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비대위원장의 강점과 약점
정계 개편 시도 이력 多 보유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치른 10·11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한길 위원장의 국민통합위원회를 소집하는 동시에 대통령실과 내각의 고위당정회의를 일주일 단위로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판단은 무조건 옳다"면서 반성·소통·통합 계기로 삼겠다고 심기일전했다. 그러나 상대방인 야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친문의 족쇄를 벗어나 진보 진영 80%의 지지층을 확보한 이재명 대표를 상대로는 분열로 치닫는 여권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우여곡절 끝에 김기현 2기 체제란 과도기를 맞은 윤 대통령의 새판짜기가 시작된 가운데 여성경제신문이 여·야의 내년 총선 구상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초청 정책간담회에 김병준 전경련 특별고문(당시 회장)과 인사를 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초청 정책간담회에 김병준 전경련 특별고문(당시 회장)과 인사를 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한국경제인협회 특별고문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투톱'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돌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원탁회의 원로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기반의 '야권연대'를 구체화하는 상황이라 우선은 안정에 방점을 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와 지도부 사이에 펼쳐졌던 내전이 '공천 문제는 공식 기구를 통하겠다'는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간 '김장연대'의 판정승으로 기울어지면서 공천관리위원장 유력 후보로 김병준(金秉準)이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있다.

재계에 몸담고 있는 김 고문은 2020년 4월 총선 낙선 이후로 본인이 직접 출전(出戰)하는 정치 활동은 접은 상태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역할'을 보여줬다.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 "후보는 연기만 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경질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주변 인물은 정치 낭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김 고문과 함께 해온 보좌역들은 현재 국정상황실의 비서관 및 행정관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 과거 김 고문의 이력을 보면, 직접 선수로 뛰는 정치는 그만뒀다 하더라도 조언자 내지는 멘토로서의 정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을 둘 법한 면모가 포착된다. 무엇보다 정계 개편 시도 이력(履歷) 다수 보유자라는 것이 김 고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나란히 서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나란히 서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노무현 정부 때부터 親文과 상극
'좌충우돌' 김종인과 확실한 차이

먼저 노무현 정부 말기 김 고문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역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대구·경북(TK) 신당을 구상하는 것과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이 극단의 내홍으로 접어든 상태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대적할 만한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자, 본인이 대선에 출마하는 카드를 고려한 것. 이를 위해 2007년 10월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함께 '영남권 정책 신당' 구상을 발표하고 김혁규 전 경남지사, 강운태 전 광주시장 영입을 추진한 바 있다.

'영남권 정책 신당'의 디자이너 역할을 했던 인물은 대구매일신문 출신의 정치권 원외 인사인 S씨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기도 한 S씨는 선거 때마다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정치인들을 당선시킨 경험이 있고, 2018년 자유한국당 비대위 출범 때도 김 고문의 멘토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또 정치적 파트너였던 이수성 전 총리도 여전히 김 고문과 자주 교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된 특이한 이력도 가졌다. 2006년 3월 김 고문은 한명숙 전 총리와 마지막 단계까지 3기 총리직을 두고 경합했으나 문재인 비서실장을 포함한 강성론자들에게 막혔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바보, 산을 옮기다>를 보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김병준 씨를 총리로 기용한다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뒤집는 얘기네요. 이해찬 총리는 자기 고집대로 하더라도 내 눈치를 볼 것은 보고 그랬는데···"라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말기 국정농단 게이트 국면에서 '탕평 총리' 콘셉트로 내정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와 가깝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인이기도 한 이상달 정강중기 창업자의 5주기 추도식에서 추모 메시지를 낭독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민주당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게다가 총리 내정 일주일 전 안철수 의원의 추천을 받아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를 선택해 논란이 됐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김병준 총리 카드는 없던 일이 됐다. 김 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나에게 온전히 힘을 실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분명히 책임과 고통을 나눠지겠다고만 했다"고 술회를 밝히기도 했다. 거국중립내각 콘셉트에 맞게 야당 출신 각료 50% 등의 구상도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어려운 시간을 경험했다. 김 고문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지낼 무렵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의 골프 접대 사건에 휘말려 경찰 수사를 받았다. 함 전 사장이 묘령의 여성과 서초구 인근 지역에서 법인카드를 남발한 사실이 드러나며 '함슐랭 가이드' 등의 풍자물이 회자되던 상황이었다. 김 고문은 강원랜드에서 개최하는 '프로암대회'에 참석해 강원랜드 측으로부터 식사와 접대 등 100만원이 넘는 향응을 받은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공식 피의자 입건되기도 했다.

