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 등 상장사선 영구채로 지배력 방어
SK엔무브 100% 비상장 자회사화 추진
자사주 방어·비상장 통합이란 양면 전략

SK그룹이 동일한 금융 수단인 교환사채(EB)를 활용해 상장사와 비상장사에 이중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SKC는 지배권 방어를 SK이노베이션은 비상장 자회사 SK엔무브의 지분을 100%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교환사채를 활용하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SKC는 오는 30일 총 2600억원 규모의 30년 만기 영구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해당 교환사채는 SKC가 보유한 자사주 250만3803주(전체 지분의 6.61%)를 기반으로 하며 교환청구는 2025년 7월 30일부터 2055년 5월 30일까지 가능하다. 교환권이 행사되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실질 의결권을 가진 주주에게 넘어가면서 우호지분으로 전환되는 구조다.
자사주를 직접 매각하거나 소각하지 않고 주주총회 등 특정 시점에 맞춰 의결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설계해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예상되는 대주주 견제 장치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규제 강화뿐 아니라 자사주 소각을 일정 기한 내 의무화하는 조항까지 포함하고 있어 이번에 SKC가 선택한 ‘30년 만기 영구 교환사채’는 자사주 활용의 법적 가능성을 ‘현행법상 유효한 계약’으로 미리 고정해두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앞으로 자사주 운용이 제한되더라도 이 사채만큼은 과거 법 체계 아래에서 성립된 계약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시간적 안전 장치를 설정한 것이다. 30년이라는 긴 만기를 통해 정치권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오랫동안 자사주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선점한 셈이다.
반면 SK그룹의 또 다른 중간 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은 전혀 다른 목적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지난 25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발행한 3767억원 규모 교환사채는 2026년 12월 31일 만기의 단기성 무이표 사채(이자 없이 만기가 도래했을 때 채권의 액면가만 받는 사채)로 교환대상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자기주식 340만4104주(2.25%)다. 이는 에코솔루션홀딩스를 통해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엔무브의 지분을 전량 취득하기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다.
일각에선 SK엔무브 100% 자회사화 추진을 두고 향후 기업공개(IPO) 준비의 일환이라는 해석을 내놓지만 윤활기유 및 윤활유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캐시카우인 SK엔무브가 단기적 시장 호응만으로 고평가 IPO에 나설 유인은 제한적이다. SK그룹 역시 이제는 상장이라는 해법에 미련을 두지 않고 완전 지배를 통해 배당과 현금흐름을 높이려는 실용적 선택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지분구조를 단순화하고 지배력을 정비하는 SK그룹의 교환사채 발행은 단기적 주가 부양이나 외부 주주 확보가 아닌 비상장 상태에서의 전략 유연성 확보와 그룹 내부 자산 통제력 강화에 목적이 실려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는 교환사채라는 수단을 통해 상장사 방어와 비상장사 통합이라는 상반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논의가 정치화되는 상황에서 자사주의 전략적 활용이 그룹 통제력 유지의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내달 4일 회기가 종료되는 6월 임시국회 내에,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가 기업 이익뿐 아니라 주주 개별 이익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생겨 지배구조와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크게 제한된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송언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자본시장법상 공정가액 조정 조항을 손보자는 대안도 검토해 왔으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해당 논의는 실익이 없어진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보좌진은 "이사회 장악이 목적인 입법이라 자본시장법의 보완 기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어 민주당이 협상 카드로 꺼내 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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