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재경총동문회 행사가 있어서 가는 날
장날이라 버스는 마을마다 돌고 돌아
고속버스 시간 놓칠까 안절부절못해
1~2년 만에 본 서울은 왜 이리 낯선지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도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 동창들의 모임도 활성화되고 여러 취미 활동 모임이나 산악회 모임도 부활이 되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재경 총동문회 모임도 부활하여 6월 3일 축제를 연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서울 동기 모임의 총무를 15년 이상 해오다 보니 자연히 친구들이 나를 쳐다본다. 모내기 철이라 농촌에서의 일정이 무척 바쁘게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볼 욕심으로 서울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출발하는 7시 50분 버스를 탔다. 평소 동네로 들어올 때 이용하던 버스는 294번인데 이 버스는 293번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진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40분이면 가지요?”
기사는 조금 갸웃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정자나무 아래까지 태워다준 아내가 돌아가고 버스도 출발하였다. 장터에서 할머니들이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차에 올랐다. 지나는 마을마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차에 올랐다.
잘 내려가던 버스가 인담 마을 입구에서 방향을 틀더니 인담 마을로 거슬러 올라갔다. 인담 마을에서 다시 상인담까지 간 버스는 상인담에서 한참을 정류하였다. 아마도 상인담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마을에서 내가 버스를 탈 때 여자 손님이 한 명 먼저 타고 있었는데 그 손님은 상인담에서 내렸다. 이곳 상인담까지 오는 중에 버스 안은 승객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이 시골 노인들인데 버스에 탑승하는 데도 한참이 걸리고 하차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8시 30분이면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할 시간인데 이제서야 문산 사거리를 지난다. 나는 안달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는데 일하라고 거절한 것이 후회되었다.
버스는 진주 혁신도시를 돌아서 종합운동장으로 해서 상평 공단을 거치고 진주시청 앞을 지나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갈 것이다. 혁신도시를 도는데 신호등마다 다 걸렸다. 나는 차츰 초조해지고 안절부절못했다.
이번 서울행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 5월 31일 아침 6시 40분에 고속버스 표를 예약하면서 6월 3일 아침 표를 예약한다는 것이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나의 실수로 당일(5월 31일) 아침 8시 사천 출발 버스를 예약했었다. 그날 아내와 아들이 무슨 대화를 하다가 아들이 인터넷 ‘버스 타고’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고는 당일 아침 버스가 예약되어 있다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아빠에게 확인을 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오후 늦게 내가 확인했을 때는 이미 환불받을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린 뒤였다. 큰돈은 아니지만 경남 사천서 서울행 고속버스표 한 장 값이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미리 알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예약 당일 아침 표를 예매한 줄도 모른 채 오늘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려다가 승차권이 발권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시내로 들어서면서 상평공단 로터리를 지날 때는 8시 40분이 지나 있었다. 기사에게 다시 9시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여차하면 내려서 택시를 탈 요량이었다. 기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여기서 5분이면 가는데 신호등이 걸리네요’ 하면서 앉아있으라고 손짓했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했을 때는 8시 50분이 채 안 되었다.
나는 가방을 등에 메고 한 손에는 아들에게 줄 토마토 박스를, 다른 한 손은 아내가 아들에게 줄 오이로 만든 반찬 박스를 들고 뛰었다. 터미널에 와서 국수라도 한 그릇 사 먹고 탑승하려고 했었는데 아침 식사는 어렵게 되었다. 승차권을 발권하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좌석에 앉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한참 깊이 잠에 빠졌는데 버스 기사가 신탄진휴게소에 와서 깨웠다. 20분의 시간을 줄 터이니 먹을거리를 차 안으로 가져오지 말고 충분히 드시고 탑승하라고 한다. 휴게소로 들어가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문표를 보니 냄비우동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주문했는데 ‘아차!’ 이렇게 가격이 높으면 양이 많다는 얘긴데…
내가 받은 표는 001번이었다. 내 앞에 936번과 988번이 있었는데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우동 손님도 별로 없었는데 10분이 지나서야 1번 호출이 나왔다. 나는 불만의 표시로 조리사가 보는 앞에서 고춧가루를 우동에 듬뿍 집어넣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우동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너무 오래 끓여서 국물은 거의 졸았고 짜기까지 했다. 어묵은 잔뜩 들어있었는데 뜨거워서 먹기가 힘들었다. 국물을 마시고 싶은데 냄비가 뜨거워서 입을 댈 수도 없었다. 그래도 대충 먹고 18분이 지났을 때 그릇을 퇴식구에 갖다놓고 화장실을 거쳐서 버스로 달렸다.
버스에 오르니 내가 가장 늦게 탑승한 손님이었다. 차 안의 모든 눈이 나에게로 쏠렸다. 기사님이 우리에게 준 20분에서 약 20초가 늦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되었는가 하고 나 자신을 살펴보았더니 셔츠에 우동 국물이 튀어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 사는 아들이 차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탔다. 우리 집은 우면동이고 행사장은 항공대학교였으므로 전철이 한강을 건넜다.

여의도 63빌딩과 쌍둥이 빌딩 그리고 한강 북쪽의 아파트들이 마치 꿈의 도시 같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거의 50년을 이 도시에서 살았었는데… 나와 가족은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귀향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울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행사장에 도착하여 그립던 친구들을 만났다. 알고 지내던 선배들도 만나고 후배들도 찾아왔다. 봄날의 오후가 무르익어 가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 좋은 봄날을 두고 먼저 떠나간 친구들이 생각났다.
아, 이 눈부신 햇빛과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푸르게 하늘로 두 손 벌린 나무들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