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가봐야 할 곳' 리스트를 버리고
비로소 나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하늘을 날던 마음은 터키에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푸르륵 바람이 빠져버렸다. 실망스럽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터키는 나라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로마 유적은 로마보다 터키에 더 많이 남아있고 흔히 ‘그리스 문명’이라고 부르는 인류문명이 발생하고 꽃피운 지역은 대부분 터키에 속해 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수천 년 시간 속 생생한 역사 여행이 되는 땅에서 시시한 기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카메라가 문제인 걸까? 눈으로 보는 대로 찍히지 않았다. 맹렬하게 찍었지만 충분하지 않고 허전했다. 마음먹고 녹음기도 샀다. 노트를 적기 힘든 상황이면 녹음이라도 해서 최대한 많이 담겠다는 의지였다. 카메라로 찍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유물의 설명문을 찍거나 노트에 적었다.
터키 여행의 관문이자 보물 같은 도시 이스탄불 탐방은 끝내기 어려울 만큼 볼 것이 많다. 성소피아와 톱카프 궁전, 고고학 박물관과 이슬람박물관, 파노라마 역사박물관에 모자이크 박물관,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태블릿에 담아온 파일을 열고 체크하면서 꼼꼼하게 돌았다. 닷새째 되던 날, 파김치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무쉬에 앉아있던 나의 또 다른 나로부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뭐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동안 아무런 반응도 대꾸도 없던 내 안의 내가 마침내 입을 떼고 쏟아낸 책망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과 사진으로 보면서, 심지어 상상만으로도 전율하게 하던 모든 것들을 정작 와서는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평가받기 위해, 채점을 앞두고 과제를 받은 사람처럼 열심히 노트하고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남기며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을 뿐 나는 그동안 열망해온 것들을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알 수 없던 무기력과 초조함의 이유였다.

나는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대학 졸업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기업의 로고 아래 세상이 말하는 커리어를 쌓았다. 점점 내 시간과 열망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의 것이 되었다. 일하는 성취의 기쁨 외에 다른 것에는 무감했다.
수업 시간에 몰래『폭풍의 언덕』을 읽다가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들켜 벌을 섰던 소녀는 사라져버렸고 내 열망과 시간은 조직을 키우고 살찌우는 일,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는 사이, 내 신경은 더 이상 늘일 수 없는 고무줄처럼 팽팽해져 끊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무실에 축하 화분이 늘어날수록 명랑만화 가면을 쓴 좀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좀비의 하루를 보내고 늦게까지 이어진 회식으로 몸이 젖은 휴지처럼 무겁고 늘어지던 날이었다. “어떻게 하니··· 재희야. 영미가 죽었대.” 깊은 밤 벼락처럼 소식을 전한 친구는 전화기 뒤에서 한참 동안 울기만 했다.
영미의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회식 중에 너무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는 영미는 차 안에서 이른바 골든 타임을 놓친 후 발견되었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대학 4년 동안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서 한 몸처럼 붙어 다녔던, 요즘말로 절친이었다. 그를 만나고 불과 며칠 후 일이었다.
슬프기보다 그저 멍했다. 투병중이었다면, 불의의 교통사고였다면 차라리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 같다. 회식 중에 뇌출혈로 죽은 내 친구의 죽음은 폐허를 지나는 것 같던 내 인생에 벼락같은 경고였다. 그럭저럭 참아지던 일상의 진부함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끊이지 않는 도돌이표가 붙어있던 삶에는 의문부호가 찍혔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처럼 살고 싶을까?’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깨달음, 내 마음에서 멀어지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무참했다. 막막한 여름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 한국에서부터 빽빽하게 적어 온 ‘리스트’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가봐야 할 곳’이란 이미 ‘다른 사람이 가본 곳’일 뿐이다. ‘해야 할 것’이란 먼저 한 그들이 정한 것이고. 그들이 가본 곳으로 가고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 하는 것으로 내 인생, 내 여행을 기록할 수는 없었다.
세상이 예정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서 떠나온 길이 아닌가. 앞서간 사람들의 길을 따라 걷는 대신 깨지고 넘어지더라도 마취된 꿈을 깨우고 싶었다. 이제라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시작되는 진정한 여행을 마주해야 한다. 모처럼 심장이 뛰고 손가락 끝까지 피가 돌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나는 일정표도 없이 출발이 가장 빠른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 무모한 나를 만났다. 기록마저 사라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곳을 지나며 마주한 장엄한 풍광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시간을 지나 역사가 된 사람들의 자취와 남겨진 유물을 찾아 걸었고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며 지중해에서 수영했다.
수영 실력이 형편없으니 겨우 첨벙첨벙 바닷물에 몸을 부딪는 시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평생 처음이었다. 하고 싶은지도 알지 못했던 해맞이 바다 수영이었다. 달이 뜬 밤, 호텔 앞 에게해 바다로 나갔다. 달이 비치는 물 위에 누워, 아래위로 딱딱 이빨이 부딪히는 한기에도 출렁이는 물에 맞춰 소리를 내 혼자 웃었다. 나만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카메라와 노트, 태블릿을 모두 덮어버린 후 내가 만든 ‘터키에서 절대 놓치지 말 것’ 리스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이름 모를 골목을 돌다가 냄새에 끌리는 케밥 사먹기’ ‘골목에서 만난 한 눈 잃은 고양이에게 케밥을 모두 양보하기’ ‘모스크에서 발을 씻고 맨발로 사원 대리석 바닥 걷기’ ‘현대미술관 잔디밭에서 낮잠 자기’ ‘공동묘지 뒤에 있는 카페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차이 마시기’···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허공의 시간을 한참 보낸 뒤에 떠오르곤 했다.

터키를 떠나 오기 전날, 종일 보스포루스 바닷가를 걸었다. 이스탄불에서 밀린 숙제하듯 돌아다녔던 박물관과 미술관 궁전, 모스크를 감싸 안고 있는 언덕을 바라보며 피에르 로티로 걸어 올라갔다. 해가 지기 전에 짧은 시간 동안 달이 떠올라 함께 있었다.
해협을 중간에 두고 마주 보듯 떠오른 달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영미를 생각했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내가 보일까? 질문을 던지고 나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이 네 삶의 마지막이라도 이렇게 살고 싶어?” 친구가 남겨준 쉽지 않은 질문을 가지고 떠나온 길에서 난 대답을 얻지 못했다. 대신 버렸다. 당장 답을 찾으려는 조급함과 강박을 버린 나는 조금 뻔뻔해졌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으냐고? 아직은 모르겠어. 친구야, 하지만 시작은 했다.” 뭐가 되든 되겠지! 난 비로소 내 인생이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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