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기상하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일할 때도 함께해
아내가 외출하자 방안에 들어오려 해 막았는데
먹은 것 토한 뒤 비실거리더니 결국 집 나가버려

손자 같은 내 친구 홍시가 떠나고 두 달이 지났다. 지난 2월 8일 새벽 2시경 밖에 나가보니 홍시가 문을 빼꼼히 열고 나간 흔적이 보였다. 약 닷새 전에도 밤에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나는 홍시를 안고 ‘홍시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서 자고 오면 안 된다’라고 타일렀었다.

얽힌 줄 위에 앉아 있는 홍시. 홍시와 우리 가족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사진=정진권
얽힌 줄 위에 앉아 있는 홍시. 홍시와 우리 가족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사진=정진권

홍시가 우리 곁을 떠나기 약 보름 전부터 이웃에 사는 고양이 친구를 사귀었는데 친구가 나타나면 잠시 우리 곁을 떠나서 친구와 돌아다니면서 놀기도 하였지만 나는 속으로 환영하였다. 홍시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내 고향 여자 친구 옥이는 ‘야, 홍시는 신혼여행 간 거야. 해외로 갔을지도 몰라’라고 농을 던졌다.

홍시에게 사춘기가 왔지만 아직 수컷을 밝힐 정도로 성숙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홍시가 새끼를 낳고 새끼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었는데 홍시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자기 자식을 아낌없이 돌보려고 하는 엄마의 마음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홍시가 떠난 며칠 후, 나는 텅 빈 들판을 향해 큰 소리로 ‘홍시야!’하고 불러보았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느 풀숲에서 조용히 홀로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이 할아비가 너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니 부디 포근한 마음으로 떠나거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올라왔을 때였다. 마침 아내는 서울로 가고 나와 홍시만이 하우스 안에서 지냈는데, 밤새도록 태풍은 하우스 전체를 들썩거리게 했다. 나도 불안한데 홍시도 얼마나 불안했던지 이쪽 끝에 가서 숨었다가 그곳에서도 바람 소리가 심하게 들리고 또 바람을 타서 하우스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리니 안절부절못하고 50여 평 되는 하우스 안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끊임없이 숨을 곳을 찾아 쫒아 다녔다.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겁에 질린 홍시의 불안을 잠재워주지 못했다.

태풍이 물러가고 늦여름의 한가한 오후 서쪽에서 한 가닥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나는 밖에 두꺼운 베니어합판으로 만들어 놓은 평상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보니 어느새 홍시도 내 발밑에서 쿨쿨 자고 있다.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는 자고 밤에 주로 먹이 활동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홍시는 낮에도 졸고 밤에도 잘 잤다.

한 평 남짓한 바깥 화장실을 채 다 만들지 못하고 창고처럼 짐을 쌓아 두고 있었는데 홍시의 집을 멋지게 만들어 주기 전에 우선 그 공간을 홍시가 잠자는 방으로 꾸몄다.
꾸민 것이라야 그중 한 공간에, 박스에 수건을 깔아서 홍시의 잠자리라고 해 준 것이 전부다. 그래도 낮에 같이 지내고 저녁상에서도 한 의자에 앉아서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방에 들어가면서 ‘홍시야, 잘 자’라고 하면 곧장 자기 방으로 직행하였다.

나는 주로 새벽에 일어나는데 내가 잠이 깨어서 나오면 언제나 홍시는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노부나가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자기 주군인 노부나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히데요시의 충성심이 생각났다. 방에서 나오는 문이 두 군데인데 홍시는 밖에서 방안에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내가 나오는 그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홍시의 방. 홍시는 우리 부부의 저녁식사 자리를 지키다가 식사가 끝난 뒤 '홍시야, 잘 자'라고 하면 곧장 자기 방으로 직행했다. /사진=정진권
홍시의 방. 홍시는 우리 부부의 저녁식사 자리를 지키다가 식사가 끝난 뒤 '홍시야, 잘 자'라고 하면 곧장 자기 방으로 직행했다. /사진=정진권

처음에는 내 슬리퍼를 물어뜯더니 양말을 신고 나오지 않으면 내 발가락을 물었다. 자기 딴에는 나를 많이 기다렸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나와서 "홍시야!"라고 불렀더니 "예!(야옹)"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홍시가 "예"라고 대답을 했다고 했더니 "그럴 리가?"라더니 이후에 자기가 불러도 대답한다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은 사람들과도 친하지만 자신의 어미가 있고 또 형제들이 있다. 고향 안집에서도 동네 길고양이들이 많이 몰려왔었는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서 잡지는 못한다.

