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3)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릴 때 들었던 화두
사업 망한 뒤에야 다시 들어
인연 따라 나고 감 깨달아

아버지가 떠나시고도 내 마음에서는 아버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것만 같아 늘 대문 밖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환각(幻覺)에 빠지곤 했다. /픽사베이
아버지가 떠나시고도 내 마음에서는 아버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것만 같아 늘 대문 밖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환각(幻覺)에 빠지곤 했다. /픽사베이

인생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9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새벽에 급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는 급히 병원으로 모셨으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떠나시고도 내 마음에서는 아버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것만 같아 늘 대문 밖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환각(幻覺)에 빠지곤 했다.

아버지는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49재를 지내고 다음 해 봄에 농사철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일꾼들이 많아서 우리 집은 늘 잔치를 치르는 집 같았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집안일만 하시던 어머니는 농사일이 너무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집안 분위기도 갑작스럽게 긴장이 넘치고 공허하게 바뀌었는데 농사를 지을 땅은 여전히 많았다.

우리집 논은 주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방천 둑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동네 앞에 논을 가진 사람들보다 농사일에 두 배나 많은 시간이 들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농사철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나는 신이 나서 까불고 놀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 계신 농사철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논에 모를 심는 날 못줄을 잡으면서도 멍해 있는 나를 보고 모를 심던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을 거라고 확신에 찬 듯이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대화를 듣고 구체적으로 하늘나라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나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또 아버지는 왜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 한마디 없이 급히 하늘나라에 가셨으며,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이것이 화두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는 길』에도 나오듯이 기나긴 한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픽사베이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는 길』에도 나오듯이 기나긴 한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픽사베이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프로스트 『가지 않는 길』 중에서, 피천득  옮김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는 길』에도 나오듯이 기나긴 한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아버지와의 헤어지는 일도 인생의 갈림길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생활공간을 바꾸어야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생 먹고 살아갈 직업에 대한 첫 번째 갈림길에 서야 했다. 농민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갖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의 기로와 마주 앉아야 했다.

나는 적성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는데 이후에 후회하면서도 그 길을 바로 바꾸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그러한 우유부단한 모습에 대해서 늘 불만이었다. 반대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슬기롭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서 타박타박 인생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만 했다.

대학 시절에도 공무원을 목표로 고시공부를 했지만 주어진 여건과 나의 노력은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비록 고시에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정작 선택했던 길은 대기업의 무역부 직원이었다. 

이와 같은 선택은 나의 적성이나 성격이나 자질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명예와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의 먹구름이 태양과 같은 지혜를 덮어버렸다.

그 이후 직장생활 도중 자금 준비도 없이 원대한 꿈만 지닌 채 사업을 시작했다. 빈손으로 시작한 사업은 어머님과 형제들을 불안하게 했으며 아내를 고생의 문턱으로 끌어들였다.

이같은 선택은 인생길에서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졌던 모든 것을 다 잃고 사업이 망하고 나서야 어린 시절의 그 화두를 다시 들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으며 이 사회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놓을 수가 없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잡초를 제거하고 돌아서면 다시 잡초로 무성한 밭을 본다. 저 식물들은 자신의 생존에 대해서 어쩌면 저렇게도 끈질긴 것일까? 그 뿌리나 씨앗은 여건이 좋지 않을 땐 땅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비가 오거나 아주 자그마한 햇빛의 틈만 비춰도 땅을 비집고 나왔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 무슨 특별한 일을 하려고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처럼 거대한 삶의 그물망에 얽혀서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마을 구성원에서 사라진 그 자리에 누군가 대신하여 마을 운영을 맡았으며 그 후임자가 떠나가면 다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꾸었다. /픽사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거대한 삶의 그물망에 얽혀서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마을 구성원에서 사라진 그 자리에 누군가 대신하여 마을 운영을 맡았으며 그 후임자가 떠나가면 다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꾸었다. /픽사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처럼 거대한 삶의 그물망에 얽혀서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마을 구성원에서 사라진 그 자리에 누군가 대신하여 마을 운영을 맡았으며 그 후임자가 떠나가면 다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꾸었다.

거대한 그물망에 올라탄 각자의 인생은 수평선 아득한 바다의 파도처럼 한시도 쉬지 않고 출렁이며 자신이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을 따라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면 다시 저쪽으로 몰려다니곤 한다.

나는 젊은 날 내가 선택했던 길이 예전(前生)에 내가 복덕을 많이 심어서 나와 좋은 인연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집단이 아니라 나와는 박복한 인연들의 줄에 매달려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어리석게 인생의 갈림길을 선택했다고 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힘든 인생을 살아왔지만 참으로 잘 선택한 인생이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만약 태어나서 편안하게 한 생을 보냈다면 돌아갈 때 나에게 깊이 남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을 테니까. 인연 줄을 잘 따라가서 권력이 생겨서 약한 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었고 재물을 많이 모아서는 재력으로 자신을 망치고 가족들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실패로 인해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그리고 그 간절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기도 정진한 결과 인생에 대한 참으로 값진 보배를 얻었다. 실패의 길을 걸었던 참담했던 그 세월도 결국에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나의 화두 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은 삶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나는 마지막 남은 인생은 내가 태어났던 고향에서 살다가 떠나겠다고 결심을 하였는데 아내가 나를 홀로 보내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연 줄 위에 함께 앉아 있으며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는 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나 가장 올바르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길은 없다. 이 길을 택하면 이러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저 길을 택하면 저러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일이다. 그 어떤 길이든 내게는 하나의 인생의 긴 족적을 남기며 그렇게 살면서 쌓은 영상들은 마음속에 모두 저장이 되어 미래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내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도 없고 나(自我)라는 존재가 특별할 것도 없다. 바람이 불면 드러누웠다가 바람이 멈추면 다시 일어나는 들풀과 무엇이 다르랴!

그 어떤 어려움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대처하면 좋은 인연을 맺게 되며 인생에서 훌륭한 경험이 축적되리라. 그러한 행위들은 언젠가 반드시 나의 복이 되고 지혜가 되어 나의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