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온순한 용서란 없다
용서는 승자의 언어
내게 진실한 불온함
(계속)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흔히 ‘눈먼다’라고도 하지만 마음을 빼앗긴 후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다. 더블린에 도착하고 그들의 멋진 불온함에 반해버린 후에는 당연하게 넘길 많은 것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집요하게 그 까닭이 궁금해졌고 묻게 된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더블린의 불온함 찬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아일랜드는 영어를 쓰는 나라다.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공항에서부터 나의 관심을 끌어당긴 것은 간판, 표지판이다. 여행자가 표지판에 민감한 일이야 당연하지만 이번엔 좀 유별난 관심이다.
알파벳으로 낯선 언어가 적혀 있고 그 아래 영문표기를 한다. 예를 들면 Aerfort 아래 Airport(공항), Busanna가 먼저고 밑에 Buses(버스), Sli Amach는 Exit, 이런 식이다. 읽기도 힘든 낯선 언어가 뭔가 했는데 바로 게일어다. 800년간 영국 지배를 받는 동안 아일랜드 사람들이 빼앗긴 언어인 것이다.
모든 표지판에 아일랜드어(Gaeilge)와 영어를 함께 적는 방식이었다. 영국 통치를 겪으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잃고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당했던 일제 지배가 떠올랐다. 35년 식민지 동안 우린 창씨 개명을 해야 했고 우리 글과 말은 금지되었다. 윤동주는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35년도 그런데 800년이었다니···. 섬뜩하고 아득한 기분이다.
그날부터 공연히 아일랜드어 표기가 애틋했다. 게일어와 영어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어느 날, 영어 표기 없이 Garda라고 쓰인 차가 경찰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경찰차에도 경찰서에도 경찰복에도 POLICE라는 표기는 없었다. Police는 세계 공용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다. 비영어권 나라에서도, 심지어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할 정도인데 다짜고짜 Garda 뿐이라니.
의문과 호기심으로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열심히 Police 표기를 찾아보았다. Police라는 영어를 쓴 곳은 없었다. 왤까? 왜지? 궁금했다.
“왜 모든 말을 다 영어로 쓰면서 Police라는 말은 없어?”
“우리는 그 단어를 싫어해. 너무 나쁜 뜻이 담겨 있어. 쓰지 않아.“
아일랜드 친구는 그 대답을 하면서도 ‘폴리스’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 단어’라고 표현했다. 순간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Police는 아일랜드 사람에게 ‘순사’ 느낌이 아닐까?’ 일제시대 ‘일본 순사’는 잡아가는 사람, 때리는 사람, 공포에 떨게 했던 혐오의 대상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도 몸서리치게 되는 단어인데 800년 영국에게 당한 아일랜드에서 그 단어가 금기인 것은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날 이후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Garda라고 적힌 것을 보면 윤동주가 떠올라 뭉클했다. 어쩌겠는가, 떠오르는 것을···. 시작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온통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 온순하지 않게 맞서 버텨온 모든 불온함에 뭉클해진다.

더블린 시내를 오가다 보면 높은 첨탑을 쉽게 볼 수 있다. 오코넬 거리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뾰족한 스파이어(The Spire)는 2003년에 세워졌다. 120미터 높이로 찌를 듯 솟아 있는, 찔리면 진짜 아플 것 같은 이 기념비가 처음엔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았다. 높은 건물이 없는 더블린 시내라 어디서든 눈에 쉽게 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일랜드 GDP가 영국의 GDP를 넘어선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니 달리 보인다.
길었던 피지배 식민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우리가 비로소 너희를 넘어 섰노라’고, 진정으로 이겼음을 자축하는 뜻이라니 은근히 부럽고 기특한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도 광화문 네거리에 이렇게 하늘을 찌르는 듯한 탑을 하나 세울 날이 어쩌면 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크게 멋없이 높기만 한 탑이라도 좋으니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는 날, 총독부 자리가 있던 자리에 세워 올렸으면 좋겠다. 더블린 스파이어 기둥에 손을 얹고 잠시 유치해지는 기분으로 멋진 ‘망각금지 기념물’을 세울 수 있을 날을 기원해 본다.
오코넬 스트리트 끝단에 파넬 광장이 있다. 더블린에 있는 동안 나는 파넬 광장에 위치한 ‘작가박물관’에 자주 갔다. 제임스 조이스, 조나단 스위프트,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패트릭 피어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 출신 작가들이다.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이 되라는 온건한 충고, 포용과 평화가 해답이라는 의견에 정면으로 맞서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 위대한 작가들이다.
그들의 작품과 초상, 개인물품이 전시된 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정의로운 척, 괜찮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모른 척, 나를 옭아매는 위선이나 위악을 버리는 것을 생각했다. 치열하게 진짜 나를 찾는 그랜드 투어, 첫번째 도시 더블린에서의 깨달음은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불온함이다. 내가 나 될 수 있는, 나 자신의 불온함을 추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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