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저금리 시대 묻지마 대출 부실화 시작
유가급등, 연준 금리인하 피벗 발목
고금리 유지되면 뱅크런 재발 가능성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합뉴스

핵 주먹을 자랑하는 마이크 타이슨은 ‘두들겨 맞아보기 전에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는 작년 3월 이후 지속된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내년에는 금리 인하로 골디락스 경제를 지속하려던 연방준비제도(연준)를 일컫는 듯하다.

연준은 올해 하반기 미국의 경제 성장이 다소 부진하겠지만 약한 정도의 침체에 불과할 것이고 내년 이후 통화 공급을 늘리면 경기가 다시 회복세를 탈 것으로 예상해 왔다. 물론 주식과 채권시장을 비롯한 시장 참가자들은 이보다 비관적이다.

실제 3개월 만기 달러 금리를 거래하는 유로달러 선물시장은 연준이 올해 하반기에 금리를 0.75% 정도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시장의 이런 예상이 어긋날 가능성이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플러스의 감산 선언으로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연준이 유가와 식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core) 물가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므로 유가 상승이 큰 문제가 되긴 어렵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연준은 정책 결정정시 근원 물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연준이 우려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싹이 다시 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 유가의 동향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로 물가지수를 끌어 올리기도 하지만 가계의 소비 심리를 좌우하는 휘발유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우뚝 솟아 있는 기름값 표지판의 급등은 은연중에 기대물가심리를 자극한다.

OPEC 플러스가 감산을 선언한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위로 치솟았고 휘발유 가격도 한 달 전 갤런당 3.25 달러에서 최근 갤런당 3.47 달러로 급등했다. 한 달간 대략 7% 상승한 것으로 가계와 기업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악화시키기에 충분한 수치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상승할 경우, 임금을 비롯한 서비스 물가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하방경직성이 강해 고착화되기 쉬운 서비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견조한 모습을 보이는 고용시장 덕분에 5%대 중반에서 끈적끈적하게 버틸 가능성이 큰 이유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에서 큰 폭을 차지하는 월세와 집값의 상승세가 꺾였으므로 서비스 물가도 곧 잡힐 것이라 예상하기도 한다. 이런 예상은 향후 수년 내에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금년 내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에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서부 해안과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집을 보유한 이들은 여전히 크게 가격을 낮춰 집을 내놓기를 꺼리고 있다. 그간의 관성효과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택 실수요자는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집을 구매하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그렇다.

젊은 층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 의지가 강한 이유는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빌려 집을 산 후 지불하는 월 원리금(모기지)이 집을 빌릴 때 내야 하는 아파트 등의 월세(렌트)와 비슷하다면, 집을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렌트는 아무리 내도 남는 것이 없는 반면, 모기지를 다 낸 후에는 진짜 내 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생애 첫 구매자에 대한 다양한 혜택과 모기지 이자에 대한 소득 공제도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한 이유다. 높은 금리 부담은 추후 금리가 내렸을 때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리파이낸싱(refinancing)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올해 내 주택가격과 렌트의 급격한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올해 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준의 입장을 180도로 선회하게 만드는 빅이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 18일 독일 엠리히하임의 오래된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3월 18일 독일 엠리히하임의 오래된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로 뱅크런(bank run)의 재발이다. 불과 한 달 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너처은행에서 예기치 않은 뱅크런이 발생하자 은행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준은 은행권에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면서 사실상 통화 긴축(QT)을 중지하고 통화완화(QE)로 되돌아가야 했다.

물론 미 정부와 연준이 신속하게 개입하면서 은행 위기는 일단 진정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은행의 재무 상태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뱅크런이 언제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취약해져 있다. 모든 은행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국채 등 보유 장기채권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장기채권은 고정 이자(fixed income)를 6개월마다 지급한다. 채권의 이자와 원금의 가액은 정해져 있는데 시장의 평균 수익률이 상승하면 해당 채권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렇게 금리 인상으로 미 장기채권의 가격은 재작년에 비해 20~30% 하락했다. 회계상 만기보유목적(HTM, held-to-maturity)으로 분류돼 있으면 채권 가격 하락의 직접적 영향을 피할 수는 있지만, 미실현손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재무 상태의 취약성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런데 은행 재무 상태에 대한 금리 인상의 악영향은 보유 채권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채권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채권과 같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출의 미실현손익은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대출 금리가 시장금리와 연동되어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장기대출은 채권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고정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고정된 이자 수입이 금리 인상으로 인해 현재 시장의 실세 금리보다 낮아질 경우 그 대출의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물론 대출의 경우 차입자의 신용도를 감안해 상당폭의 가산 금리가 더해지기 때문에 웬만큼 시장 금리가 올라도 미실현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최근 미국 은행의 대출 미실현손실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는 충격적이다.

WSJ에 따르면 증시에 상장된 전체 435개의 은행 가운데 97%가 대출에서 미실현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금액으로 보면 2420억 달러에 달하는데 총자기자본의 14%에 해당한다. 그중 100개 은행의 경우 대출 미실현손실이 총자기자본의 50%를 넘어선다고 한다.

JP모건을 비롯한 11개 은행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파산의 위기를 넘겼던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대출 미실현손실(222억 달러)은 총자기자본(174억 달러)을 모두 잠식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미실현손실에 대한 불안이 뱅크런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미국 은행이 거액의 미실현손실에 시달리는 것은 최근 금리 인상뿐만 아니라 과거 금리가 너무 낮았던 것에도 기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를 통해 풀린 돈이 채권과 대출 증가로 이어졌고 제로금리 덕택에 고정 이자도 매우 낮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즉, 은행 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최근의 긴축에 있다기보다는 과거의 무분별한 장기 양적완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연준이 금리를 내려 시중 실세금리가 하락할 경우 은행의 미실현손실도 줄어들고 재무 상태도 개선될 것이다. 

문제는 연준이 유가 급등의 영향 등으로 단기일 내 금리를 내리기 힘들다는 현실에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싹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에는 뱅크런의 불씨가 두고두고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바이든에 대한 사우디의 원유 감산이라는 뒤통수가 제대로 아픈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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