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탁구는 손과 발이 빨라야 하는 운동임을 실감
고수가 되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함을 배웠다

(지난 회에서 이어짐)

그 일본 여자분은 우리나라에 우리나라 말을 배우러 오신 분이셨다. 신촌에 있는 S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정확한 나이를 말하지 않았지만 회갑잔치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러 혈혈단신 타국으로 온 그 분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회갑을 코 앞에 두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홀로 타국으로 갈 수 있을까? 선뜻 yes라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용기 있는 분을 탁구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탁구가 그분의 취미생활이자 삶의 활력소였기에 한국에 올 때 탁구 라켓, 탁구화, 탁구공까지 챙겨왔다고 했다. 일본 탁구장에서는 탁구공이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나 탁구를 좋아하면 외국에 나갈 때 탁구라켓을 가지고 올까? 그녀의 탁구 사랑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고수와 10분동안 탁구를 하고 난 뒤, 목까지 차오른 숨을 내뿜는 나에게 10분만 칠 수 있냐고 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1초도 지체없이 좋다고 했다.

조금 전까지 헉헉거리며 지친 모습을 보이던 나는 사라졌다. 온몸의 세포들이 기뻐 날뛰었다. 왜냐하면 내가 늘 고수에게 “10분만 시간 내주시겠어요?”라며 부탁하는 입장 아닌가? 이러던 나에게 고수가 먼저 손을 내밀다니! “야호”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그분과 마주 섰다. 첫 번째 공이 내 앞에 날아오는 순간 난 그분이 엄청난 고수임을 알았다. 공의 세기와 빠르기가 로켓 같았다. 얼마나 빠른지 내가 공을 받아 치고 다음 자세를 취하기 전에 다음 공이 날아왔다. 방향도 오른쪽 왼쪽 이쪽저쪽 사정없이 치고 들어왔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고수는 공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보냈다가 그다음은 왼쪽 코너로 보내 공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공의 빠르기가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 음악에서 말하는 빠르기 속도로 Allegrissimo라고나 할까!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방금 친 고수가 탁구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 났다. 나는 넘어오는 공을 받아 치기 위해 손과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은 탁구대 모서리를 찍고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떨어진 공을 줍기 위해 자주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10분이 길게 느껴졌다. 이전까지 고수와 함께했던 10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고 한다면 미찌꼬(일본 여인의 가명)와 함께한 10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머리가 휑하니 비는 것 같았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마음은 질서 없이 헝클어져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미찌꼬는 진정한 고수였다. 여전히 나는 병아리였고 발 빠른 어미 닭, 손 빠른 어미 닭, 발도 빠르고 손도 빠른 어미 닭 등 다양한 어미 닭들이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그날은 더 이상 탁구를 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미찌꼬와의 연습으로 탁구를 끝냈다.

탁구는 즐거운 운동이나 이날만큼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픽사베이
탁구는 즐거운 운동이나 이날만큼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픽사베이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숙제가 너무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어교육원에서 내준 우리말 문장 만들기 숙제였다. 다양한 접속사로 연결된 문장 만들기였는데 난이도가 최상이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 내가 한국어를 구사하며 사는 한국인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내가 교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일사천리로 알려주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애를 썼다.

우리말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미찌꼬는 여러 가지로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이런 인연으로 미찌꼬가 자주 나의 탁구 연습 파트너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미찌꼬와 같이하는 탁구는 항상 헐떡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에 바빴고 끝나면 냉수를 마셔야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나는 그녀에게 두 가지를 배웠다. 어떤 분야에서 고수가 되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많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아야 삶이 활력 있다는 것을. 그 말의 의미를 현실의 삶에서 경험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