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직장인 심리 상담을 통해
오십 대의 우선순위 재정리

오십 대,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시기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 사진=gettyimages
오십 대,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시기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 사진=gettyimages

 

만나이 통일법이 도입된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익숙했던 나이에서 한 살을 덜어낸 숫자를 말하고 있는데, 솔직히 아직은 몸에 잘 맞지 않은 느낌이다. 오십여 년 간 머리 속에 담아 두었던 나이를 갑자기 내려 말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나이와 몸의 상태, 삶의 모습을 나이테처럼 연결하며 살아왔는데 그걸 조정해야 한다는 게 무언가를 다시 그려야 하는 숙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살 젊어진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라, 새로운 나이를 머리에 담아두고 생활하려고 한다.  ‘이제야 본격 오십 대에 들어선 거야’라고 되뇌이며 말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말할 수 있지만, 같은 오십 대라고 해도 초반, 중반, 후반은 차이가 있다. 내 경우만 봐도 막 오십 대에 들어섰을 때는 머리 속으로 그리던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진지하게 고찰했다. 선배들을 만나면 일상의 변화에 대해 물어봤고, 관련 책과 기사들을 찾아 읽었으며, 몸 상태를 체크하며 예전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던 30, 40대와는 달리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찬찬히 생각해보며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명과 무대를 전환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지금, 50대라는 시기에 대한 긴장과 설레임은 없다. 오히려 예측했던 상황을 마주하며 그 나이의 삶을 실감하고 지치기 일수다.  
백세 시대라면 오십 대는 인생의 절반에 다다른 시기다. 반환점을 막 돈 지점 말이다. 살아갈 날이 지나온 날 만큼일 펼쳐질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상황은 이전과는 다르다.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마음이 설레는 일은 드물어진다. 직장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이미 그만뒀다면 경제활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불안하고,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선 한쪽 켠에 물러서 있곤 한다. 갱년기에 들어선 배우자와 예민한 사춘기 자녀의 짜증은 버겁고, 나이 드신 부모님은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

친구들도 다 비슷한 상황인 듯 보여 만나도 이전만큼 흥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달라졌기에 이전만큼 닥친 상황에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도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한 박자 쉬면서 정리하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심리 상담을 시간을 신청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사진=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심리 상담을 시간을 신청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사진=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사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뜬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고 해 보고 싶었다. 대부분 직장 내 심리상담 서비스는 직장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로 의한 심리적인 어려움과 이로 인한 자존감 저하, 우울감 발생 등에 대해 상담사와 이야기하며 원인을 찾고 개선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목적으로 참여했다. 퇴직을 얼마 앞둔 은퇴 전 50대의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일상을 영위하는지 궁금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내 연령대의 내담자는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50대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구나’란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의 일상에서 어떤 점이 가장 행복하세요?”, ”이게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예전의 나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숨을 고르고 주변과 나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십 대가 된 현재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모색했고, 실감했던 오십 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웰에이징(well-aging)’강의로 유명한 서울대 심리학과 한소원 교수의 책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에서 읽은 내용인데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더 적게 경험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질이 높다는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진의 결과를 소개하며, 나이가 들면 남은 시간, 미래의 기회가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삶의 소중함을 더 생각하며 그 시간 동안 정서적 목표를 우위에 두고 생활하려 한다는 걸 그 이유로 전한다. 젊었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취의 동기보다 정서적이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적인 기쁨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 살 어려진 나이를 인식하다 보니 현재의 나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됐다. 어찌됐건 오십 대, 인생의 반을 돌아 새로운 길로 들어선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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