어린 고양이 한 녀석에 담벼락 위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큰 물통에 빠져 버렸다. 그 주위에 큰 고양이와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 작은 고양이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물에 빠진 녀석이 겨우 그 물통에서 빠져나왔는데 놀라운 장면이 목격되었다. 밖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어린 고양이가 물에 빠졌던 고양이의 온몸의 털을 혀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아마도 둘은 서로 형제간인데 핥아주는 고양이가 어미 배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홍시는 먹을 것은 내가 챙겨주었고 또 몸집이 커다란 수컷 고양이나 개를 가장 무서워하였는데 우리 부부는 그들이 나타나면 고함을 지르고 혼을 내주어서 우리를 부모처럼 의지했던 것 같다.

홍시는 고양이라 먹이를 먹고는 따로 생활해야 하는데 늘 우리가 일하는 곳에 같이 머물렀다. 하우스 안에서 새 작물을 심기 위해서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주로 개구리들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내가 홍시를 부르면 홍시는 즉각 바로 달려왔다.

하우스 안에는 미생물이 많고 미생물을 먹는 지렁이가 살고 또 지렁이를 먹고 사는 두더지들이 살고 있다. 그 두더지를 잡는 것은 고양이만이 아니다. 뱀도 두더지를 먹기 위해서 간혹 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뱀이 나타났다. 

뱀의 크기는 중간치 정도였는데 머리가 뾰족한 것이 독사 같았다. 홍시와 뱀의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뱀도 지지 않았다. 뱀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아주 날렵하게 머리를 날리면 홍시도 만만치 않았다. 뱀 주위를 빙빙 돌면서 앞발로 뱀의 머리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홍시도 이 뱀이 보통 뱀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장기전으로 돌입하였다. 꼬리를 건드려 보았다가 머리를 건드리기도 하고 전혀 관심이 없는 척 주위에 앉아있다가도 뱀이 움직이면 가지 못하게 앞을 막았다. 두 시간이 넘게 그들의 싸움이 지속되었는데 나는 또 내 일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떠났다.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는 자고 밤에 주로 먹이 활동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홍시는 낮에도 졸고 밤에도 잘 잤다. /사진=정진권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는 자고 밤에 주로 먹이 활동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홍시는 낮에도 졸고 밤에도 잘 잤다. /사진=정진권

하루 일과 중 맨 먼저 하는 일이 하우스 문을 여는 일이다. 하우스 길이가 약 100m쯤 되는데 저 뒤쪽 끝에 있는 문도 열어야 한다. 나는 문을 열러 갈 때 홍시를 부르는데 홍시도 자기를 인정해 주니 아주 즐겁게 따라나선다.

나는 홍시의 발소리가 두더지들이 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시는 아침에 대소변을 하우스 안의 중간 쯤 가장자리에 흙을 파고 일을 본다. 홍시의 몸집이라고 해 보아야 어릴 때는 팔뚝만 하다가 커도 어른 종아리만 하니 배설물이라고 해 보아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고양이는 자신의 대소변을 흙을 먼저 파고 누고 그다음에 다시 흙으로 덮는다.

호박을 수정시키거나 약을 칠 때도 홍시는 항상 내 앞에서 길을 안내하듯이 걸어 나갔다. 호박이나 오이를 딸 경우에도 늘 함께 움직였는데 하우스 운반구에 운반 상자 컨테이너 박스를 올려놓고 가면서 허리를 숙여서 따고 바구니에 담는다. 홍시는 이번에도 그 운반구 앞에 올라타고 가다가 멈추어 열매를 따고 있으면 1.5cm 정도의 운반 상자 가장자리를 밟고 와서는 열매를 따고 있는 내 등에 업힌다. 그런데도 한 번도 호박이나 오이 열매를 밟고 오는 경우가 없었다.

