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삶의 질 증진시키는 에너지서
양극단 이념화된 정치 도구로 변질
“두 무탄소 에너지는 상호 보완 관계”

재생에너지와 원전, 둘 다 무탄소 에너지임에도 에너지 믹스를 수립할 때마다 스파크가 튄다.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순수한 에너지로서의 차원이 아닌 이념화된 정치 도구화가 돼서 그렇다. 상호 시너지를 내는 ‘보완’이 아닌 상호 효용가치를 부정하는 ‘제거’ 대상이 돼버렸다.
우리나라의 미래 에너지 수급 계획을 담고 있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둘러싸고도 재생에너지 옹호론자들과 원전 옹호론자들 간의 싸움이 거세지고 있다. 대립된 의견은 여전히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적절한 조화를 꾀함으로써 탄소중립에 적극 대응하는 에너지 믹스를 실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글로벌 추세”
환경단체를 비롯한 재생에너지 옹호론자들은 RE100을 요구하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기조를 따라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전 비중을 줄여가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1.6%, 약 72기가와트(GW)로 잡고 있다. 2022년 실적(23GW) 대비 무려 3배 이상 확대된 것이지만,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재생에너지 친성향 연구기관에 따르면 2030년 한국은 최소 36%(110GW)에서 최대 53%(199GW)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보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옹호론자들에 따르면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기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뿐만 아니라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NDC 상향 추세에도 한참 못 미친다.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인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10차 전기본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1.5도 상승 저지 목표 달성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작년 초 쟁송화 된 바 있다”며 “11차 전기본 역시 2030년 NDC로 제시됐던 30.2% 대비 턱없이 모자란 21.6%라는 발전 비중에 변함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또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인 72GW는 COP28에서 합의한 재생에너지 3배 서약을 달성할 수 있는 수치라고 했으나 이는 매우 단편적인 해석”이라며 “COP28 서약은 단순 2022년 대비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산술적 증가 의미를 넘어 2030년 1만1000GW라는 서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 태양광 및 풍력 발전비중이 46%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우려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에 굉장히 밀집된 형태로 저장돼 있어 사고나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논리다. 밀집돼 있으면 핵연료에서 나오는 중성자가 옆에 있는 핵연료를 때리고 연쇄 핵반응을 일으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상용화도 되지 않은 SMR(소형모듈원자로)을 반영한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SMR 기술에 대한 R&D 투자는 지속돼야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아직 상업 운전 중인 발전소가 없는 상황이다. 국가의 전력 수급 계획에 가정을 넣어서 반영하는 것은 추후 기술개발 상황에 따라 실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논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김해갑) 의원은 “원전 위주인 전기본의 문제점 분석·재검토 등을 포함해 기후 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재생에너지 죽이기 정책으로 국내 태양광, 풍력 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목표 비현실적···원전만이 살길”
원전 옹호론자들은 오히려 11차 전기본에 재생에너지 보급량을 과하게 늘려 잡았다는 논리를 편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따르면 2030년 태양광, 풍력 설비 보급목표가 72GW에 이르러 2022년 실적인 23GW 대비 3배 이상 확대되는데 이는 보급 목표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옹호론자들과의 온도 차가 극명하다.
이들은 재생에너지는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세부 지침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발전량, 발전 비율 등 숫자만 제시했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부지 면적, 부지 확보 방안, 부족한 부지에 대한 대응 등 국토 이용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패널 1메가와트(MW)당 3000~4000평의 부지가 필요하다. 단순 계산상으로 2030년까지 최소 1억6140만 평이라는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산지가 많은 한국 국토의 특성상 개활지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풍력발전 역시 규제 제약에 매여 설비 확대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하려면 산업부·해양수산부·국방부 등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총 29개에 이르는 인허가를 받고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는다.
인허가 업무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보니 사업을 시작해 시행하는 기간까지 평균 8년, 많은 경우 10년이 소요되는 실정이다. 사업자가 선뜻 해상풍력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안방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갖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시각이 크다.
또한 태양광과 풍력 설비 증설이 순조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간대에 발생할 과다 발전량을 저장할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대규모 설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난제가 된다. 원전 옹호론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50-70% 이상 기저전원으로 가져가고 재생에너지를 보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상호 공존해야”
그런가 하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병행 사용해야 기후변화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도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전 세계적 정책 트렌드이며 우리나라도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병행을 통한 NDC 달성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동욱 제11차 전기본 총괄위원장은 “재생에너지가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원전의 활용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석탄도, 원전도 안 쓰고 오직 재생에너지만 쓴다면 실질적으로 국내 경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AI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시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전기본을 수립하는 입장에서는 공급안정성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번 11차 전기본에는 이를 기반으로 2038년 기준 원전 비중 35.6%, 재생에너지 비중 30%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정동욱 총괄위원장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생에너지-원전 간 대결 구도를 겨냥해 “우리나라는 일부 단체가 전원믹스에 관해 주장할 경우 정치권에 흘러들어와 더욱 논란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는 일부 단체들이 에너지믹스에 관해 주장하더라도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란 확산을 자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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