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취청오이 씨앗 사서 심고 보니 가시오이
추위에 유독 약해 난방과 보온에 애먹어
개구쟁이처럼 쑥쑥 자라 돌보기에 바빠
병치레가 심했지만 그래도 유기농 고집

지난해 11월 2일 호박 모종을 하우스 두 동에 심었다. 호박은 심고 나서 약 한 달 보름 정도 되면 출하를 시작한다. 12월 10일경부터 호박을 따기 시작하여 4월 10일경 마무리했다. 지난 겨울에는 호박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이곳 호박 시설재배 농민들은 꽤 재미를 보았다.
겨울 농사로 호박 농사가 끝나면 호박을 한 차례 더 심거나 재배자의 취향에 따라서 수박이나 열무를 심기도 하고 일부는 오이를 심는다. 우리는 봄에 일찍 오이를 심기 위해서 아예 한 동을 비워두었다.
우리가 키우는 호박은 주키니 호박인데 이 녀석은 추위에도 대체로 강하다. 남녘이라지만 겨울에 새벽 온도는 서울보다 더 낮은 경우가 많다. 대체로 영상 4도 이하로 떨어지면 농작물이 피해를 본다고 한다.
하우스 비닐은 보통 3중으로 되어 있는데 1중 비닐은 매우 두껍다. 지하 100m 내지 200m 아래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1중 비닐 바로 아래 파이프를 타고 설치된 호스로 연결하여 밤새 2중 비닐로 쏘아주면 수막이 생기면서 보온을 해 준다. 그리고 그 아래 두꺼운 비닐로 3중으로 비닐을 쳐 주어서 보온을 하는 것이다.
겨울에 하우스에서 오이를 키우려면 난방비가 제법 많이 들어간다. 오이는 호박보다 추위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최저 온도를 섭씨 10도 이상으로 올려주어야 하는데 그 정도 온도를 유지하려면 무척 힘이 든다.
일반적인 시설재배는 3중으로 비닐을 치고 수막을 틀고서도 다시 열풍기를 돌려서 온도를 올리는데, 1도 올리는 데도 석유가 제법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보통 호박이 끝나는 4월경에 오이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앞당겨서 3월 초에 모종을 심어서 모험을 해 본 것이다.
오이 종류에는 서울에서 많이 소비되는 백다다기와 취청과 가시오이가 있다. 가시오이는 열매에 가시가 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보니 어릴 적에 뒷밭에서 키우다 오이가 크면 바로 따서 먹었던 기억이 났다. 취청오이는 마치 가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시가 있다. 백다다기는 가시가 없다.
가시오이가 추위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취청오이를 먼저 심고 4월이나 5월경에 가시오이를 심는다. 그런데 취청오이 씨앗이라고 사서 싹을 틔웠는데 나중에 열매를 맺고 확인해 보니 가시오이였다. 오이는 심고 나서 보통 한 달이면 열매를 따기 시작하여 이후 한 달 동안 수확하면 생명을 다한다. 그런데 가시오이를 일찍 심다 보니 추워서 오이 나무가 크지를 않고 열매를 맺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온도를 높이는 데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오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 올라간다. 하룻밤 사이에도 키가 10cm 이상 쑥쑥 커 올라가기 때문에 오이를 뒤따라가면서 돌보아 주느라 농부는 무척 바빠진다.
오이에 비하면 호박은 마치 착한 학생처럼 차근하고 편안하게 자란다. 보통 주키니 호박은 어른 허리 이상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커서도 농부들이 내려다본다. 한데 작년 겨울 우리 호박은 우리 키를 뛰어넘어 열매를 따는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았다.
