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누워있는 부처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
배고픈 석공이 지은 탑은 떡이 되리라
장길산과 아버지의 꿈이 잠든 골짜기

길을 잃었다. 광주 인터체인지를 나와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 벌써 세 번째다. 내비게이션은 연신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초행길에다 거리가 멀어 서둔다고 했는데 예상 시간보다 오래 걸렸고 목적지에 다 와서 연신 헤매고 있다.

무엇에 홀린 듯 길을 벗어나고 또 같은 길을 돌며 시간이 꽤 지났다. 봄나들이 삼아 존경하는 분의 퇴임식에 가는 길이었는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는 틀린 일이다. 간다고 해도 뵐 수 있을지 불확실해 축의금을 대신 부탁했다. 

딱히 정해둔 일정은 없었다. 4시간 넘게 온 길을 그냥 돌아서기는 허무했고 산자락을 넘어 꽃 바람이 불었던 탓에 그저 보이는 길을 따라갔다. 지명은 낯설고 내비게이션에 보이는 지도로는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바퀴가 구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니 화순이다. 얼마쯤 들길을 지났는데 갑자기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야트막한 언덕이 마치 골짜기를 뒷짐 지고 있는 형세다.

소설『장길산』대단원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운주사 /게티이미지뱅크
소설『장길산』대단원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운주사 /게티이미지뱅크

‘천불천탑 운주사’ 

표지판에 그렇게 적혀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장길산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골짜기가 아닌가.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마치 작정이라도 했던 것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곳에 닿아 있었다. 첫닭이 울었다는 거짓말 때문에 이루지 못한 새 세상의 꿈. 그 꿈이 잠자는 골짜기에 온 것이다.

아무도 없다. 인기척은커녕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기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 없이 내 숨소리만 들린다.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를 향해 태연하게 석불이 늘어서 있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불쑥 탑이 나타났다. 천 년 동안 망연하게 시간을 내려다보았을 탑과 석불은 어눌하고 낯설다.

솜씨가 어설픈 석공들이었는지 불상은 엄숙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부처님 얼굴은 초등학생 조카가 열심히 그린 얼굴과 닮았다. 탑은 또 어떤지. 배고픈 백성들이 바램을 쌓아 올린 듯 송편을 빚은 모양의 탑이 시선을 잡는다. 호떡을 겹쳐 놓기도 했고, 김이 오르는 시루떡을 포갠 듯한 떡 탑에 처음 보는 삿갓 모양새의 탑이 골짜기 깊은 곳에 있다.

민중해방의 미륵성지 운주사의 탑이 마치 떡을 쌓아 올린 듯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민중해방의 미륵성지 운주사의 탑이 마치 떡을 쌓아 올린 듯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1000년 전 불상을 만져보고 탑을 더듬으며 언덕을 올랐다. 해가 서쪽을 비추고 있었다. 빛을 따라 가파른 언덕에 불쑥불쑥 서 있는 불상들, 정을 쪼던 석공에게 버려진 채 누워있는 돌무더기를 지나 봉우리에 오르자 누워있는 불상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상이 오는 날 일어나 앉을 거라고 했던 그 와불이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감은 눈매의 와불 한 쌍은 어쩐 일인지 낯이 익었다. 처음이 분명한데 어디서 본 듯했다. 이상하다··· 어디서 봤을까··· 한참을 마주하고 서 있다가 기억해 냈다. 사진. 아주 오래된 아빠 사진에서 본 그 바위였다.

생전에 쓰셨던 물건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오른쪽 아래 날짜를 적어 넣은 흑백사진에서 젊고 건강한 남자가 한 손으로 허리를 괴고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귀가 긴 삼장법사처럼 생긴 와불 옆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한 아빠가 서 있었다. 수줍음과 설렘을 가득 담고, 가늘어진 눈으로 웃고 있는 청년.

