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물가보다 낮은 금리 인플레 못 잡아
GDP보다 높은 국가부채 재앙 잉태

우리는 팬데믹 이전 수십 년간 낮은 금리에 치솟은 주가나 집값 등 위험자산만 보유한 채 미래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유포리아에 갇혀 살았다.  /언스플래쉬
우리는 팬데믹 이전 수십 년간 낮은 금리에 치솟은 주가나 집값 등 위험자산만 보유한 채 미래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유포리아에 갇혀 살았다.  /언스플래쉬

창밖에는 형광빛 연한 수양버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진한 향을 내뿜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파랗게 갠 하늘을 보노라면 행복감이 절로 솟아난다. 절정에 이른 봄 날씨가 주는 소중함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다. 사방이 여리고 부드럽고 평화롭다.

그러나 완벽한 봄 날씨가 영원할 수는 없다. 나뭇잎을 키워 더 많은 물과 영양분이 돌게하고 채소와 곡식을 자라게 하려면 점점 햇살이 따사로워야 한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은 한여름의 불타는 더위를 견딘 결과이다. 산고와 성장의 고통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경제의 봄 날씨는 골디락스다. 어여쁜 소녀가 귀여운 어린 곰과 다정하게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온도의 맛있는 수프와 같다. 그것은 또한 2분의 2박자가 경쾌하게 이어지는 것과도 같다. 2% 안팎의 물가와 2%가 넘는 경제성장과 2% 아래의 금리가 어우러져 만드는 이상향이다.

이런 경제의 이상향은 낯설지 않다. 팬데믹 이전 수십 년간 우리는 이 이상향에 길들어 있다. 금리는 낮은데 주가나 집값은 치솟기만 했다. 위험자산만 보유하고 있으면 얼마 되지 않은 미래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유포리아에 갇혀 살았다.

불행하게도 경제의 이상향이 지속되는 것은 아름다운 봄 날씨가 영속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젊은 시절 건강도 오래갈 것 같지만 나이 들어 관리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악화한다. 운동을 지속하지 않고 폭음이나 폭식을 되풀이하거나 약물에 중독되면 신체의 기능은 금방 약화한다. 

골디락스 경제를 지속하려면 경기를 과열시켜서도 안 되고 냉각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균형예산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중앙은행은 통화량이 적정한 수준에서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경기가 냉각되면 적자예산을 편성할 수 있지만 임시방편이어야 한다.

물가가 2%대를 넘어갈 듯한 조짐만 보여도 중앙은행은 경각심을 갖고 긴축정책을 펴야 한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성공의 길이 보이듯이 정부도 중앙은행도 불침번을 서듯 정책의 비질런스(vigilance: 방심하지 않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를 유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균형 잡힌 예산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벌어들인 한도에서 돈의 씀씀이를 정해야 한다. 혹자는 과도한 감세나 재정팽창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미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얘기한다. 세금을 낮추면 투자가 늘어나고 돈을 풀면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더 많은 조세 수입이 발생해 결국 재정이 균형으로 돌아간다는 논리다.

1960년대 재정팽창 정책을 펼쳤던 미국 민주당 행정부는 최근 바이든 정부와 유사하다. 당시 재정적자를 국가부채로 메꾸면서 인플레이션을 잉태했다. /언스플래쉬
1960년대 재정팽창 정책을 펼쳤던 미국 민주당 행정부는 최근 바이든 정부와 유사하다. 당시 재정적자를 국가부채로 메꾸면서 인플레이션을 잉태했다. /언스플래쉬

공급 중시 경제정책을 펼쳤던 로널드 레이건과 도널드 트럼프의 조세 개혁(1986, 2017년)이 감세에 초점을 맞췄지만, 1960년대 미국 민주당 행정부와 최근 바이든 정부의 복지 지출 증가는 재정팽창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높아졌지만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부채도 덩달아 늘어났다. 2012년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중요한 바로미터인 GDP의 100%를 돌파했다. 팬데믹 기간 국가채무는 수직 상승해 GDP의 120%를 넘어섰다.

이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경제가 과음과 과식을 한 것과 진배없다. 그런데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를 잡기 위한 선제적 금리 인상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흥청망청한 돈의 파티와 방만한 통화정책은 필연적으로 자산시장의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잉태한다.

2%대의 편안했던 물가는 가고 5%대의 뜨거운 성하의 날씨 같은 물가가 기승을 부린다. 연준은 나름 결연한 의지로 단기 정책금리를 5% 위로 올렸다. 그렇다면 곧 물가는 2%대로 잡히고 연준도 2%를 향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까?

아쉽게도 단기에 골디락스 경제를 복원하기 힘든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우선 물가의 끈적거림이다. 팬데믹 기간 붕괴했던 공급망이 회복되며 상품 물가는 눈에 띄게 내렸지만 경제에 도는 돈의 양이 큰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 물가는 여전히 견고하다.

경기부양책으로 정부가 지급한 현금이 아직 남아있어 가계의 소비 여력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급속한 재정팽창에 세수입 감소가 맞물려 재정적자가 거침없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 회계연도 3분기인 지난 3월 말까지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무려 1.4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재정적자가 26.5조 달러인 미 GDP의 5%를 넘었음을 뜻한다. 건전재정의 기준으로 자주 거론되는 GDP의 3%를 훨씬 상회한 수준이다. 재정적자 규모는 내년에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덕택에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택시장의 모습도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둘째, 실질금리가 플러스가 돼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금리 수준이 최소한 물가 상승분을 보전할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심리가 꺾이기 어렵다. 최근 중장기 경기 전망을 반영하는 시중 장기금리가 3% 초반대로 하락해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더 심화하고 있다. 

이는 물가를 가시적으로 잡으려면 연준의 추가적 금리 인상이 필요함을 뜻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현재의 금리 수준이 당분간 유지돼야 함을 시사한다. 은행 위기가 심화하지 않는 한 단기간 내 금리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워 스태그플레이션 대책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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