이를 ‘홍시’라고 명명하기로 정하고 차츰 친해져 갔다.
어느 날 옥이란 초등학교 동창 여자 친구가 와서 고양이를 귀엽다고 안았다. ‘옥아, 이 녀석이 앞으로 쥐를 잡아 올 거다’라고 했더니 ‘이 고양이가 쥐를 잡는다고? 너를 잡을 거다’라고 응수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친구의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나는 홍시의 가장 편안한 친구이자 홍시의 장난감이었다. 우리에게 온 지 한 달쯤 지나니 홍시는 몸이 약간 커지면서 아주 활발해졌다. 주위에 큰 고양이나 개들이 돌아다니니까 아무래도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이 많았다. 큰 고양이나 개들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우리를 믿기보다는 3m 높이의 박스를 타는 것이었다.
홍시가 아주 어릴 적에는 우유를 먹였는데 이후 밥을 몇 번 먹이다가 친구가 자기 집의 개 사료를 갖다주었다. 홍시는 그 사료에 입맛이 맞추어졌다. 생선을 구워도 욕심을 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하우스 안에 들어가서는 풀을 뜯어 먹는 것이었다. 우리가 식탁에서 식사할 때는 꼭 남은 의자에 자기가 앉아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아내와 내가 먹는 식탁을 넘보는 일은 없었다.
홍시는 4개월 정도 성장하자 생선은 먹기 시작했는데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홍시가 내 곁에 있는 한 배고프게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홍시는 큰 고양이가 자기 밥그릇을 차고앉아 있으면 멀찌감치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약 일주일 정도 늦게 태어난 고양이가 오면 자기 밥그릇에 있는 먹이를 어린 고양이가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그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6개월 정도 지나니 자신의 영토를 지키는 본능이 튀어나왔다. 큰 고양이가 와도 문 앞에 서서 아주 큰 소리를 내고 몸을 부풀리며 큰 녀석을 응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나 아내는 즉각 홍시의 긴급호출 신호를 받고 방 안에 있거나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도 119 구급대원인 양 홍시 곁으로 달려 나간다.
인근에 나지막한 우리 산이 있는데 누가 어디서 골프 연습을 하는지 골프공이 많이 날아왔다. 나는 그 골프공을 주워다가 홍시에게 주었더니 홍시는 그 골프공을 무지하게 좋아했다. 공을 몰고는 어찌나 날렵하게 뛰어다니는지 아내도 나도 놀라고 황홀하게 기뻤다. 내가 손흥민 선수를 능가한다고 하니까 아내가 ‘홍시는 전생에 축구 선수였던가 봐요’라고 추정하였다.
매달아 놓은 줄을 가지고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서 잘 놀았다. 공이나 줄을 가지고 논다는 것은 커서 쥐나 새를 잡는 연습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여름 방학이 되어 딸과 손자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찾아왔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 재문이가 나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제가 누룽지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왜 홍시라고 불러요?”
“재문아, 너는 홍재문이지? 그리고 홍세미, 홍채영 아니가? 홍시도 홍누룽지인데 그냥 홍시라고 부른단다.”
손자는 쉽게 납득을 하지 못했지만 누룽지라고 부르다가 홍시라고도 불렀다.
홍시도 아이들이 마냥 반갑고 좋은 모양이었다. 특히 막내 다섯 살 채영이가 맘에 들었는지 따라다녔는데 채영이는 홍시가 좋으면서도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두렵고 무서웠다. 둘만이 좁은 공간에 들어갔는데 채영이가 겁이 나서 울기 시작했다. 이후로 홍시는 미안했던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홍시를 안아보고 싶어 했는데 내가 안아서 주면 얌전히 아이들 품에 안겨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떠나면서 홍시를 만지고 싶다고 하였다. 세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차가 떠나자 한동안 차 꽁무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길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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