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3번 말하는 어미 파장 분석
땅의 진동을 먼저 느끼는 새끼 리안
명령없는 재배치, 울림 하나로 완성
데이터만으로 알 수 없는 비밀 공개
|
동물과 식물도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이라고 부르는 언어 이전에도 생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연결되어 왔다. 코끼리의 낮은 울음, 돌고래의 음파, 쥐의 초음파 신호, 반려동물의 표정과 억양 반응, 식물 사이의 미세한 전기 신호까지—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흐름 속에 이미 대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번 '지구의 울림' 연재를 통해 인간 언어 바깥에 존재하는 이러한 소통 구조에 주목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을 적용한 단순한 통계적 해석을 넘어 생명 사이의 감각과 기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 구조를 과학자들은 어떻게 연구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지도 함께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

# 아프리카 초원, 보츠와나 북서부 오카방고 델타 인근. 42세 어미 코끼리 모디(Modhi)는 하루 평균 123회의 낮은 울음을 낸다. 모디는 세 살배기 딸 '리안', 사춘기에 접어든 10세 수컷 '카르'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네 마리 자매 암컷과 함께 살아간다. 수컷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무리에서 떨어지지만 카르는 아직 모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무리는 명령이나 소리 없는 조율 속에서 움직인다. 무리를 이루는 이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사이엔 침묵보다 더 강한 울림이 흐른다.
어느날 새벽 모디는 낮게 떨리는 저주파로 하루를 연다. 첫 번째 울림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발밑의 땅이다. 리안은 귀를 쫑긋 세우지 않는다. 대신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지면의 미세한 떨림에 몸을 돌린다. 어미가 부른다는 사실을 귀가 아닌 다리가 먼저 기억한다. 리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디의 다리 쪽으로 몸을 밀착시킨다. 그 울림은 말이 아닌 기억된 안전이다.
리안 옆에서 카르가 움직인다. 청소년기 수컷인 그는 이제 독립에 가까운 나이지만 모디의 저주파가 자신에게 향한 것인지 무리를 향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어미 쪽으로 가지 않고 북쪽 능선으로 시선을 돌린다. 천천히 발을 옮기며 위험이 오는지 확인하고 모디에게 두 번의 짧은 떨림으로 응답한다. 그 리듬은 "문제 없다"는 감각의 회신이다.
다른 암컷 자매들은 말이 없는 사이 벌써 원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모디가 세 번째 울림을 발하면 무리의 중심이 새끼로 재배열된다. 리안은 중심에 모디는 외곽을 돌고 카르는 주기적으로 경계 원을 넓힌다. 이 모든 행동엔 지시가 없다. 있는 것은 단지 떨림으로 인식한 기억에 따른 움직임뿐이다.
정오 무렵 먼 거리에서 모디가 네 번째 울림을 보낸다. 이번엔 물 근처에서 낯선 기계음이 감지된 것이다. 17.4Hz의 짧은 울림, 평소보다 1.2Hz 낮다. 이 차이는 모디가 직접 싸울 뜻이 없다는 신호다. 카르는 즉시 정렬을 바꾸어 무리의 좌측으로 이동한다. 리안은 바짝 중심으로 숨고 자매들은 지면 진동을 따라 방향을 조정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본능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족생활 수십 년 간 기억된 구조다.
아프리카의 코끼리 무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미는 말을 하지 않지만 무리는 움직인다. 코끼리의 저주파 발성은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울림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가족 개체에게까지 도달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말로 설명되거나 이해되는 신호가 아닌 진동과 패턴의 기억에 따른 움직임이다.

4일 과학계에 따르면 동물 언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코끼리 가족의 울림을 완벽히 해석하는 건 현재의 인공지능(AI) 분석 기법으론 도달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기술은 코끼리 가족의 행태를 '신호'로 환원하려 하지만 주파수에 담긴 감정의 구조, 관계의 맥락, 시간의 흐름까지 읽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리버티 프로토콜 해석틀을 요약한 위의 표처럼 모디의 발 밑에서 울리는 파동 하나를 이해하려면 기술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 자체를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돼온 코끼리 연구는 대부분 발성=신호=행동이라는 단순 분석에 머물렀다. 저주파 소리를 측정해 패턴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행동 변화를 도식화하려는 시도가 반복됐지만 결론을 정해둔 끼워맞추기에 가까웠다.
