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피해는 극심···아파도 진료 못 받아
"의료 체계 정상 운영은 말 안 되는 소리"

의료 체계가 정상에 가깝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환자들은 몇 달째 치료에 대한 불편함과 정서적 불안에 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 증원 관련 의‧정 갈등이 지속되면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집단 휴진하고 있다.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들은 외래 진료 일정이 밀리거나 입원을 못 하는 등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의료체계가 정상에 가깝게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비상 진료 체계가 3개월여 지속되면서 현재 전체 종합병원의 일반 입원 환자는 평시의 96% 수준이고 중환자실 입원 환자도 평시의 95%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상급병원의 진료 공백을 일반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에서 보완해 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희귀병 환자, 암 환자 및 중증질환자들은 외래 진료 연기, 입원 불가 등 각종 피해를 보고 있다. 신규 환자는 진료를 거부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은 집단 휴진에 대한 정신적 불안감도 호소하고 있다.
11년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김성재 씨(가명‧남‧31)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병원을 10년 넘게 다니면서 코로나 시기 포함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다. 교수들이 언제 사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CRPS는 24시간 통증을 달고 살고 하루 몇 차례 돌발 통이 발생한다. 척수와 신경 라인을 연결하는 부분에 기계(펌프)를 삽입해 일정 시간마다 통증을 억제하는 약을 공급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이 펌프 리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버스만 타도 통증이 유발돼 고통스럽다. 과거에는 신경외과‧마취통증학과 등 치료에 필요한 여러 진료과를 하루에 몰아 병원을 방문했지만 지금은 전공의 부재로 교수들만 진료를 보다 보니 교수 스케줄에 환자가 맞출 수밖에 없다"며 "이틀 전엔 외래 진료 갔다가 오늘은 펌프 리필을 하러 가는 등 날짜를 쪼개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유발되는 희귀질환자로서 남양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 지옥이다.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변동되는 게 일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통증을 막기 위해 몸 안에 삽입돼 약물을 공급하는 기계 교체 수술도 늦춰지고 있다. 김씨는 10년이 지나 미약해진 배터리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이어 "목이나 허리 신경에 마취약을 넣는 시술 또한 3개월 넘도록 받지 못하고 있다. 본래 전공의가 진행하고 교수가 확인하는 절차였지만 현 사태로 인해 못 받고 있다. 먹는 약으로만 통증을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2차 병원이나 지역병원을 대안으로 언급하지만 희귀병 환자는 받아주지 않는다. 받아줘도 해당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토로했다.
정서적 피해도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만약 교수들마저 휴진한다면 우리 환우들은 아무 방법도 대책도 없다. 거기서 오는 정서적 피해, 불안감이 극심하다. 교수들마저 사직서를 낸다면 '죽는 게 답인가' 싶을 정도로 힘들다”며 “일반 환자들한텐 정부가 언급하는 '정상 운영'이 맞을지 몰라도 희귀병 환자나 암 환자, 중증질환자들한텐 타격이 크다.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 벼랑 끝에 있는 기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국내 한 4기 암 환자 유튜버는 자신의 채널에 약 부작용으로 온몸에 발진이 일어나고 발열이 심한 상황에도 입원을 못 하는 상황을 영상으로 게재했다. 영상 속 유튜버는 테그레톨정(신경통약) 부작용으로 발진, 발열과 함께 극심한 통증과 가려움을 호소했으나 병원에선 의료진 파업으로 입원을 거절했다.
영상을 본 구독자들은 '의료진 파업은 환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아픈 환자에게 병원 입원도 거부되다니 얼마나 힘드실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부디 호전되시면 좋겠다'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의료 공백은 굉장히 심각하다. 정부와 의료계 논쟁의 쟁점은 의대 정원 증원 여부보다 환자 치료 및 대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라며 "정부와 의료계는 마치 이 논쟁을 해결해야만 의료 공백 사태가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처음부터 환자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는 전제하에 시작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본지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에서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협의회는 지난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30~80대에 해당하는 전 지역 췌장암 환자 189명을 대상으로 의료대란 피해 상황을 집계했다.
그 결과 정상 진료를 받은 환자는 10명 중 3~4명 수준에 불과했다. 외래 지연 34명, 항암 1주 지연 11명, 항암 2주 지연 11명을 포함해 기존 입원 항암이 아닌 가방 항암(가방을 싸고 다니며 직접 관리)으로 변경된 경우도 22명이었다.
특히 최초 암 진단 후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했다는 7건의 사례를 포함해 신규환자 진료 거부는 총 22건이었다. 이는 다양한 암종 중 췌장암 환자만을 분석한 결과다.
의료대란 상황에서도 암 발생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신규환자가 갈 곳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협의회는 "환자들 사이에 공유하는 정보가 없다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기형적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상급종합병원은 이미 신환(신규 환자)을 받지 않은 지 오래고 그나마 2차 병원, 지역 병원에서 받지만 환자들 진료가 두 달 이상 밀리기 시작했다"며 "복지부나 의료계는 비상 체계로 원활히 잘 운영되고 있다, 중증‧난치성 질환자도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기존 환자들만 진료받는 상황이고 그마저도 돌아가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 병원에 가보면 환자가 없다. 새로운 환자를 아예 받지 않으니 통계적으론 '차질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환자 입장에선 답답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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