이에 비하면 오이는 마치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자란다. 매일매일 커 올라오는 오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 타고 올라갈 줄을 연결해 주지 않으면 땅 위를 기어간다. 그러다가 더듬이에 뭔가 걸리면 여지없이 잡고는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농부의 키 높이 정도에서 줄을 매달아 집게로 줄을 오이의 허리에 고정해 준다. 그러면 줄을 타고 올라가면서도 두 손을 하늘로 쭉 뻗어서 계속해서 뭔가를 잡으려고 애를 쓴다. 오이 마디마다 가느다란 손(더듬이)이 나오는데 그 손으로 자신을 매어 놓은 줄을 잡거나 혹은 옆줄을 잡기도 한다. 때로는 옆 친구를 잡기도 하고 서로 손이 엉키기도 한다. 자신의 이파리를 휘감기도 하고 자기 열매를 감아서 성장을 못 하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오이들은 뭔가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한번 잡았다 하면 놓아주지를 않는다. 줄을 잡고 있는 힘도 보통이 아니다. 어마어마하다. 자르지 않고는 풀기가 어렵다. 어떤 오이는 줄을 타고 올라가다가도 두 손이 허공을 휘젓다가 잡히지 않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러다가 줄기가 꺾이기 때문에 농부는 커가는 오이를 따라잡기 위해서 밤낮없이 바쁘다. 날씨가 따뜻하고 물만 풍족하게 주어도 열매는 돌아서면 금방 굵어져 있다.
언젠가 동네 친구는 ‘이제 제발 오이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더운 여름날 하우스에서 오이 80여 박스를 땄는데 박스 작업하는 데만도 무지하게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오이를 따 주지 않으면 오이 나무가 상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호박은 추위에 어느 정도 강하기 때문에 병치레를 잘 하지 않는데 오이는 다르다. 따뜻한 날씨에 성장하기 때문에 크면서 바로 병을 달고 산다. 노란 반점이 생겨서 잎이 말라가는 노균병, 발목이 짓물러져서 죽는 역병, 진딧물이 판을 치는가 하면 밤낮의 기온 차로 생기는 곰팡이, 흰가루이 등등 병마와 싸우는 오이를 돌보다 보면 마치 내 자식이 병과 다투는 기분이 든다.
병균들은 어린잎이나 땅에서 제일 가까운 잎의 뒷면에서 자라기 때문에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맨 아래 잎의 뒷면에서 쫙 다 번지면 잎의 전면으로 올라온다. 일시에 전면으로 올라온 병균은 다시 그 위 잎의 뒷면에 달라붙는다. 이렇게 눈에 띄었을 때는 이미 그 주위에 병균이 많이 번진 상태이다.
농약을 쳐주는 것이 하루만 늦어져도 하우스 안에 다 퍼져버린다. 작년에 처음 오이 농사를 하면서 병이 생겼는데 유기농약만 치고 예사로 여겼더니 그 이후에 큰 곤욕을 치렀다. 농기술센터에서 직원이 와서 보고는 우리에게 ‘처음 농사를 지으시면서 유기농을 하시면 어려우실 텐데요. 그냥 보통 농민들이 하는 방식으로 하시지요’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호박도 다양한 요리로 만들어지고 호박전도 맛있지만 오이 또한 반찬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 그중 간단하게 오이피클 만드는 법 한 가지를 소개해 본다.
오이피클 만들기
재료 :
오이, 물, 설탕, 식초, 소금, 향신료(향신료는 피클링스파이스, 통후추, 월계수 잎 중에서 선택)
(오이 1kg, 물, 설탕 식초 (약 1:1:1), 소금 한 스푼)
1. 소독된 용기(유리병)에 오이를 썰어서 넣는다.
2. 끓는 물에 소금, 설탕, 향신료를 넣고 끓인다.
3. 불을 끄고 끓인 물에 식초를 넣는다.
4. 물이 뜨거울 때 오이가 담긴 용기(유리병)에 붓는다.
관련기사
- [정진권 더봄] 고양이는 충성심이 없다고?···내 친구 홍시 이야기(2)
- [정진권 더봄] '풀 뜯어먹는 고양이' 내 친구 홍시 이야기(1)
- [정진권 더봄] 고향 사람들(4)···달집 이야기
- [정진권 더봄] 고향 사람들(3)···이장선거
- [정진권 더봄] 정이 넘치는 고향 사람들(2)
- [정진권 더봄] 정이 넘치는 고향 사람들
- [정진권 더봄] 호박 비닐하우스에 매일 불경을 읽어주었더니···
- [정진권 더봄] 모처럼 만의 서울 나들잇길이 이리 험할 수가
- [정진권 더봄] 농사가 쉬워 보인다고요? 볍씨 길러 모내기까지 A to Z
- [정진권 더봄] 멜론 농사에 도전했다 실패···원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