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러우 전쟁 이후 세계판도 변화 불가피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로 동맹관계 약화
한반도 위기는 북방에서···대책 수립 긴급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러시아에 위대한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톨스토이다. 톨스토이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 소설을 통해 ‘무엇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빅 스케일의 대하소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가볍지 않다. 인생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단순하게 승자와 패자, 러시아에 대한 얘기는 없다. 대신, 전시 상황에서 살아가는 러시아인들 각양각색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행과 불행이 왜 발생하며, 또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고 끝이 어떤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의 글에서는 ‘잘난 남자 잘난 여자’의 끝은 안타깝게도 예외 없이 불행으로 끝난다. 한때 잘났다고 도에 넘치게 으스대지만, 그 잘남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생생하게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신은 멀리서 인간들을 관찰하며 바로 반응하지는 않되, 그 잘잘못을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카운트해 둔다고 경고한다. 그러고는 인생 전체를 두고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는 이 사실을 등장인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북한까지 참전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 지형까지 바꿀 태세다. 톨스토이가 환생하여 이번 전쟁을 토대로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뉴스에서는 피상적으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만 따진다. 그 참혹한 전쟁 속에 가려진 당사자들의 불행을 지나가는 스냅 사진 한 컷에 불과한 듯 취급한다.
그러나 전장에 있는 병사들이 두고 온 가족은 어떨까. 만약 젊은 가장이 전사한다면, 그의 아내와 어린 자녀는 평생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또 그의 부모들, 그들을 품고 있는 나라는 몇 세대에 걸쳐서 그 깊은 상처를 추스르며 안고 가야 한다. 이와 같이 광기로 비롯된 전쟁의 후유증은 길고도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얕잡아보고 쉽게 끝날 전쟁으로 봤지만 오산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반격과 그 뒤를 받쳐 주는 서방의 끊임없는 전쟁 물자 지원으로 수렁에 빠져 있다.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휴전이든 종전이든 전쟁 종식을 위한 모색이 있을 것이다. 전쟁 후에는 기존의 패권 지형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런 급격한 세계 질서 변화가 닥치는데, 오로지 미국만을 붙잡고 있는 한국은 위험해진다. 생각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싱크탱크나 국제문제에 대한 안목도, 고급 인력도 부족하다.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려 온 나라로서는 한심한 일이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이, 국제정세의 흐름에 무방비로 노출돼 흔들거리면서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가의 안보 대응 능력에 중대한 흠결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러시아의 미래를 예견해 보자.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푸틴은 국력 소모로 진이 다 빠졌다. 핵만 가진 ‘종이 호랑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혹자는 러시아를 ‘어퍼 볼타’라 부른다. 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별칭으로 허약한 최 약소국이라는 비아냥이다.
이번 전쟁으로 안보 위기를 뼈저리게 경험했던 유럽 국가들은 헝가리를 제외하고는 앞으로 약 30년간 러시아를 적대시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면서 러시아는 상당 기간 헉헉댈 것이다.
전쟁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에 헐값으로 석유와 가스를 팔아넘겼다. 전쟁 덕분에 두 나라는 은근히 재미를 봤다. 코너에 몰린 러시아의 앞으로의 행보는 뻔하다. 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전통의 맹방, 중국 북한 이란에 구걸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다. 실속 없는 전쟁의 대가로 쓰디쓴 맛을 봐야 한다.
미국은 어떨까. 중국 견제를 지상과제로 삼는 탓에 시간을 두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슬슬 풀 수도 있다. 힘이 빠진 러시아에 접근,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역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해 왔으나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이제 발을 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동맹들의 안보에 돈을 이유로 알아서 하라는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어떨까. 인민들 밥도 못 먹이면서 어린 군인들을 용병으로 팔아서 외화벌이를 하는 그들과는 당분간 대화가 어려울 것이다. ‘두 국가로 따로 살자’면서 스스로 남쪽과는 단절을 선언했다. 그런 형국에 상호 계속 긴장 수위를 높이면 그 끝은 전쟁이다.
요약하면, 이제 북방 관리가 최우선이다. 북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어느 날 ‘핵 한 방’ 날리면, 남북이 공멸이다. ‘원점 타격’이나 ‘현무 5’로 어쩐다는 말은 모두 공허한 얘기다. 그걸로 핵에 대한 대응은 불가능하다. 그런 수사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한다면 속임수이다.
전쟁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이 저렇게 연일 미사일 쇼를 벌이고 있다.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러시아까지 혈맹으로 북을 도우면 미사일, 핵, 재래식 전력 모두에서 북한은 강군이 될 것이다. 그런 북에 대응하려면 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참전은 하되 2~3년이 지나면 발을 뺄 것이다. 미국 내 여론이 반대하니까. 그럴 때 홀로서기 할 자신이 있는가.
누가 북을 말릴 수 있을까. 뒷배 역할을 하는 중국과 러시아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지금처럼 마냥 배척하고 멀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북한의 위험한 남침을 제지할 국가들이다. 그들과 잘 지내야 하고 불필요하게 자극할 이유가 없다. 친미 일변도를 버리고 좀 더 전략적으로 국제관계를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볼 시점이다.
미국에만 안보를 의지할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도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실없이 적대시할 국가들이 절대로 아니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국제관계의 방향을 이런 관점에서 재정립해 볼 때이다. 과거의 우방이 영원한 우방으로 남지 않는다.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를 보라.
앞으로의 최우선 과제는 북방 관리이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위기를 잘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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