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중장년 또래들과 함께 떼창을 즐겼다
'2023 환경콘서트 - 푸른 바다, 그리고 인연(with 김기태)'

‘기태 사랑’이 쓰여 있는 빨간 하트의 머리띠를 쓰고 네온 부채를 흔드는 수백명의 팬들의 모습은 비슷한 듯 달랐다. 친구들과 함께 온 30대부터 딸과 꼭 붙어 앉은 50대 엄마, 백발이 성성한 60대 부부까지 한 가수의 콘서트에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함께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난 토요일 마포문화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 가수 김기태의 콘서트홀 모습이다. '2023 환경콘서트 - 푸른 바다, 그리고 인연(with 김기태)'이란 이름으로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공연인데 지인의 초대로 오랜만에 나서게 됐다.
작년 ‘싱어게인 무명가수전’(JTBC)이란 경연프로그램에 33호로 등장한 김기태는 특유의 울림 있는 가창을 선보이며 우승했고 이후 그가 여러 무대에서 보여준 절절한 감정의 노래들은 많은 이들을 주목하게 했다.
허스키한 보이스로 호소력 짙은 표현이 일품인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는다는 설레임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객석의 관객들과 호흡하며 라이브 공연을 즐겨보고 싶기도 했다.
4월 22일 지구의 날 기념 공연으로 개최되어 콘서트 수익금은 해양 보전 캠페인에 사용된다고 알고 있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최했던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콘서트를 준비하며 김기태 팬클럽 '말해줄래'의 회원들이 여수 해변 플로깅, 해양 보호 캠페인 후원 등을 하며 보여준 선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과연 직접 현장에 와 보니 팬클럽 회원들의 활동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첫 단독콘서트를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중요한 시험을 앞둔 자식을 응원하는 엄마의 모습 같았다. 가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덤이야 내가 10대였을 때부터 보아왔지만 근래 들어 두드러지는 건 중장년의 팬덤과 그들의 활동이다.
얼마 전 상암 월드컵경기장 FC서울의 경기에 임영웅이 시축을 하면서 4만5000명의 객석이 중장년의 여성 팬들로 꽉 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코로나 이후 최다 관중이라고 했다(임영웅의 공식 팬카페 ‘영웅시대’는 2017년 개설 이후 현재 19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는 팬들이 보여주는 ‘스밍(스트리밍)’의 힘으로 트로트 가수들의 곡들이 포진되어 있고, 심지어 작년에는 중장년 팬들의 활동을 소재로 한 ‘주접이 풍년’(KBS2)이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물론 중장년들의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로 일본어 오타쿠-오덕후에서 변화된 말이다)이 트로트 가수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내 주변에는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로 활동하며 굿즈를 모으고 콘서트를 챙기는 지인도 꽤 있다.
중장년의 팬덤이라고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스타의 방송과 행사장을 따라다니고, 팬카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발표한 음원을 적극적으로 듣고, 선물을 마련해 전달한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다른 세대 팬들보다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데 여유가 있다는 점 정도다.
혹자는 팬덤이 생기는 원인을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로 보기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함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인간 욕구 중 세 번째 단계인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 팬질일 수 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욕구를 충만하게 채운 팬들은 그다음 단계인 존중과 존경을 받으려는 활동으로 넘어간다. 단순히 스타를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는 게 아닌 팬클럽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참여하는 등 스타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려 하는 것을 그 예라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장년의 팬덤은 잊고 있던 나의 감정에 몰두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위안과 활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가족을 돌보고 주어진 일을 해결하느라 바빠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힘들었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 불현듯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이 들었다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중장년에게 누군가의 팬이 되어 활력을 찾아가는 활동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공연이 시작되고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거 행복하게 덕질하자)’하고 있는 팬들 속에 묻혀 나 역시 가수 이름이 프린트된 팻말을 연신 흔들었다. 그들이 느끼는 활력이 어떤 건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박수치고 소리치는 시간이 주는 에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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