김 고문의 자유한국당 비대위 시절을 잘 아는 B씨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김 고문이 2019년 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지 여부를 상당히 고민했다"고 전하며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설 경우 (본인이 주도한) 당협위원장 물갈이 등이 원점으로 돌아갈까 많이 우려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홍준표 체제의 적폐를 극복하지 못한 황교안 지도부는 '김병준 표 당협개혁'과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 결과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03석(34.3%)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수도권에선 겨우 16석(서울 8석, 인천 1석, 경기 7석)을 얻는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김 고문의 공천 과정에서도 '불이익'이 있었다. 대구·경북(TK)을 중심으로 큰 정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대구 수성갑 등을 전전하던 중 황교안 체제의 '험지 출마'론에 떠밀려 세종특별자치시 을지역구에서 생애 첫 총선을 치르다 낙선했다. 아울러 러닝메이트이던 김용태 전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역시 구로을에서 윤건영 의원을 상대로 싸우다 떨어졌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들이 2018년 10월 11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원 조직부총장, 김석기 전략기획부총장, 김용태 사무총장, 김 위원장, 전원책 변호사, 강성주 전 포항 MBC 사장, 이진곤 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 /연합뉴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들이 2018년 10월 11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원 조직부총장, 김석기 전략기획부총장, 김용태 사무총장, 김 위원장, 전원책 변호사, 강성주 전 포항 MBC 사장, 이진곤 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 /연합뉴스

곳곳에 우군도 많고 적들도 많아
그리고 어려운 개인 사정도 변수

"이번에는 반드시 뜻을 이뤄야 한다. 결과를 내야만 한다." 김병준 고문과 가까운 사람들은 최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내년 총선 기획에 참여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 고문의 정치 세력은 크지는 않지만, 용산 국정상황실을 비롯해 곳곳에 우군이 포진해 있다. 이달 하반기 정무수석으로의 승진이 유력한 한오섭 국정상황실장이 대표적이다. 한 실장은 김병준 비대위 당시 정무보좌역을 지냈고, 2020년 4월 세종을 선거도 총괄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국정상황실의 밑그림은 김기현 대표-김병준 공관위원장"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올 3월 당대표 선거 당시 김기현 캠프 총괄본부장을 지낸 구리 출신의 박창식 전 의원, 서울 편입 건으로 큰 화제가 된 김포의 홍철호 전 의원도 김 고문과 가까운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행보 초기 지원조직인 공정과상식연합 상임대표인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도 든든한 지원자 중 하나다. 정 교수는 김병준 고문이 만든 사단법인 공공경영연구원의 2대 이사장을 지냈다. 재계에선 전경련 회장직 바통을 이어받은 류진 한경련 회장을 비롯해 시민사회에선 자유한국당 비대위 조직강화특별위원과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활동을 함께한 오정근 교수(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가 막강한 우군이다.

다만 김 고문이 섣불리 정치 행보를 다시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너무 자주 만나면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친박 극우 집단의 기를 살려줘 국민의힘이 '도로 탄핵당'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방해 요소다. 복거일·주대환·차명진 등 안병직 계열 재야 뉴라이트 사이에서 공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도 전원책 변호사 문자 해촉을 빌미로 김병준 퇴진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당내 갈등을 빌미 삼아 공천 주도권 쟁탈을 시도 중인 하태경 의원도 이들과 같은 계보의 뉴라이트로 분류된다. 이 밖에도 김 고문의 개인적 사정도 변수로 꼽힌다. 

가까운 지인인 대구 출신의 C씨는 "김 고문의 부인 김은영 여사가 최근 루게릭병과 파킨슨병이 겹쳐 와병 중"이라고 전했다. 김병준 고문은 자신이 글을 쓰거나 연설을 준비할 때마다 부인에게 내용을 물어본다고 자서전에 남길 정도로 김 여사를 많이 의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세종을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도 김 여사 주변인들이 핵심 지원 그룹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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