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 도전기]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다는데
걷기, 발성, 동작 하나하나까지
자세부터 고치고 연습 또 연습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했다

(지난 회에서 이어짐) 

‘새’ 공연에 필요한 몸동작을 가르치기 위해 남자 선생님이 한 분 오셨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유명한 선생님이셨다. 걷는 연습부터 시작되었다. 몸을 똑바로 펴서 자연스럽게 걸어보라고 하셨다.

제대로 걸어야 멋진 걸음걸이가 연출된다. 위 사진의 모델 걸음걸이를 보면 바로 걷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픽사베이
제대로 걸어야 멋진 걸음걸이가 연출된다. 위 사진의 모델 걸음걸이를 보면 바로 걷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픽사베이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기본이 중요하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지도 강사가 힘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힘을 쭉 빼고 물 위에 엎드려 있으면 몸이 물 위에 뜬다. 그것을 알면서도 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몸에 힘이 가해진다. 몸이 뻣뻣해지면서 가슴이 점점 더 수영장 바닥과 가까워지고 허우적거리다 결국 발이 바닥에 닿으면서 몸이 일자로 선다. 숨이 차서 얼굴에 홍조가 깃들고 입으로 물을 내뿜으면서. 힘 빼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터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골프를 배울 때, 지도 선생님께서 공 치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쳐들지 말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공을 치고 난 후에 고개를 들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공을 때리면서 동시에 고개를 쳐든다. 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보지 않으면 다음 공을 칠 수 없다는 듯 목을 길게 빼 들어 올린다. 공을 정확하게 치고 난 후에 고개를 들어도 날아가는 공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인지했는데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어찌하리오. 그러나 잘못된 습관이 반복되던 그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은 그 위대한 누구처럼 몸이 자세를 고쳐간다. 머리를 천천히 들어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앗싸, 굿샷”을 외친다. 그때부터 골프가 재미있다.

걷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걷기 기본자세는 상체를 똑바로 펴고 턱을 살짝 당기고 시선을 약간 위로 향하게 하고 걸어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목이 구부정하고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이미 몸에 배어버린 나쁜 자세가 나의 걸음걸이를 밉게 만들어버렸다. 다시 몸자세를 고쳐 본다.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배에 힘을 준다. 시선을 앞사람 정수리에 둔다. 지도 선생님 눈이 나에게 잠시 머물다 뒷사람에게 옮겨진다.

자세가 교정되면 빠르게 걸어본다. 느리게도 걸어본다. 일상적인 속도에서 2배 빠르게 또는 2배 느리게 걸어본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 느리게 걷는 것이 더 힘이 든다. 살면서 빠르게 걷기는 해 봤지만 느리게 걷는 것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느리게 걷는 것이 더 힘들까?

그다음 단계는 짝을 맞추어 서로 마주 보고 걷다가 파트너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 순간 천천히 걷고 완전히 비켜 가면 빨리 걷는다.

일반적인 걸음 속도로 걷다가 상대방과 가까워지면 느리게 걷는다. 슬로비디오를 연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픽사베이
일반적인 걸음 속도로 걷다가 상대방과 가까워지면 느리게 걷는다. 슬로비디오를 연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픽사베이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기도 해 본다. 걸음걸이에 감정을 실어보기도 한다. 화나는 걸음걸이, 슬픈 걸음걸이, 기쁜 걸음걸이도 표현해 본다. 걸음걸이에 감정을 실어서 걸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 이런 걸음걸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연기라는 것이 왜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는지 오늘 짧게 체험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기자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해야 한다. 때론 춤꾼이 되기도 하고 때론 막걸리 한잔하고 고개를 외로 꼬면서 굿거리장단 한가락도 멋지게 뽑아내야 한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 메뇨~’ 부를 때 발뒤꿈치를 땅에 대고 사뿐사뿐 걷는다면 굿거리장단 맛이 제대로 나지 않겠는가?

걷는 연습 하다가 굿거리장단까지 나간 것은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여하튼 배우는 만능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은 아주 초보적인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단순하게 걷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내일 또 다음날에는 다른 걷기 동작이 필요할 것이다.

걷다가 한순간 고개를 돌려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고개를 돌릴 때 목을 돌리지 않는가? 고등학교 때 교련복을 입고 씩씩하게 걷다가 “우로~ 봐!”라는 구령 소리가 나면 순간 목을 오른쪽으로 획 돌렸다.

그런데 오늘 몸동작을 가르치는 선생님께서는 목을 돌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코를 돌린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코를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연기 공부는 대사를 외워 감정에 맞는 소리를 내고 그 상황에 맞게 동작을 취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이 외에 특이하고 새로운 동작을 배운다.

매시간 연기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호흡 훈련, 발성 훈련, 스트레칭, 걷기를 기본으로 했다. 호흡 훈련과 발성 훈련은 나름대로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었다. 스트레칭은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몸 전체를 움직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 구석구석에서 ‘뚜두둑 뚜두둑’ 소리가 났다. 키가 커지고 옆구리가 쭉쭉 늘어나는 것 같았다. 입이 열리고 몸이 풀어졌다.

그 다음 걷기를 시작했다. 걷기 동작은 처음에는 단순하게 걷는 것이었지만 갈수록 어려운 동작이 추가되었다.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가 제자리에 가져오는 닭 동작이 추가되었을 때, 그 시범 동작을 보여주는 선생님을 보면서 ‘사람이 아니라 닭이네’라고 소리칠 뻔했다. 분명 닭이었다. 내 눈앞에서 키 큰 닭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꼬끼오’ 소리만 냈더라면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잡을 뻔했다. 너무 실감 나는 연기였다.

영화배우 문소리가 떠올랐다. ‘오아시스’라는 영화에서 문소리는 뇌성마비 역을 맡았다. 오른손 왼손이 뒤틀린 손의 움직임, 근육이 경직되어 비뚤어진 얼굴 표정, 휠체어에 앉아서 버둥거리는 두 발, 불분명한 발음으로 “왜 나한테 꽃을 가져다줬어요?”라고 묻는 입 모양과 그때 취하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뇌성마비였다.

비장애인이 아닌 뇌성마비 그 자체. 그렇게 연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껄렁껄렁거리는 배우 설경구보다 뇌성마비 역의 문소리 연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난 닭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