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뱅크런 막으려 이자↑수지 악화 직면
미 지역은행 대부분 신용등급 부정적
수신 부족 압박 대출 심사 기준 강화
돈맥경화 심화 경기침체 가능성 우려

이번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보고서는 4대 은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은행들이 수지 악화로 인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은행 위기가 단순한 특정 산업의 리스크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P=연합뉴스
이번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보고서는 4대 은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은행들이 수지 악화로 인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은행 위기가 단순한 특정 산업의 리스크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P=연합뉴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뉴욕, 시카고 같은 거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고층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웬만한 대도시의 다운타운에는 나름의 랜드마크 빌딩이 있다. 이들 대도시 도심을 화려하게 수놓는 고품격 빌딩의 대부분은 은행 건물이다.

은행은 신용도에 주로 의지해 영업하고 생존하는 몇 안 되는 업종 중 하나다. 그 신용도의 상징이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는 마천루다. 그런데 빌딩에도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에는 문제가 많은 건물이 있듯이 은행도 외형은 번듯하지만 속으로 골병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에 걸쳐 최근의 은행산업이 직면한 현실이 그와 상당히 유사하다. 지난 3월 미국 은행산업은 자산규모 2100억 달러로 자산순위 16위의 실리콘밸리은행과 1104억 달러로 자산순위 29위의 시그너처은행이 예금인출 사태로 파산하면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했다.

두 은행의 뱅크런은 유럽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스위스크레디트 은행의 퇴출로 이어졌고 미국에서는 자산규모 14위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예금인출로 번졌다. 이 인출 사태는 5월 초 JP모건체이스은행이 퍼스트리퍼블릭을 인수하면서 일단락됐다.

오랜 기간 미국 금융산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로 등장한 JP모건의 역할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은 뱅크런을 까맣게 잊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름 상승 랠리를 지속했다. 주식시장만 보면 마치 미국 은행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중소형 은행의 파산은 줄을 이었다. 작년 3월 이후 급격하게 이루어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 후유증이 은행산업을 쉽게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금리 인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최근의 은행 수지 악화는 이례적이다.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의 수지는 대체로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 금리가 상승기에 있을 때 은행은 금리 상승분을 은행의 주된 수입원인 대출과 채권금리로 전가한다. 반면 예금금리 인상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은행의 예대마진이 상승해 이익이 늘어난다.

이런 은행의 수지 구조로 인한 이점은 매우 낮은 예금금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조하에서 은행은 예금금리를 거의 0%로 묶어 놓았다. 수신금리가 제로인 반면 대출금리는 몇 퍼센트를 받으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했다.

연준의 양적완화가 초래한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대출의 부도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 낮은 금리로 채권시장도 고공행진 하면서 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견실해졌다. 그와 더불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기자본의 적정성도 향상됐다.

이런 양호한 환경 아래에서 은행은 규모를 키우며 성장을 거듭했다. 대도시 다운타운의 빛나는 고층 건물처럼 그 견조함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0년 초 이래 40년 만의 大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은행산업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이 초고속 고강도 금리 인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산업도 최근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가는 돈이 경제에 빠른 속도로 돌면서 발생한다. 금융은 그 돈이 흘러가는 통로다. 금융이 돈의 흐름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유동성의 과잉이 발생해 경제가 과열되고 물가가 오른다.

그런데 2022년 이전 미국 금융산업은 코로나 팬데믹이 조성한 유동성의 풍년 아래 투자와 여신에 대한 심사기준을 급격하게 낮추고 자산규모의 성장에 집중했다. 또한, 금융이 제공한 유동성이 주식,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곳곳에 가격 거품이 형성됐다.

이런 자산시장의 버블은 가계의 부(富)를 증가시키고 소비를 자극하면서 실물경제의 물가를 치솟게 했다. 그 결과 경기 과열을 식히기 위해 연준이 개입해야 했다. 거품이 커진 만큼 이를 진압하는 연준의 방망이질도 과격했다. 양적 긴축이 이루어졌고 단기금리는 5.5% 위로 올랐다.

은행은 그 충격을 온몸으로 감수해야 했다. 금리가 단기간에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은행의 수지 개선이라는 긍정적 사이클이 무너졌다. 우선 채권시장 붕괴로 보유채권의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다.

그 직후 다른 은행들은 채권을 만기 보유 목적으로 변경하면서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자금조달 부문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빅(big)4’로 불리는 초거대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에서 예금 이탈 조짐이 계속됐다.

그도 그럴 것이 예금금리가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예금자가 불안정한 은행에 돈을 계속 맡겨 둘 이유가 없었다. 단기금리가 치솟는 상태에서 단기채권으로 구성된 머니마켓펀드(MMF)에 돈을 넣으면 5%가 넘는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돈이 은행을 떠났다.

이런 예금 이탈은 중소형 은행에서 특히 심각했다. 예금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수신금리를 올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은행도 저축 계좌의 수신금리를 4% 위로 올렸다. 이렇게 수신금리를 올리면 은행의 예대마진은 축소되고 수익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자산규모 2077억 달러로 자산순위 19위인 뉴욕주 버펄로 소재 M&T 은행을 비롯한 10개의 지역은행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와 더불어 신용등급 강등을 위해 6개 대형은행을 심사 대상에 올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국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자산규모 2077억 달러로 자산순위 19위인 뉴욕주 버펄로 소재 M&T 은행을 비롯한 10개의 지역은행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와 더불어 신용등급 강등을 위해 6개 대형은행을 심사 대상에 올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최근 미국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자산규모 2077억 달러로 자산순위 19위인 뉴욕주 버펄로 소재 M&T 은행을 비롯한 10개의 지역은행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와 더불어 신용등급 강등을 위해 6개 대형은행을 심사 대상에 올렸다.

여기에는 자산순위 5위인 유에스은행(U.S. Bancorp)과 6위인 트루이스트은행(Truist)도 포함돼 충격을 주었다. 그 외에 자산순위 11위 뉴욕멜런은행과 12위 스테이트스트리트 같이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은행도 신용등급 강등 심사의 대상이 됐다.

또한, 자산규모 7위의 PNC은행과 9위의 캐피털원을 포함한 11개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여기에는 리전스(Regions)은행, 피프스써드(53rd)은행, 시티즌스(Citizens)은행, OZK은행 등 지역은행의 강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번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보고서는 4대 은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은행들이 수지 악화로 인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은행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은행 위기가 단순한 특정 산업의 리스크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금 이탈로 수신 부족의 압박에 시달리는 은행들이 대출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기업 여신에 대한 심사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올라갔다. 신용 카드론과 같은 가계대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대출기준이 강화되면 경제 내 ‘돈맥경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만기가 돌아온 여신의 롤오버가 어려워져 대출 부실화가 나타난다. 여신 연체율은 여전히 낮은 상태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대출 연체와 은행의 돈줄 조이기가 맞물리면 경기는 냉각된다. 고물가 속 다가올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