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약 안 맞아도 대안 없어
신약 개발돼도 한국은 제자리
부작용 감내는 오직 환자 몫

기면증 환자들이 치료 약에 대한 접근성 부족으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기면증은 △수면 발작 △탈력 발작 △입수면기의 환각 △수면 마비(가위눌림) 등 네 가지의 특징적인 증상을 보이는 수면 장애의 일종이다. 다만 완치가 안 되는 질환으로 증상완화제를 복용해야 하지만 치료 약 공급 부족으로 기존 약에 내성이나 부작용이 생길 경우 대안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면증 환자는 총 6646명이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기면증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으나 대체로 30세 이전에 발생한다. 질환의 경과는 느리게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일정 수준에서 머물러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기면병환우협회에 따르면 기면병의 가장 흔한 증상은 수면발작(sleep attack)으로 참을 수 없는 수면이 엄습해 오는 증상이다. 갑작스럽게 근력의 손실이 오는 탈력발작(cataplexy)과 함께 일어난다. 증상은 약물 치료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 대표적인 약물은 모다피닐(Modafinil)로 전통적인 중추신경 흥분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SSRI와 같은 항우울제도 REM 수면의 비정상적인 발현에 의한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면병 환자들은 약물 치료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기면병 신약으로 알려진 수면장애 치료제 '수노시'(Sunosi, 성분명: 솔리암페톨)는 국내 공급이 안 되고 있다. 이는 국내 약가 문제와 결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신약을 개발해도 제대로 가격을 책정받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며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국산 신약마저도 한국 시장을 후순위로 두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국산 신약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한 한국기면병환우협회 대표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국내 기면병 환자 수가 적다 보니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면증 환자들에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GHB(감마 하이드록시 부티레이트)'는 이른바 '물뽕'이라 불리며 국내에선 허가 제한 약물로 지정됐다. 색이나 맛·냄새가 없는 액체로 클럽이나 파티 등에서 성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탓이다. 식약처는 "GHB는 일명 '물뽕, 파티용 약, 데이트 강간약물'로 불리며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제한 사유를 고시하고 있다.
국내에 시판되는 기면증 약물은 각성 효과를 촉진하는 프로비질·누비질과 각성 효과 촉진과 더불어 탈력발작 완화에 효과적인 와킥스필름코팅정(와킥스) 등 총 3종뿐이다. 이마저도 와킥스 공급 중단으로 대안이 줄어든 실정이다. 이한 대표는 "증상 완화제들이 모든 환자한테 100% 통하지 않으며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와킥스가 기존 약들에 비해 순하고 부작용이 덜해 꼭 필요한 약이지만 국내 공급 중단으로 난감한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와킥스를 공급하는 미쓰비시다나베파마코리아주식회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4월 19일 자로 공급 중단을 보고했다. 오는 9월 16일부터 공급이 중단될 예정이다.
회사는 "최근 와킥스필름코팅정의 원개발사인 Bioprojet가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하면서 당사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내 수입품목허가를 취하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해당 의약품의 국내 공급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와킥스필름코팅정과 동일한 성분의 기면증 치료제는 당사 제품만 있으나 모다피닐, 아모다피닐 등 다른 성분의 기면증 치료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환자 치료에 사용돼 왔고 해당 의약품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시장 점유율도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환자 치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기면병 환자들은 난감해하는 반응이다. 먹던 약을 바꾸면 효과와 부작용을 최소 몇 달간 지켜보며 조절하는 기간이 필요한 데다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 약효는 어떨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상‧직장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기면병환우협회 회원들은 와킥스 공급 중단 소식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약(모다피닐, 아르모다피닐, 메틸페니데이트)도 있으니 대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전이 다른 각성제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 크게 도움 됐다', '진단 7년 차 기존 약들을 온갖 경우의 수로 조합해도 부작용이 극심했는데 와킥스가 유일하게 부작용이 없어 드디어 잠들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다른 약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두통 및 오심, 심박수 증가 등 부작용이 심한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등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홍승철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수면학회 회장)는 여성경제신문에 "환자마다 자신의 몸에 받는 약, 받지 않는 약이 모두 다르고 다양하다. 따라서 약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경우 치료할 수 있는 약이 15가지가 있다. 하지만 기면증은 현재 3개뿐인 실정"이라며 "또 환자마다 여러 약을 조합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프로비질과 와킥스, 혹은 누비질과 와킥스, 등 다양하게 쓴다. 와킥스는 다른 두 약물보다 순한 편으로 부작용도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이 와중에 와킥스가 중단된다면 그동안 해당 약을 먹어 오던 환자들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의사 입장에서도 치료할 수 있는 무기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라며 "희귀의약품으로 따로 수입해서 복용한다면 환자들은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은 써야 한다. 와킥스가 국내에 남아있는 게 가장 필요하지만 제약사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등 현실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면증 환자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은 약물뿐이다. 치료 약 공급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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