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유럽인데 고추 마늘을 좋아하고
귀족적 문화가 일상에 배어 있어
한국 기업 유럽 거점 국가이기도
유럽에서 한국처럼 ‘고추와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또 유럽인데 우리처럼 우랄 어족을 쓰는 나라가 있을까. 있다, 바로 헝가리(Hungary)이다. 게다가 생긴 것은 백인이지만 국명 때문에 흉노의 후예인 훈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헝가리인들은 돈강과 볼가강 유역에 살던 유목민 마자르족이다. 이들이 서쪽으로 이동, 헝가리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헝가리는 동유럽 중심부에 위치한다. 인구 약 1000만명에, 다뉴브강이 국토 중심을 남북으로 흐르고, 산이 적고 평원이 많아 ‘헝가리 대평원’으로 유럽 지도에 표시된다. 동으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서로는 오스트리아, 북은 슬로바키아, 남으로는 발칸반도 북쪽의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국경을 맞댄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부다(언덕)와 페스트(평지)의 합성어다. 파리, 프라하와 더불어 유럽 3대의 아름다운 수도로 꼽힌다.
12세기 몽골 침략을 당했고 16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오스만 제국 침략으로 나라가 3분 되어 그 일부가 점령당하기도 했다. 근세에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한 축을 구성한 강국이었다. 당시의 귀족 국가 전통이 음식이나 문화예술에 지금도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헝가리인들의 고추 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매년 고추를 16만t 생산하는데 인구가 5배인 한국과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품종개량을 하여 우리처럼 매운 고추보다는 안 맵거나 심지어는 단 고추까지 있는데 매운 정도에 따라 8등급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고추에 비타민C가 함유돼 있다는 것을 발견, 1937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것도 헝가리인이다. 인구가 우리의 5분의 1인데, 노벨상을 물리 화학 의학 경제 분야에서 15개나 받은 우수한 민족이다.
헝가리인들이 즐기는 ‘소울 푸드(Soul Food)’가 있다. 소고기, 양파, 당근, 토마토 등 채소와 고추, 마늘을 팍팍 넣어서 묽게 끓여낸 수프인 굴라쉬(Gulyas)이다. 양치기란 뜻으로, 시골 마을에서 소나 양을 치던 사람들이 여러 채소를 넣어서 푹 삶아 먹었던 데서 유래한다.
헝가리는 제조업 강국이다. 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독일 일본 한국처럼 일류 제조업 강국은 아니지만 지금 막 기지개를 켜며 유럽의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비결은 싼 인건비에 기반 시설이 튼튼한 데 있다.
독일 자동차 회사와 한국의 배터리 사업, 중국도 유럽 진출의 중요 거점 국가로 삼고 있다. 최근 외국인 투자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헝가리는 귀족적인 문화가 도처에 스며들어 있다. 음식도 풍성하고 맛이 독특한 게 많지만, 보통 음식점의 테이블 세팅이 호화롭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냅킨이다. 그냥 평범한 홑겹의 냅킨이 아니라, 마치 두터운 수건의 느낌이 나는 진홍색 빛깔로 입 한 번 닦고 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다. 지나가는 여행객들 싼 값의 메뉴일 텐데, 음식의 질도 식탁 세팅도 마치 귀족 대우를 받는 듯하다.
특히 헝가리는 프랑스 왕들도 즐겨 찾았다는 세계적인 고급 디저트 와인, 토카이(Tokaji)로 유명하다. 토카이 와인은 포도에 곰팡이가 핀 포도즙으로 만든 와인으로 이 포도즙이 당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고 싶어서 전용 극장에 간다면 주의해야 한다. 무심코 여행할 때의 편한 복장으로 입장한다면 곧 낯이 뜨거워질 것이다. 남녀 대부분이 검은 정장에다가 때로는 턱시도에 마치 예복을 차려입은 듯 매끈한 차림이다. 캐주얼 복장은 바로 눈에 띄어서 실례를 범한 듯 주춤해진다.
동유럽 국가들은 한때 러시아의 위성국으로 편입되어서 경제적으로는 아직 서유럽에 못 미친다. 그러나, 문화적인 유산은 서유럽보다 오히려 풍부하고 문화 예술을 일상에서 제대로 즐기는 민족들이다. 또 공연 시에는 격식을 차린다. 이런 점을 모르고 여행하면 ‘돈만 조금 있는 촌뜨기’ 취급을 당할 수 있다.
헝가리에는 곳곳에 온천이 많다. 부다페스트를 비롯 어디서나 땅만 파면 뜨거운 온천물이 솟아난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발라톤(Balaton) 호수 인근에 세계 최고의 온천 호수인 헤비츠(Heviz)가 있다. 이 때문에 로마의 황제들도 헝가리에 와서 자주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맛이 닮아 있고 한국을 좋아하는 다뉴브 강변의 헝가리. 입에 딱 맞는 굴라쉬도 먹어보고 온천도 하면서 아름답고 품격 있는 헝가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 한번 가서 이곳저곳 천천히 음미하고 감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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