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인플레이션·임금 인상 관련성無
시차 효과, 물가&임금 상호작용
마이너스인 실질금리 정상화해
인플레와 불확실성 뿌리 뽑아야

최근 미국에선 몇몇 연구를 통해 임금 상승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통화정책 결정에 임금 상승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주장과 상반된 결과다. /DB그룹
최근 미국에선 몇몇 연구를 통해 임금 상승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통화정책 결정에 임금 상승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주장과 상반된 결과다. /DB그룹

이맘때 농촌에는 보리가 노랗게 익고 모내기가 한창이다. 스포츠가 없었던 근대 이전 벼농사 지역에서는 모내기의 순조로운 진행 여부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였다. 충분히 비가 내려 논에 하늘이 비칠 정도로 물을 대고 모를 심어야 풍년을 기약할 서막이 열리기 때문이다.

논농사 수확량이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세 이전 국가에서 그해 나라 경제의 성공 여부도 봄에 비가 충분하게 내려주느냐 여부에 크게 의존했다. 그래서 당나라 시성 ‘두보’도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好雨知時節)’고 봄비 내리는 밤의 의미를 각별하게 노래했다. 

그래서 중세 사회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국왕은 어떤 것이든 해야 했고 그 노력의 핵심에는 기우제가 있었다. 과학이 체계적이지 않던 고대에 천문학적 지식이 놀랄 정도의 수준으로 축적되었던 것도 비를 내리게 하는 하늘의 마음을 읽기 위한 절실한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거대 화산의 폭발이나 해류 온도의 변동 등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농사가 실패하고 그 참화가 수년간 누적되면 왕이 처형되거나 국가가 통째로 망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몇 년간 축적된 데이터에 의하면 봄에 내리는 비의 양이 가을 수확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고 주장한다면 정치사범으로 몰려 처벌받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봄에 내리는 비는 벼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필요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강수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봄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눈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비의 존재 자체가 벼의 성장과 수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논란이 미국의 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몇 연구는 몇 년간의 데이터를 통해 통계적 상관관계를 측정한 결과 임금 상승이 서비스 부문의 물가 상승을 통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최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서비스 부문의 물가 상승이 근원(core)물가지수의 향방을 좌우할 것인데 서비스 부문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임금이기 때문에 통화정책 결정에서 임금 상승 등 노동시장의 동향을 특히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San Francisco Fed)의 대표적인 통화정책 연구자인 애덤 샤피로(Shapiro)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노동비용 상승이 근원물가(Core PCE)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해 대략 0.1%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부연해 설명하자면 노동비용이 1% 상승했을 때 비주택서비스(NHS) 부문의 물가도 상승하지만 이에 따라 전체 근원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4년간 0.15% 포인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은 대략 1년에 0.04%포인트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노동비용이 전년 대비 3%가량 상승했다면 근원물가가 상승하는 분은 0.1%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최근 연준이 임금 상승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효과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강세와 임금 상승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통화정책과 금리 인상을 보다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임금 상승은 아마도 인플레이션에 후행하거나 인플레이션 기대에 편승하는 듯하다고 곁들인다. 이 연구 결과는 피상적으로는 연준 내 비둘기파의 입지를 강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향후 금리 인상 보류 여부를 둘러싸고 분열 양상을 보이는 연준 내에서 강경파의 금리 인상 지속 논거인 노동시장 강세의 악영향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내 주류의 시각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임금 상승이 통계적 상관관계를 통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마치 봄비 자체가 가을 수확의 성패를 좌우하듯 임금 상승도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플레이션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차효과는 정책을 만들고 나서 실제 효과가 발생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임금 상승은 소득을 점진적으로 축적해 누적적으로 나타난다. 임금 상승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하더라도 물가와 임금은 결국 나선형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상승 궤적을 지속한다. /이온
시차 효과는 정책을 만들고 나서 실제 효과가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임금 상승은 소득을 점진적으로 축적해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대해 누적적 효과를 미친다. 임금 상승이 전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하더라도 물가와 임금은 결국 나선형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상승 궤적을 지속한다. /이온

실제 과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몇몇 주요 개발도상국이 인기영합적 임금 상승 정책에 집중했다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고 국가 경쟁력이 대거 약화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임금 상승은 소득을 점진적으로 축적해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대해 누적적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상품 부문의 물가 하락에도 연준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시차(time gap) 효과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높은 물가 상승에 신음하던 종업원이 임금 상승을 요구하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월급을 올려주지만 곧바로 그 인상분을 물가에 전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와 임금은 나선형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상승 궤적을 지속한다.

이는 또한 작년에 왜 그렇게 급속하고 강경하게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섰는지를 설명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빠르게 상품 물가를 잡아야 임금 인상 요구를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여기에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서비스 부문이다.

육체적 노동이 따라야 하는 서비스 부문에서 일손 부족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로 사라져 버린 인력을 다시 충원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고 있어 인력 충원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임금 인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렇게 서비스 부문의 일손 부족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굳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경제주체들이 해마다 몇 퍼센트씩 물가가 오르고 임금도 그 정도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경제주체 사이에 시멘트처럼 공고해져 전년 대비 몇 퍼센트의 물가 상승이 당연시되고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경제의 실질 성장률까지 플러스로 나타날 경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시중 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문제는 금리가 고공행진을 지속할 경우 그 부작용이 매우 클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악화하고 달러 금리의 고공행진이 재개되면 달러화의 초강세로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로 수출되는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준은 금리를 빠르고 강하게 올림으로써 실질금리를 확실히 플러스로 만들어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뽑아야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은행 뱅크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주입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재정 팽창을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퇴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올 하반기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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