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초보 농군에 끊임없이 베풀고 챙겨줘
집이 춥다 하자 하우스 농사 권하기도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인생이거늘···

나는 착하지 않으면 농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민이 되면 자연히 착해진다고 생각한다. 허수아비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착하지 않으면 농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민이 되면 자연히 착해진다고 생각한다. 허수아비 /게티이미지뱅크

식물은 식물만의 특성이 있고 성질이 있다. 식물은 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들을 끌어들이려는 성질이 있다. 나무들은 그가 선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더 받기 위해서 키를 키우거나 가지를 넓게 펼친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뿌리들이 또 얼마나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인가?

동물도 각각 저들만의 특성이 있다. 사나운 짐승인 사자나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약 20%라고 한다. 즉 다섯 번을 사냥하여 겨우 한 번 성공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호랑이는 한 번 포식을 하고 나면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산다고 한다. 사냥을 하는데도 죽을힘을 다해야 하지만 굶어서 힘이 빠지면 사냥도 어려워 자연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사람도 공통적인 특성이 있는가 하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특성도 있다. 이 지구상에 사는 80억이 넘는 인류는 수많은 종족이 각 지역에 포진해 살고 있는데 각 민족이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또 역사가 다르듯이 그 민족의 성질도 각기 다 다르다.

동물은 비록 초식동물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사나운 성질이 있고, 사람은 근본적으로는 어진 성질을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생명체는 대부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쌓은 성질로 인하여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성질에 따라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다 똑같은 조건이나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 동물로 살다가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 천상의 음악 세계에서 살다가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 지옥에서 살다가 태어난 사람, 각자가 살아온 세상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그 성질이나 행위가 다 다르게 된다.

 

마을의 형님이나 형수님들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나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은 숨길 수도 없는데 내가 짓는 논에 대해서도 애를 태운다. 모내기 /게티이미지뱅크
마을의 형님이나 형수님들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나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은 숨길 수도 없는데 내가 짓는 논에 대해서도 애를 태운다. 모내기 /게티이미지뱅크

함께 사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행위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아, 이 사람은 처음으로 사람이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친절하게 안내하면 어떨까? 현재 마주치고 있는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자료를 명확히 알 수 있거나, 추정해 볼 수 있다면 살아가면서 서로 부딪치는 감정 때문에 오는 괴로움이 적어지지 않을까?

나는 착하지 않으면 농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민이 되면 자연히 착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어진 사람들이지만 어리석은 사람들도 더러 있다.

농민들은 선거할 때마다 모든 정당이 농민들을 위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자기들에게 어떤 당이 유리한지, 어떤 후보자가 농민들에게 유리할 것인지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수확한 쌀이나 곡물 가격이 폭락하면 오직 대상이 없는 세상을 원망할 뿐이다.

내가 고향 땅을 쉽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어울려 자라고 같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사시던 집을 드나들지 않으면 금방 폐허가 될 것 같아서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2~3일씩 고향 집에 머물다 올라가곤 했었다. 그러다가 아내도 동행을 해서 내려왔다가 올라가곤 했는데 친구와 셋이서 주로 어울렸다.

우리 고향은 북향이라서 겨울에 동네도 그러하지만, 고향 집은 무척 추웠다. 겨울에는 시골에서 할 일이 없고 고향 집이 무척 춥다는 아내의 얘기를 듣고 친구는 아내에게 하우스를 하면 겨울에도 일이 있고 따뜻하다고 권했다. 

나와 아내가 작년에 고향 땅을 내려와서 하우스를 짓자 삽시간에 인근에 소문이 퍼졌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 출신이 농사를 짓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 어떤 직업에도 귀하고 천한 직업은 없다. 귀하고 천하다는 것은 그가 많이 배운 자이거나 부유한 자이거나 높은 직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행위를 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태도에 달린 것이다.

가난한 것이나, 적게 배운 것이나, 키가 작은 것이나, 못생긴 것들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잘난 행세를 하고 욕심만 부린다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들을 속이는 것들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지런하고 베풀면서 산다면 부자가 되고 덕망이 쌓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많이 가지고 살면서 인색하거나 혹은 게으른 사람은 언젠가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어릴 적부터 잘 알던 동네 형수님은 내 등을 치면서 "네가 왜 농사를 짓나?"라고 질책을 하였고, 이웃 마을 형님은 "이제 너희 노후 놀이터를 만들었구나"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마을의 형님이나 형수님들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나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은 숨길 수도 없는데 내가 짓는 논에 대해서도 애를 태운다. "대름(도련님)! 모자리(못자리) 논에 물을 대야(넣어야) 되겠던데요."

 

우리 고향은 북향이라서 겨울에 동네도 그러하지만, 고향 집은 무척 추웠다. 겨울에는 시골에서 할 일이 없고 고향 집이 무척 춥다는 아내의 얘기를 듣고 친구는 아내에게 하우스 농사를 하면 겨울에도 일이 있고 따뜻하다고 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고향은 북향이라서 겨울에 동네도 그러하지만, 고향 집은 무척 추웠다. 겨울에는 시골에서 할 일이 없고 고향 집이 무척 춥다는 아내의 얘기를 듣고 친구는 아내에게 하우스 농사를 하면 겨울에도 일이 있고 따뜻하다고 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루가 멀다고 동네 형수님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채소나 곡식을, 우리가 하우스 안에 들어가 있는 사이, 몰래 갖다 놓고 가시는데 우리는 또 그분이 누구인지 추정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도시의 잘 배운 사람들은 자그마한 빌라 수리하는데도 계약서를 쓰자고 덤비는데, 농촌 사람들은 공사비용이 얼마나 들겠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않는다. 한참을 재촉해서야 겨우 며칠 동안 일했으니 얼마라고 하는데 그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면서 세상에 베푼 것들은 어쩌면 굳이 거두어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궁극에는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가 노력한 일의 결과는 아내나 자식, 혹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가지 않는다. 따뜻한 봄이면 땅속에 있던 씨앗이 움을 틔우듯이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이러한 이치를 잘 알고 잘 따라서 살면 편안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반대로 이 이치를 거슬러 살면 바로 괴로움이 닥쳐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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