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택소노미 ‘2050년 고준위 방폐장 확보’ 명시···불가하면 유럽 수출 장애

한국이 체코의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하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가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안(고준위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서 공회전하는 탓에 향후 수출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정부와 원전업계 안팎에서는 여야 정쟁 속에서 매번 폐기됐던 고준위 특별법을 22대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원전 운영과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문제여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고준위 방폐장 없이 원전을 계속 운영하거나 새로 짓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원전 최강국을 지향하는 나라에서 아직 정식 방폐장 하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친환경 사업 실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도입하면서 EU 택소노미의 투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건립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채권 발행 금리가 높아져 유럽 원전 수출에서도 한국이 불리한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번 체코 수주의 경우에는 금융지원을 체코에서 전담했기 때문에 EU 택소노미에 따른 영향은 없었다. 다만 향후 다른 EU 국가에 수출할 때 개별 상황에 따라 걸림돌로 작용할 수는 있다는 게 원전업계의 시각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체코를 교두보로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시장으로의 K-원전 본격 진출을 꿈꾸는 상황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K-원전’의 위상을 원전의 본고장인 유럽에 제대로 알린 이번 기회에 그간 지지부진했던 고준위 방폐장 건설 등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의 선결 조건이 되는 고준위 특별법은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잠들어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과 중간 저장 시설 등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준위 방폐물은 현재 각 원전 안에 있는 수조인 습식저장조에 보관돼 있지만 2030년부터는 이 같은 저장 방식도 포화에 이르게 된다. 당장 2030년 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 등 순으로 수조가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원전 출력을 줄이거나 운영을 아예 중단할 수밖에 없다. 고준위 방폐장은 당장 건설을 시작한다 해도 완공까지 37년이 소요되는 만큼 국내 전력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나온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3건의 고준위 특별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저장시설 용량을 놓고 야당이 반대하면서 공회전했다. 회기 막바지에 가서야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끝내 임기 만료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여당에서 4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채상병 특검법 등 정쟁에 휘말려 제대로 된 논의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원전업계에 따르면 현재 원전 상위 10개국 중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으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에너지 정책이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가적으로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산업위 논의에서도 여야가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EU 택소노미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확보에 관한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하면 유럽 원전 수출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 순풍 탄 K원전···체코 찍고 유럽·중동·아프리카 수주 낭보 '기대'
- 탈원전 아픔 딛고···K원전 생태계 부활 ‘축포’ 터뜨렸다
- 韓, 체코 30조 신규 원전 수주···15년 만에 우수성 입증
- 15년만에 수출신화 쓸까···체코 원전 수주 결과 이르면 오늘 발표
- 피 튀기는 원전 vs 재생에너지 썰전···“이제는 한배 타야”
- 제2의 광우병 사태?···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입장차 여전’
- 美 대선 누가 되든 원자력 ‘청신호’···태양광·배터리 ‘안갯속’
- 신에너지 시장 블루오션에···韓조선사 5대양 누빈다
- "원자력 안전은 우리가 최강"···현대건설 ISO 19443 인증 취득
- 삼성·현대·LG·SK ‘4대그룹’ 집결···尹 동행 체코 기회의 문 열리나
- 24조 체코 원전 수주 막판 걸림돌···美 기업과 분쟁 해결될까
- 황주호 한수원 사장 "체코 원전사업, 최종 계약까지 최선"
- K원전 최대 난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해결할 길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