삼우제를 지낸 다음 날 나는 내 또래 청년이던 그를 사진으로 만났었다. 내 기억 많은 부분에서 아빠는 아프셨고, 짜증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표정이라니? 아빠 얼굴의 빛나는 환한 기색이 너무 낯설어 기쁘다기보다 당황스럽고 묘하게 서운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본 아빠 얼굴에는 생전에 내가 보지 못한 미소가 가득했다. ‘뭐야···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엄마가 볼까 봐 숨어서 한참 동안 눈물을 찍어냈던 것 같다.

누워있는 부처가 일어나면 찾아올 새로운 세상, 퇴마록과 장길산의 모티브가 된 운주사의 와불 /게티이미지뱅크
누워있는 부처가 일어나면 찾아올 새로운 세상, 퇴마록과 장길산의 모티브가 된 운주사의 와불 /게티이미지뱅크

그의 짐은 무거웠다. 몰락한 집안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평생 ‘성공해야 할’ 당신의 형님과 자식뻘이 되는 어린 동생을 대신해 모든 식구를 부양했다. 평생 일만 하셨던 성실하고 답답한 아빠. 우리 시대 아버지가 흔히 그러하듯 나는 지금도 아빠가 일 외에 즐겼던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손때묻은 필름 카메라와 아끼던 빈티지 전축으로 어렴풋이 그의 취향을 짐작할 뿐이다.

어린 시절 함께한 추억도 손에 꼽힌다. 남산 식물원, 온양 온천 그리고 여름 물놀이 몇 번과 놀이공원에 갔던 것 정도. 경제적으로 나아진 인생의 후반에 당신은 몹시 아팠다. 건강이 나빠 비행기를 탈 수 없었으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셨고 돌아가시던 해 겨우 제주도에 다녀오셨다.

여행 사진 속에서 아빠는 온통 찡그린 표정이다. 유채꽃 앞에서, 돌하르방 옆에서도 내내 잔뜩 찌푸린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아빠가 사진을 다 망쳤잖아. 좀 웃지 이게 뭐야?!” 모처럼 여행에서 찡그리고 있는 아빠에게 나는 그리 타박을 퍼부었더랬다.

사진 속 아빠가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던 곳이 바로 거기다. 허둥지둥 와불의 어깨 쪽, 오래전에 본 사진 속 그 자리로 갔다. 자근자근 밟아둔 옛 기억이 차례로 밀려와 겹쳤다. 사진 속 아빠의 미소, 설렘이 가득한 청년의 꿈 꾸듯 환하던 모습.

생각해보니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던 쪽은 나였다. 더 이상 환하고 보드랍게 웃을 수 없게 된 사람, 호흡이 가빠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사람을 등 떠밀어 간 여행에서 나는 그런 아빠를 세워놓고 “사진 찍는데 왜 웃지도 않느냐?”면서 눈을 흘기고 짜증을 부렸다.

목젖이 뻑뻑해지더니 명치부터 한 뼘 위까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찾게 된 운주사, 아무도 없는 언덕에서 그날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아이처럼 울었다. 

오늘 운주사를 다시 찾는다. 전라남도 화순 천불산 골짜기, 운주사에는 잊었던 얼굴, 잃어버린 꿈이 있다. 이름 모를 조각가와 장길산의 꿈, 건강하던 내 아빠의 얼굴과 미소가 거기 있다.

와불이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이제는 계단이 놓였다. 해가 질 무렵, 서쪽 계단을 오르며 내가 보지 못한 얼굴을 그려야겠다. 이름 모를 석공,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고 새 세상이 오는 날을 기다렸을 사람들 그리고 밝고 건강했던,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청년 내 아버지. 그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찍어냈던 서른 살의 나와 아빠를 부르며 엉엉 울었던 그날의 내 얼굴까지.

다시 보고 싶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때처럼 웃는 아빠를 만나고 싶다. 와불 옆에 앉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운주사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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