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광맥 탐나겠지만 절대 불가능 영역
국내 기업 납품형 AI 지속수익 못 만들고
GPU 전력비 폭탄···유지비 세금에 의존
소버린 세글자 버릴 때 비로소 길 열린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모듈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심장부이자 거대한 파이프라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꿈꾸는 ‘소버린 AI’ 정책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API가 ‘황금 광맥’으로 불리는 이유는 호출 한 번마다 과금되는 구조 때문이다. 사용자 수가 늘수록 트래픽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토큰당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오픈AI의 GPT API는 매분 매초 전 세계에서 호출되며 거대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수십 년간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결과다.

그런데 오픈AI의 샘 올트먼조차 API의 절대권력을 쥐지 못했다. GPT-4o는 초거대 모델이지만 운영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Azure) 클라우드에 올라가 있다. 오픈AI는 MS와 API 수익을 일부 나눠 갖는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클라우드 인프라 덕분이다. 데이터센터, GPU 팜, 글로벌 네트워크가 맞물려야만 API 호출이 지연 없이 이뤄진다. 한국은 이 핵심 인프라가 없다. 이제야 SK그룹이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불러 울산에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허둥대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GPT-3조차 돌릴 수 없는 수준의 GPU 개수로 파운데이션 모델 공모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술 자립’을 외치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의 모습은 기괴하기만 하다. 마치 동네 PC방 서버로는 게임 한 판도 못 돌리면서 세계 e스포츠 리그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이 모든 쇼는 국민 세금으로 덮어버리는 선전전에 불과하고 기술 현실은 무너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소버린 API’ 집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API를 기업 서버에만 설치해 호출당 과금이 어렵다는 점이다. 한 번 납품하면 끝나고, 지속적인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결국 하드웨어 납품형 비즈니스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생태계가 외면한 API는 외부 사용자 유입도 차단한다. 스타트업과 개인 개발자들이 붙어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API는 성장 동력을 잃고 멈춘다. 결국 B2C 시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태워 B2B 계약만 간신히 유지하는 구조로 전락한다. 최근 삼성이 파운데이션 모델 공모에 참여한다는 보도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생명인 대기업마저 소버린에 종속되는 구조로 끌려들어가는 조짐처럼 보인다.

GPU 유지비는 폭증할 것이고,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전기 비용을 누가 감당할지다. 글로벌 API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 호출 비용으로 유지비를 분산하지만, 소버린 AI는 이런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 수 없다. 결국 소수의 정부 친화 기업들만 서버를 유지하면 유지비는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고, 정부 재정은 끝없이 소모될 것이다.

업데이트와 유지보수 비용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클라우드 API는 한 번 업데이트하면 모든 고객이 자동으로 최신화되지만, 소버린 API는 고객사마다 일일이 배포해야 한다. 유지보수팀 인력은 늘어나고, 비용 부담은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피드백이 끊기면 진화를 멈춘다. 글로벌 AI 기업들은 사용자 로그를 분석해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발전의 선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소버린 AI는 전 세계로부터 피드백 데이터가 들어오지 않으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립된 채 무한 루프에 갇힌다. 결국 모델은 점점 퇴보하고 기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정부가 ‘소버린’을 강조하는 이유는 ‘안보’와 ‘자립’이다. 하지만 글로벌 API도 클라우드 접근 제한을 통해 충분히 보안을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니라 데이터와 생태계를 쥐고 있느냐의 차이다. 지금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오픈소스 모델을 튜닝하거나 글로벌 클라우드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소버린’이라는 단어부터 지워야 한다. 세 글자에 집착하는 한 현실을 외면한 채 세금만 소모하는 고립형 AI로 전락할 뿐이다.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소버린 정책은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유령 도시처럼 사라질 위험이 크다. 차라리 카카오처럼 오픈AI의 GPT API를 각 기업 에이전트 서비스에 도입하거나 KT가 추진 중인 ‘한국형 챗GPT’처럼 검증된 모델을 국내화하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다. 글로벌 인프라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기술 격차를 메우려면 무엇보다도 ‘소버린’이라는 세 글자부터 버려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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