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댄스가수 유랑단’의 김완선과 엄정화를 보며
선배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레전드 댄스 가수들이 전국 투어를 한다. 이효리를 중심으로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까지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그녀들이 ‘유랑단’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고, 그 내용이 방송화된다는 걸 알았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대에서 50대까지 세대는 다르지만 춤, 노래, 가수라는 직업 안에서 소통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스토리에 대한 예측과 이전에 좋아했던 그녀들의 곡을 다시 라이브로 들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물론 김태호 PD가 연출했던 ‘싹쓰리’, ‘환불원정대’에 이어지는 이효리가 등장했던 이전 방송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다는 짐작도 있었다.
이후 3개월 동안 그 댄스 가수들이 학교, 공원, 시장 등 일상 속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춤을 추며 무대를 꾸리는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매번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마주한 그녀들은 지역별로 마련된 무대의 소중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그렇게 무대에 오른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추억을 소환하는 그 시절 히트곡들이 매 회 펼쳐진다는 것 외에 새로움이 없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이 프로그램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무대 밖 모습들을 농밀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1980년대부터 2023년 현재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댄스 가수들이 모인 이 프로그램에서 나의 눈길을 끈 건 데뷔 30년이 훌쩍 넘은 김완선과 엄정화였다. 지난 주 방송된 마지막 회 무대에서 그 둘이 신곡을 선보였을 때에는 멋지게 마무리를 해 준 두 가수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방송을 보면서 오랜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전한 영감에 수없이 고개를 끄떡였던 것 같다. 우선 주어진 기회의 소중함을 알고 최선을 다해 시도한다는 것! 넉넉하지 않은 시간임에도 신곡을 만들어 발표한 것도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본인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배워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파워풀한 춤의 대명사 김완선은 신곡 ‘LAST KISS’를 작업하며 아이돌 뮤지션들의 동작을 배우고, 신곡 ‘DISCO ENERGY’ 안무 연습 기간 동안 엄정화는 댄서 동료들에게 “12시까지만 하자, 한 번 더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몸에 익을 때까지 쉬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삼십 년 이상 몰두하며 일해왔다는 건, 그 긴 시간동안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겪어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그 길을 가고 있는 후배들의 현재를 이해하고 필요한 조언과 응원을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이 앞으로 후배들이 만나게 될 시간들이란 것도 잘 안다.
“니 마음을 따라가”, “관심의 중심에 있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믿고 꽃을 피우기를 바래”라고 전한 김완선과 엄정화의 응원이 가볍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선배가 있다는 건 후배들에게도 현재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엄정화 팀의 한 댄서는 그녀와 함께 무대를 하면서 춤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그저 좋고 즐거워서 춤을 췄던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 눈물이 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보아는 김완선을 보며 나도 그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멋진 춤을 출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연륜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과 고마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대해 표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다는 거다. “효리야 덕분에 이렇게 멋진 경험과 추억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너무 고마워”, “나도 효리에게 길이 될 수 있어서 좋았고, 효리가 내 손을 잡아줘서 너무너무 좋았어” ‘댄스가수 유랑단’이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이끌어간 이효리에게 전한 인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노력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격려와 지지도 마음에 남았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늘 완선만의 음악을 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앞으로의 완선의 시간은 더 다른 빛나는 무대가 될 것 같아, 그 시간을 내가 응원하고 함께 같이 가자”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 정화한테만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친구야, 내가 좀 힘들고 투정부리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을 때 연락할 테니까 잘 받아줘.”
이 두 가수가 ‘현재진행형’의 가수로서 다시 한번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일을 해 온 나는 후배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현재의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말이다. ‘길을 만드는 마음으로 돌파하려고 한다’는 그녀들을 응원하며 이참에 나도 내 길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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