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前 대통령의 힘 거의 없어
재임 시엔 '국기결집' 효과
정권 심판론 약해질 수도

이번 총선은 여러모로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선거라고 생각한다. 사법 리스크를 가진 인사들이 대표로 있는 정당들이 약진한다는 점도 그렇고 전직 대통령의 행보를 봐도 매우 독특한 선거라는 것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이 유세에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 출마한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지역 유세에 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과거에 단 한 차례도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의 유세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국가 원로로서 책임감 때문이다. 즉 국가 원로로서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하는데 총선판에 뛰어들면 ‘정치성’이 강조될 수는 있어도 국민통합을 말할 수는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극적’ 총선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국민으로서는 ‘이색적’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문 전 대통령이 왜 이런 행보를 보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민주당에는 그리 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전직 대통령은 ‘힘’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권력이란 ‘자리’에 의해 주어지고 행사되는 존재이지 사람을 따라가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는 힘이 막강하지만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 0시부터는 힘이 완전히 빠져나간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재임 기간 지지율이 나쁘지 않았으니, 지금도 영향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 2023년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12.4%,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대통령으로서 잘한 일이 많은 대통령은 누구라고 생각하나’라는 설문이 있는데 해당 문항의 응답 결과를 보면 노무현 70%, 김대중 68%, 박정희 61%, 김영삼 40%, 문재인 38% 순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높은 지지율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팬데믹에 의한 국기결집 효과 덕분이었다. 즉 인류 초유의 전염병 공포로 인해,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의지하려는 성향이 강해지는 ‘국기결집 효과’ 덕분이라는 것이다. 재임 중 지지율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한 문 전 대통령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대통령들 모두는 퇴임 이후에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했다는 점을 생각해 봐도 문 전 대통령이 현재 선거판에 등장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민주당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정권을 빼앗긴 전직 대통령인데 그런 인물이 자꾸 등장하면 대선 당시처럼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연상하게 돼 정권 심판론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뜩이나 민주당 후보들의 부동산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을 연상하게 되면 부동산 문제가 오히려 더욱 부각되는 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민주당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나라가 망해가던 것 기억 안 나나.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정말 살기 힘들었던 것 기억하지 않나”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 전 대통령의 등장은 친명과 친문의 갈등을 격화시킬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이재명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더욱 확고히 선을 그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등장을 반기는 측은 국민의힘과 조국혁신당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아마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총선 전날까지 정치 행보를 계속하기를 바랄 가능성이 있다. 그래야만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다시 살릴 수 있고 이를 통해 정권 심판론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런 측면을 아는지 모르겠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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