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기관투자자의 주택시장 진입으로 부족한 수요 받쳐줘
집수리 후 월세·연기금 투자, 아메리칸드림 실현 장애

매물로 나온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단독주택 /AFP=연합뉴스
매물로 나온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단독주택 /AFP=연합뉴스

요즘같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올 때 생각나는 시가 정지상의 ‘송인(送人)’이다. 그는 봄비가 그칠 때면 강나루 너머에 풀빛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 노래했다. 그러면서 대동강 물은 마르지 않을 것인데, 해마다 부두에서 헤어진 연인들이 이별 눈물을 더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깊고 푸른 대동강 물을 봉이 김선달은 거액에 팔아 치웠다. 평양성에서 대동강으로 물을 길으러 가는 아낙들에게 미리 돈을 나눠준 뒤 물을 펄 때마다 되받는 수법으로 욕심 많은 어느 부자의 물욕을 자극했다. 부자는 김선달의 꼼수에 빠져 공공재인 대동강 물을 사고야 말았다.

전세금을 받아 빌라를 산 뒤 다시 전세를 내고 그 돈으로 또 빌라를 사고 전세 내기를 수십 차례 되풀이한 사람도 남의 돈으로 금방 부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내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소유주가 파산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전세 사기가 빅이슈가 되었다. 

문제는 집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목돈을 전세금으로 주고 집을 빌린 뒤에도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전세제도의 근본적 취약성에 있다. 미국의 경우 집을 사고팔거나 세를 놓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 매매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사기가 개입될 여지가 적다.

집을 팔려면 우선 부동산 중개인과 계약을 맺는다. 중개인은 집을 둘러본 뒤 집값을 올려 받기 위해 필요한 수리를 하고 집기를 교체하도록 요청한다. 매수자가 나타나 집이 마음에 들면 계약 단계에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매수자도 집의 수리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매수자는 집을 구매할 현금이 부족할 경우 은행을 찾아가 소득명세 등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주택 대출승인을 받는다. 그러면 매매계약의 종료(closing)를 위해 지정된 장소에서 매도자, 매수자, 양측의 중개인과 은행 담당자가 만나 변호사 입회하에 사인을 하고 열쇠를 받는다.

매매 대금은 변호사가 지정한 에스크로 계정에 우선 입금되므로 사기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집을 파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시간적, 금전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집을 수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중개수수료로 집값의 6% 안팎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주택매매 과정에서의 불편을 파고든 업자들이 있다. 즉석(instant) 매수자라 불리는 아이바이어(iBuyer)들이다. 오픈도어(Opendoor)나 오퍼패드(Offerpad) 등의 아이바이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집의 매도 요청을 인터넷으로 접수한다.

매도 요청은 집 주소와 몇 가지 간단한 정보의 입력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 아이바이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성을 파악한 뒤 집을 온라인으로 둘러본다. 휴대폰 카메라와 스피커를 통해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게 한다.

그리고 난 뒤 이르면 24시간 안에 집값을 제시한다. 대개 현금 일시불이다. 이처럼 아이바이어는 아무도 집을 방문하지도 않고 수리나 어떤 요구도 없이 신속하게 집을 팔고 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도자에게는 상당히 편리한 제도다. 

미국 워싱턴DC에서 매물로 나온 한 단독주택 /EPA=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서 매물로 나온 한 단독주택 /EPA=연합뉴스

물론 단점도 있다. 아이바이어가 제시하는 주택 매입 가격이 시가보다 상당폭 낮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 싸게 구입해서 집을 수리한 뒤 되팔아야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시장이 활황기였던 2021년에 아이바이어는 매우 공격적으로 주택을 매입했다.

그해 3분기에만 2만 8000채의 집을 샀는데 이는 전체 시장 거래의 1.6%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물론 아이바이어가 너무 비싼 값에 주택을 매입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 1위의 부동산 웹사이트인 질로우(Zillow)가 운영하는 아이바이어는 너무 고가로 주택을 매입하다 손실을 입고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아이바이어가 집을 사서 수리해 되파는 이른바 플리핑(flipping)에만 종사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집을 산 뒤 상당수의 집을 팔지 않고 세를 놓게 되면 문제가 된다. 가뜩이나 고질적인 미국 주택시장의 공급부족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미국의 주택 공급 부족은 650만 가구로 증가했다고 한다. 동 기간 결혼 등을 통해 1560만 가구가 새로 탄생했지만 주택 착공 및 완공 숫자는 이보다 현격하게 낮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에 매물로 나온 일반 주택이 아이바이어에 의해 월세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주택 공급 부족이 심화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월가의 거대 자본까지 주택 월세 시장에 진입하면서 내 집 마련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의 실현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사모펀드(PE) 및 대체투자 회사인 블랙스톤은 2012년에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인수해 2019년에 상장시켰는데, 이 회사가 월세 수입을 올리기 위해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의 숫자는 8만 건에 이른다. 블랙스톤은 2021년 또 다른 회사(Home Partners of America)를 인수했는데 이를 통해 1만 7000건의 주택을 세놓고 있다.

주택을 사서 월세를 놓고 있는 기관투자가는 블랙스톤에 국한되지 않는다. 월가를 대표하는 은행인 JP 모건과 골드만삭스도 마찬가지로 이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단독주택 월세를 증권화한 SFR(Single-Family Rental) 저당채권을 발행하거나 직접 투자를 유치해 주택을 매입해 왔다. 2021년까지 SFR 저당채권의 발행 규모는 무려 430억 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SFR 저당채권의 만기가 모기지 저당채권(MBS)보다 짧아 금리 인상 시 신규 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들이 채권의 신규 발행에 실패할 경우 상당 규모의 월세 주택이 매물로 나올 수도 있다. 최근 하락세로 전환된 월세 흐름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이는 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수요 기반이 취약해진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미국의 주택시장이 단기에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끊임없이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연기금이 이들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근로자의 피땀이 모인 연기금이 아메리칸드림을 저해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주택시장의 고질적 공급 부족이 단기간 개선될 여지가 낮은 것도 집값 붕괴를 예상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팬데믹 이후 오랜 기간 높은 공실률에 시달려 온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연체율 상승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부동산시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주택시장은 상대적으로 견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또 한 번 거대한 금융위기와 마주할 수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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