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정원사 수업 들은 후 발견한 내 주변 식물들
화분 몇 개로 시작한 식집사 생활의 즐거움

가정정원사 수업 중 키우기 어렵지 않다는 다육식물들로 모아심기를 했다. /사진=김현주
가정정원사 수업 중 키우기 어렵지 않다는 다육식물들로 모아심기를 했다. /사진=김현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지난 6월 한 달간 가정정원사 수업을 들어서인지(이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중구 정원지원센터에서 주 1회 원예 수업을 받았다), 길가의 가로수도 담장 아래 내다 놓은 화분들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어떤 나무인지 꽃인지 휴대폰으로 찾아본 후에야 자리를 뜨곤 한다.

가지가 잘 정리되어 튼튼해 보이는 식물을 보거나 꽃이 예쁘게 핀 나무들을 보면 당연히 사진에 담아 놓는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키워보리라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계획만 세우는 건 아니다. 어설프지만 조금씩 흙과 식물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예 수업 시간에 물꽂이용으로 받아온 몬스테라 줄기에 뿌리가 돋는 것을 보자마자 냉큼 화분에 옮겨 심었고, 키우는 게 어렵지 않다고 추천받은 다육이들을 사기그릇에 모아 심었다. 서점 신간 코너나 도서관 검색대 앞에 서면 가드닝, 정원, 원예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식물 관련 앱인 ‘모야모’를 다운받아 틈나는 대로 원예인과 식물애호가들이 올려놓은 사진과 글을 읽어 본다.

회사와 멀지 않은 종로5가 꽃시장도 가끔 돌아보고, 포털 사이트에 정원이나 원예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클릭해 확인한다. 아직은 분갈이 해 놓은 식물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지 노심초사 들여다보는 초보 ‘식집사’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식물들과 함께 지낸다는 느낌이 있다. 원래 존재했던 내 주변 식물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단계랄까.

파주의 대형 원예농원 조인폴리아(왼쪽)와 슬로우파마씨의 팝업 전시 ‘Space O Project, Back to the Earth’(오른쪽). /사진=김현주
파주의 대형 원예농원 조인폴리아(왼쪽)와 슬로우파마씨의 팝업 전시 ‘Space O Project, Back to the Earth’(오른쪽). /사진=김현주

식물을 보기 위해 조금 멀리 나서기도 한다. 언젠가 방송에서 여러 품종의 꽃과 나무를 판매하는 대형 화훼농원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이 ‘조인폴리아’라는 걸 알아내어 파주까지 다녀왔다. 필요한 토분 몇 개와 분갈이용 흙, 기본 원예도구들을 사 왔는데, 그것보다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대부분의 식물이 빠짐없이 배열되어 있는 판매 구역과 열대 숲처럼 조성한 작지 않은 식물원에 감탄하며 구석구석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슬로우파마씨(Slow Pharmacy)’의 팝업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방문하기도 했다. 실내외 조경작업 등 식물로 공간을 채우는 일을 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브랜드인데, 정원을 꾸리며 생활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잡지 기사를 통해 읽은 이후부터 이들이 기획하는 행사를 눈여겨봤다. 아산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있는 아내의 부모님을 직접 방송으로 접하며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KBS 다큐멘터리 ‘자연의 철학자들’의 첫 화 ‘너는 꽃이다’가 부모님의 이야기였다).

바쁜 도시 생활의 고단함을 식물 처방을 통해 개선한다는 컨셉으로 작업하고 있는 이들의 이번 전시 제목은 ‘Space O Project, Back to the Earth’이다. 식물배양작업 미션을 가지고 화성으로 간 식물학자 K를 생각하며 꾸며 놓은 공간에는 우주선 모형의 구조물과 실험실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구성된 다양한 식물들이 전시됐다. 식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흥미로웠다.

숲을 배경으로 해 생명의 어우러짐을 동화적으로 표현한 백은하 작가의 작품을 제주 코오롱리버스솟솟에서 만났다. /사진=김현주
숲을 배경으로 해 생명의 어우러짐을 동화적으로 표현한 백은하 작가의 작품을 제주 코오롱리버스솟솟에서 만났다. /사진=김현주

제주도 출장 때 방문한 백은하 작가의 전시도 빠뜨릴 수 없겠다. ‘꽃잎 작가’로 알려진 그녀의 개인전 '이야기 한 송이'(아트스페이스 빈공간, 6.22~7.20))와 ‘달에서 숲으로’(코오롱리버스 솟솟, 6.22~9.20)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꽃잎을 말려서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는 제주에 내려와 작업하면서 작품의 틀을 확장했다.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꽃과 나무의 생명력을 강하게 느끼며 생활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꽃을 붙이는 것에서 직접 그리는 것으로 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생명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자라 꽃을 보며 성장했고 거기서 생명과 색을 배웠으며 그 시간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화목한 세계를 표현해 왔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자연과 식물이 주는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이렇게 지난 한 달을 돌아보니 가드닝과 원예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화분 두어 개 창가에 가져다 두었을 뿐이지만 꽃과 나무에 마음을 두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가득하니 말이다. 수목원과 식물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 속 어디를 가든 나무 한두 그루는 찾을 수 있다. ‘식물은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 여유와 편안함을 전해준 이 식물들과 넉넉하게 소통하는 시간을 더 늘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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