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올레길 걷기
그 아름다움에 첫발을 떼다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길에는 마을, 해안, 숲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사진=김현주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길에는 마을, 해안, 숲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사진=김현주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마음속 생각이 입 밖으로 툭 나왔다. 다들 올레길을 이래서 걷는구나 싶었다. 매체에서 일을 할 때 제주올레를 소개하는 기사를 여러 번 썼고, 그럴 때마다 한 코스 한 코스 머릿속에 그려보며 꼭 내려와 걸어보리라 다짐했지만 기회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회사 일과 가족의 일상을 뒤로 하고 오롯이 걷기 위해 며칠 시간을 낸다는 게 말이다. 올레길뿐 아니라 서울 둘레길, 동해의 해파랑길과 서해의 서파랑길, 그리고 언젠가는 산티아고까지! 마음 속에 담아둔 걷고 싶은 길들은 가득했지만 늘 위시리스트에 그치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아차산을 올라갔는데 정상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어렵지 않은 코스에서도 힘이 들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며 더 늦기 전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50대에게 ‘언젠가는’ 이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은 수식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면서 말이다. 

제주도에 본부를 둔 재단에서 일을 하게 되어 간간이 출장 갈 일이 생기는데, 우선 이 기회부터 놓치지 않고 활용해 보기로 했다. 일을 마치면 서둘러 공항으로 향하고는 했는데,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말이다.

마침 회의 일정이 오후부터 시작되는 출장이 잡혔다. 오전 시간을 이용하면 조금이라도 걸어볼 수 있겠다 싶어, 전날 저녁 내려와 재단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재단과 가까운 올레길 코스인 7코스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전체 27코스 중에서도 바다와 마을을 끼고 도는 길이 아름답다고 추천받는 코스다.

5~6시간이 걸리는 전 코스를 걸을 시간은 없으니 우선 반만이라도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호텔 문을 나섰다. 족히 3시간은 걸릴 테니 코스의 시작점인 서귀포로 향하는 첫 버스를 타고 출발해야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시작으로 나의 올레길 탐방을 시작됐다. /사진=김현주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시작으로 나의 올레길 탐방을 시작됐다. /사진=김현주

7코스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출발해 외돌개, 법환포구,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해안 길이다. 이번에는 법환포구까지만 걷기로 했다. 오전 7시가 채 안 된 시간이라 아쉽게도 센터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부지런한 ‘삼춘(제주어로 남녀불문 어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들 몇 분은 센터 앞에 막 수확한 귤을 깔아놓으며 장사 준비를 하셨다.

초행길에다 올레길도 처음이라 ‘제주올레’ 앱을 켜고 위치를 확인하며 길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막상 걸어 보니 안내가 촘촘하게 되어 있어 지도를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노선을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가 눈에 띄었다. ‘간세’ 머리가 향하는 방향이 시작점에서 종점을 향하는 정방향이라고 하니 그쪽으로 움직이며 걸었다.

그보다 더 자주 만났던 건 돌담이나 전봇대 등에 붙어 있는 화살표 표지인데 파란색 화살표는 정방향을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알려준다. 제주의 바다와 귤을 상징한다는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 역시 나뭇가지와 전봇대에 묶여 길의 방향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었다.  

2007년 제주올레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방문객들이 제주 길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편안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정비되고 있다는 게, 걸어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천지연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 들어섰다. 나무와 연못, 잔디와 조형물이 깔끔하게 정비된 도심 속 공원인데 이른 시간임에도 운동을 나온 근처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원을 지나 해안가 쪽 길을 따라 나서니 삼매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보였다. 7코스 중 가장 높이 올라가는 숲길인데 앞에 설치된 표지판에 혼자 오르지 말라는 문구를 읽고 잠시 고민했다. 평소 같았으면 시간과 상관없이 숲길로 향했을 텐데, 신림동 등산로 살인사건 이후로는 혼자 어둑한 길로 들어서는 게 꺼림직했다.

괜히 마음 졸이지 말고 발길을 돌려 도로를 따라 등산로와 다시 만나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도 자치경찰단이 주민과 관광객이 자주 찾는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을 돌아보는 자치 경찰기마대를 운영한다는 뉴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서귀포지역 경찰대도 차량순찰과 도보, 드론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 좋은 길을 걸을 때도 나처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다시 올레 표지를 따라 걸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암벽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황우지선녀탕을 지나 외돌개가 보이는 전망대까지 꺾어지는 길마다 놀라운 풍광들이 펼쳐졌다.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숲길인 수봉로(염소가 다니는 길에 삽과 곡괭이로 계단과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를 만난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수풀길을 헤치고, 바다 앞 자갈길을 걷다가, 해안 옆길에서 한참을 서 있기를 반복하며 7코스의 반을 돌아 목표했던 법환포구에 다다랐다. 한 코스를 마무리하지도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올레길이 얼마나 다채롭고 역동적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신비롭고 황홀한 풍광에 역사와 숨은 전통이 숨 쉬는 아름다운 길/ 발길 닿는 곳 하나하나가 숨은 비경으로 꽉 들어찬 길/ 행복과 평화와 치유를 누리며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길/ 마음 속 하나를 버리면 아무런 대가 없이 둘 이상을 건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 올레길을 걷기 시작할 때 들었던 제주올레 오디오 가이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놀멍, 쉬멍, 걸으멍 천천히 걸어가는 다음 시간이 기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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