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 유일한 선택지지만
의료진 절대 부족···해결책 전무
환자·의사 지쳐가는 희귀질환과

의료 공백이 8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희귀 난치질환자들이 치료·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상급종합병원 외엔 치료·수술이 힘든 희귀질환 환자들과 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른 여파로 보인다.
지난 4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 공백이 발생한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의원에서 수술한 희귀질환 산정 특례 대상 환자는 182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2097명보다 13% 감소했다.
희귀난치성 질환 중 하나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은 외상이나 수술로 인해 손상을 입은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약물치료, 신경치료, 약물 펌프 수술법, 재활치료 등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들은 24시간 통증을 달고 살고 하루 몇 차례 돌발 통이 발생한다. 이들은 척수와 신경 라인을 연결하는 부분에 기계(펌프)를 삽입해 일정 시간마다 통증을 억제하는 약을 공급한다.
고통을 완화하는 척수 자극기 삽입 수술 등 CRPS 치료·수술에 대해 병의원, 종합병원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급종합병원만이 유일한 선택지지만 의료 공백으로 수술은 계속 밀리고 있다.
23년째 CRPS을 앓고 있는 최모 씨(남·45세)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응급실은 아예 가지 못하고 치료·수술은 받지 못하거나 연기되고 있다. 이 상태라면 내년엔 더 최악일 것”이라며 “희귀질환 환자들은 대학병원 아니면 치료를 못 받는다. 통증이 발생해도 응급실은 꿈도 못 꾼다. 1‧2차 병원에 가도 병원에서 질환을 알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약 처방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으나 그마저도 대학병원이 아니면 힘들다. 마약성 진통제다 보니 마약 중독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 다니던 병원이 아니면 웬만해선 처방을 안 해준다”라며 “일부 희귀질환자는 경증으로 취급되는데 대학병원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의사는 한정돼 있는데 (중증·경증을) 분류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CRPS 판정을 받은 지 11년 된 또 다른 환자 강병진 씨(남·31세)는 “9월 초 약물 펌프 삽입에 대한 재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실 자리가 없어 병원 지하 2층에 마련된 시술실에서 받았다”며 “마약성 진통제라 동네 병의원에선 받지 못하니 다니던 병원에서 한 번에 많이 처방받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안됐다. 통증을 이 악물고 참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동안 CRPS를 앓고 있는 조재희 씨(남·31세)도 “CRPS와 같은 만성 통증 환자들은 현재로썬 고통을 참아내는 방법뿐이다. 일주일에 2회씩 받아오던 척수·요추 신경에 마취약을 넣어 신경을 잠재우는 척추 신경 차단 시술도 지난 3월부터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상황”이라며 “과거엔 너무 아프거나 힘들면 응급실에라도 갈 수 있었지만 이젠 가도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분명 응급실 불은 다 켜져 있는데 진료를 봐 줄 의사가 없다. 죽는 방법밖엔 없나 싶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혈관에 약물을 주입할 수 있도록 PICC를 심어놨는데 최근 교환을 하던 과정에서 출혈이 심했다. 출혈을 멈추기 위해 갈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며 시청, 보건소, 복지부 등 관계 부처에 모두 연락을 돌렸지만 정확한 답변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응급실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답변하지만 응급실에 가면 희귀병 환자니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며 내보내기 일쑤다. 막상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면 당직 의사는 없는 상황”이라며 “희귀질환자는 치과마저 거부당하기도 한다. 치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병인데도 희귀난치병 이력이 있으면 진료를 못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정상 진료도, 환자 입원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최근 CRPS 환자 한 분을 입원시켜 수술을 진행했다. 통증을 완화하는 척수 자극기를 심는 수술이었다”며 “다만 환자가 입원하면 처방하거나 콜을 받는 등 누군가가 응대해야 한다. 예전엔 전공의들이 돌아가면서 했었다. 하지만 이제 인력이 없으니 직접 주말에 나와 응대했다. 휴일에도 나오다 보니 내 생활이 안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른 과에는 환자가 많은 편이다. 규모가 있다 보니 PA 간호사 등 지원 인력이 조금이라도 확보되지만 희귀질환을 다루는 과는 PA 간호사 지원을 받을 규모가 안된다. 결국 교수가 혼자서 담당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환자들을 봐주려고 욕심내서 입원시키기도 했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단기적으로는 버틴다 해도 1년 이상 지속되면 죽어난다. 결국 중증 환자들 위주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상급종합병원, 대학병원을 다녀야만 하는 환자들이 제일 피해 보고 있다. 해결 기미가 안 보이고 모든 게 비정상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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