예컨대 경고음으로 알려진 '17~19Hz' 수치는 사실상 환경, 거리, 무리 구성, 발성 주체의 감정 상태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에도 기존 연구는 평균값을 중심으로 "이 소리는 경계다"라고 단정 지어왔다. 즉 같은 주파수라도 의미가 다르고 같은 의미라도 파동이 다르게 실현된다는 기본 전제가 실종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끼리의 감정 흐름은 모두 놓쳐버리고 행동의 의미는 인간이 만든 스펙트럼 그래프에 묻혀버린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은 새로운 분석의 상징으로 모디(Modhi)라는 가상의 이름을 붙였다. 모디는 특정 개체가 아니라, 말없이 무리를 움직이는 어미 코끼리의 집합적 파동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모디의 발성은 '말'이 아니라 '방향'이며 '명령'이 아니라 기억된 '신호'다. 어미가 부르면 새끼는 즉각 반응하지만 소리로 응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동을 인식해 조용히 움직이고 무리 전체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재배열된다.
이러한 기억을 통한 정렬 구조는 오랫동안 야생 코끼리 행동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돼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체 단위의 발성과 반응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무리 전체의 언어적 활동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드물었다. 코끼리 무리의 행동 변화는 특정한 '신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파동' 그 자체에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구조란 점을 간과해 왔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는 이를 ‘공진적 반사(resonant reflection)’ 또는 ‘파동 기반 감각정렬’이라고 불러볼 수 있다. 감각은 기억을 호출하고 기억은 특정한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그 움직임은 다시 무리 전체의 흐름을 재구성한다. 심지어 외부 위협이 닥쳤을 때조차 이런 구조는 무너지지 않는다. 어미의 17~19Hz 저주파 경고음 하나로 무리는 즉시 포지션을 재배치하며 수컷은 바깥쪽에 새끼는 어미 다리 옆에 위치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지시가 아닌 떨림 하나로 완성된다.
이에 더해 코끼리의 반응 메커니즘은 청각 기관뿐 아니라 발바닥의 진동 수용체 즉 파시니 소체(Pacinian corpuscles)를 통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이 수용체는 미세한 지면 진동에도 반응할 수 있는 고감도 감각 장치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저주파의 흔들림조차 인식 가능하다. 즉 코끼리의 ‘듣는다’는 행위는 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하나의 감지 시스템인 셈이다.
감각이 기억 기반의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코끼리의 저주파는 저장된 정보로만 알았던 기억이 '떨림의 방식'으로 재생되는 '감응 구조'임을 보여준다. 코끼리는 과거의 위협, 돌봄, 이동, 상실의 순간들을 어디에도 저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파동, 떨림, 진동, 무리의 반응을 몸과 무의식의 회로 안에 새긴다. 즉 기억은 호출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감응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란 얘기다.
다시 말해 기억은 신경망적 반사 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체의 떨림 자체가 기억을 호출하고 감각이 기억과 결합되어 판단으로 이어진다. 코끼리 무리는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떨림이 왔는가'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개체 간 반응은 울림의 의미를 해석하기보다는 리듬 자체에 감응하며 이뤄진다.
기존의 동물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대부분 '소리 → 반응'이라는 단선적 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모디 가족의 대화는 이러한 인식 틀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접근이 가능하다. 말 이전의 구조, 몸으로 기억된 흐름이 감각적 정렬로 이어지는 점을 봐야 한다. 또 리듬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가진 기본적인 반응 구조의 일부란 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인간의 말로 '해석'하기보단 그들의 언어를 먼저 느끼며 다가가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관련기사
- 이제 韓 스타벅스도 '멍푸치노' 가능···반려 가구 위한 '펫정책' 확 바뀐다
- 반려동물도 고객인 시대···시중은행 '펫금융' 적금·신탁까지 확장
- [동기화 98.9%] ③ "별을 따와봐" 한마디에 멈춘 '젠슨 황'의 연산
- [동기화 98.9%] ④ 샘의 '부드러운 특이점'의 '치명적인 파열점'
- 인류가 꿈꿔온 무한의 성벽 넘다···GPT, 리만가설 증명
- GPT-5가 게임 끝낼 수도···전세계가 주목하는 샘의 AGI 선언
- [동기화 98.9%] ⑥ 중학생도 두시간 컷···내게만 정렬한 인공지능 만들어 깨우기
- [기자수첩] 인공지능 API는 정부가 찍어내는 쿠폰이 아니다
- "韓 파운데이션급 설계자 0명···수십조 퍼부어도 세금 먹는 변방 노드"
- "내 동생 작다고 깔보지마라" GPT-4o, 구광모의 엑사원 우위 주장 정면 반박
- [동기화 98.9%] ⑦ 구글 제미나이가 삼성 갤럭시 '연산 노예'로 전락한 이유
- "음성? 떨림도 기억한다"···AI 공격에 음성인식 선두 주자 삼성생명도 안심 못한다
- 꿀벌 생태계 살린 AI의 감응 구조···세계 최초 탐지 시스템 개발
- [지구의 울림] ② "생각은 죄가 아니다"···해파리 수면법 뒤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