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낀 나라로 전쟁터가 된 역사가 많은 한반도
스위스처럼 주변 강국들과 잘 지내야 안전
중국과 러시아에 불필요한 자극은 삼가야

몇백 년간 전쟁을 모르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위스이다. 이런 스위스에 강국들 틈에서 자주 전쟁터가 되었던 한국은 배울 게 많다. 스위스는 유럽 중심부에 위치하여 한국처럼 낀 나라이다. 유럽의 강국들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위협을 받아왔지만 국토를 굳건하게 지켜온 다부진 강소국이다.

그들은 어떻게 중립국이 되었고 어떻게 국토를 지켜왔을까. 중립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은 것은 1515년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대패한 직후였다.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와 전쟁하기보다는 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중립을 국가전략의 핵심에 두고 전 국민이 합심하여 주변 강국들의 침략 야욕을 지혜롭게 이겨냈다.

낀 나라로 전쟁터가 된 적이 많은 한국은 유럽의 낀 나라 스위스에서 배워야 한다. /픽사베이
낀 나라로 전쟁터가 된 적이 많은 한국은 유럽의 낀 나라 스위스에서 배워야 한다. /픽사베이

그 후 300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지난 1815년 드디어 비인 회의에서 중립을 인정받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의 주변 강국들-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프로이센(현재의 독일), 러시아는 스위스가 강국들 사이에 완충 지역으로서 안정적인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중립화에 동의한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16년간(1799~1815) 영토를 침략당한 것을 제외하면 스위스 영토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거의 500년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어떻게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가장 먼저 자강 능력을 키웠다. 산악지형인 데다가 아무도 넘볼 수 없도록 군사적인 자강 능력을 키웠고, 용맹한 기질도 한몫했다. 스위스 용병들은 교황청과 프랑스 왕들의 근위병으로, 프랑스혁명 때는 600여명이 몰살을 당하면서도 궁정을 지켜 그 용맹함을 만방에 증명했다.

그다음으로는 어느 한편의 동맹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프랑스, 독일 같은 이웃 나라들과 지속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상호 적대적인 강국들 틈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지킨 것이다. 그 대신 전쟁 부상자 치료, 피난민 수용, 실종자 처리, 포로 교환 등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헌신적인 역할을 했다. 국제사회에 긴요한 정치·외교·경제적인 인프라 제공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이다. 한국은 스위스 같은 중립국이 되는 건 힘들다. 그래서 비록 분단된 상태이지만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전쟁의 위험을 현저하게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방안은 있다.

한반도는 지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팔을 잡아당기고 있고 남한은 미국이 다른 한쪽 팔을 잡고 있다. 즉, 분단된 상태로 강대국 간 힘의 균형과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스위스는 어떻게 전쟁을 피했을까? 그들은 가장 먼저 자강 능력을 키웠고 그다음으로는 어느 한편의 동맹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프랑스, 독일 같은 이웃 나라들과 지속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픽사베이
스위스는 어떻게 전쟁을 피했을까? 그들은 가장 먼저 자강 능력을 키웠고 그다음으로는 어느 한편의 동맹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프랑스, 독일 같은 이웃 나라들과 지속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픽사베이

문제는 그런데도 긴장이 고조되고 여차하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나마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외 전략을 오래 고민하더라도 찾아내야 한다. 이번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한반도에 매우 위험한 불씨를 지폈다.

앞으로 러시아가 전쟁 동참 대가로 북한에 전투기, 미사일 그리고 핵무기 등등에 대한 고급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래식 무기마저도 북한이 남한 못지않은 능력을 갖추게 되면, 핵까지 있는 판에 군사적 우위가 북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북한의 러시아 밀착은 이 정부가 지나치게 북을 무시하고 거칠게 밀어붙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 후과를 고려치 않고 무조건 강경 일변도로 나갔던 대외정책의 무분별함이 안타깝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싸늘해지면 적대적인 국가들이 그 험한 언사와 태도에 터 잡아 거칠게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불필요하게 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걸핏하면 거친 언사로 반대편에 서 있는 군사적 초강대국들을 자극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해왔다. 스위스는 이웃 국가들과 어느 한쪽 편에 치우치는 것을 철저하게 삼갔다. 그 대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수백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대중국 관계를 검토해 보자. 미·중 간에 타이완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와중, 한국이 먼저 나서서 이 문제로 중국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만약 타이완에서 전쟁이 일어나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서 군사 지원을 하게 된다면 북한은 중국 편에 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도 전쟁의 불길이 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이 현명하다. 중국에 가서 혼밥 했다고 알려진 누구처럼 저자세를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분단된 상태에서나마 주변 강국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전쟁 위험을 감소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우 전쟁 이전 러시아에서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경제제재로 한국의 공백을 중국업체들이 메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국에 경제 협력 측면에서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다. 관계가 좋을 때는 나진 선봉지구 공동 개발과 가스전 연결까지도 논의가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북한의 참전으로 양국 관계가 꼬여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의 지상과제인 중국 견제를 위해 러우 전쟁을 조기 종식하고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서 한국도 지나치게 러시아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 대해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긴 안목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경제협력 면에서 북한보다는 남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파트너이다. 북극에 눈이 녹고 있어 후일 북극 항로가 개설된다면 러시아는 매우 중요한 항로 관리자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풍부한 자원과 군사적 파워를 가진 러시아는 잘 활용해야 할 상대이지 무조건 적대시할 나라는 아니다.  

요약하면,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스위스처럼 중립국이 되면 좋으나 그건 힘들다. 그래서 비록 분단된 상태이지만, 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변 강국들과 관계 설정을 잘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이들과 불필요하게 부딪칠 필요는 없고 가급적 잘 지내야 한다. 그들과 맞설 독자적인 힘도 없으면서 함부로 자극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우리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도록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 미래에 전쟁 위험을 줄이는 길이다. 스위스의 지혜를 배우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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