가을에 벼 타작을 하고 들판이 텅 비었다. 빈 들판에는 남은 이삭을 먹기 위해 비둘기들이 떼로 모여 날아들었다. 홍시는 매복이 거의 일상이었는데 그 비둘기들을 잡기 위해서 논두렁에 숨어서 비둘기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홍시야!" 하고 부르면 마치 ‘쉿, 할아버지! 왜 그래요!’ 하는 듯이 나를 돌아본다. 나도 속으로 ‘네 평생 매복해 봐라. 비둘기 한 마리라도 잡겠냐? 혹시 꿩이라면 모를까’라고 말한다.

고양이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 홍시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각 파이프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면 바로 뒤따라 했다. 아내는 그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홍시와 나는 이심전심이었다. 아내의 잔소리에 밖으로 나오면 홍시도 바로 따라 나왔다.

"홍시야, 가자!" 하고서 둑길을 나서면 홍시는 이번에도 앞장을 선다. 홍시는 가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숲을 살피다가도 내가 앞장서 가면 바로 달려와서 자기가 앞장을 섰다.

홍시는 먹는 것을 아주 조심하였는데 한번은 먹은 것을 다 토해 내었다. 일주일 정도 먹지를 않으니 비실거렸는데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 데려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아내는 홍시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 그러다가 홍시는 몸이 가뿐해져서 다시 활기차게 송당거렸는데 그것이 나중에 우리를 속이는 일이 되고 말았다.

홍시가 떠나기 며칠 전 홍시는 몹시 맥이 빠져 있었다. 하우스에 들어가면 예전에는 앞장서서 달려 나갔는데 저 뒤에서 어깨가 축 늘어져서 힘들게 따라왔다. ‘녀석이 어디 아픈가?’라고 여기면서 바로 병원에 데려가 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새로운 이웃 친구도 사귀고 하여서 잠시 우리 곁을 떠나 있기도 하였는데 예사로 여겼다. 홍시가 떠나고 이웃에서 우글거리던 모든 고양이가 감쪽같이 한꺼번에 다 사라졌다. 동네에서 아주 큰 어미들만 몇 마리 살아남았는데 그들도 활동이 뜸했다.

2월 초에 아내가 병원에서 검진이 있어서 서울로 올라갔다. 하루 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먼저 와서 대기한다. 아내가 떠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내는 혹시 내가 홍시를 방에 들일까봐 걱정을 하고 떠났다.

홍시는 종종 아내가 보이지 않고 내가 보이면 방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오곤 했다. 그러면 아내는 흙발로 들어온 홍시의 발자국을 걸레로 다 닦아내야 했다. 내가 홍시를 들어서 저만치 두고 들어왔더니 주방 창문 틈에 올라타고 나를 쳐다보면서 아주 강렬하게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나는 홍시가 안타까우면서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시를 절대 방에 들이면 안 된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창을 넘어서 홍시에게 날아갔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는 홍시도 포기를 하였다. 다음날도 홍시가 나를 따라다녔지만 홍시의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저녁에 깨끗이 씻겨서 방에 들일까 했는데 오늘은 일치감치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홍시가 떠나고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비록 홍시를 방에 들이지는 못할지라도 홍시에게 다가가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차분히 설명해 주지 못했을까? 그동안 내 수행의 한계가 이만큼이었나? 

홍시가 나가고 며칠이 지나서 구인사 법당에 전화를 걸었다. "스님, 우리 집에 기르던 고양이가 나가서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요"라고 했더니 스님은 먼저 알고 계셨다. "호호, 좋은 데 갔을 거예요"라고 응답을 하셨다.

이 세상에 어진 마음, 베푸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자비심보다 더 좋은 보약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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