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연기와 50여 년 동행한 배우에게
연기의 기초를 배우면서 난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상태임을 알았다

2021년 가을, 딸이 전화했다.

모 문화재단에서 연극 아카데미 1기생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바로 홈페이지를 열고 신청을 했다. 이때는 연극 커뮤니티 회원들과 같이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어서 모든 신경세포가 영화에 쏠려 있던 때였다.

영화 촬영은 10월 중순에 끝나는데 연극 아카데미와 겹치는 날이 며칠 있었다. 다행히 요일이 겹치지 않았다.

연극 아카데미를 신청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나이가 환갑에 가까워지면서 두려운 게 나이였다. 이 나이에 뽑힐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젊었을 적 사진을 신청서에 붙이면서 생년월일을 보지 말고 이 당당한 사진만 보고 “합격”이라고 말하길 기대했다. 겉보기에는 마흔 중반으로 보일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  젊은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 나이가 어때서. 그래서 합격했냐고? “of course!”

기쁨의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바로 느낌이 온다. 위 사진이 기쁨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픽사베이
기쁨의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바로 느낌이 온다. 위 사진이 기쁨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픽사베이

문화재단 연극 아카데미 1기 오리엔테이션 날.

일찍 도착하여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부터 살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 마스크를 걸치고 있어서 나이 구별이 쉽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치켜올리고 두 눈에 힘을 주어 유심히 살폈다.

20대 30대는 보였지만 내 나이 또래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었다. 나보다 더 어른인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바로 우리의 연기(演技)지도 선생님이셨다. 영화, 연극, 드라마에서 활동하시는 현역 배우셨다.

첫 시간,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소개가 끝나자 문화재단의 연극 아카데미 담당자가 종이와 그림 도구를 나누어 주었다. 방금 소개한 회원들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서 인사와 함께 건네주라고 했다.

그때부터 게임 아닌 게임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의 얼굴을 살피고 이미지를 생각하는 심각한 분위기가 연출되는가 싶더니 몇 분 뒤 그림을 건네받고 큭큭 웃으며 서로에게 호감있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첫인상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과 그 마음이 생각대로 잘 그려지지 않은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자신이 받은 이미지 중 가장 맘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해 앞에 붙이고 왜 그 이미지를 선택했는지 설명하였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게임이었다. 어색하던 분위기가 조금 가시어졌다.

이렇게 첫 시간은 회원들의 소개와 몇 가지 게임으로 서로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들면서 끝났다. 다음 시간부터 본격적인 연기 공부가 진행된다는 예고와 함께.

두 번째 시간, 연기는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는 지도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가슴과 배에 손을 얹고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시범이 이어지고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각자 복식호흡을 했다. 의외로 어려웠다.

코로 숨을 들이마실 때 배가 불룩해져야 하는데 배가 홀쭉해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야 하는데 후딱 들이마시고 빨리 내쉬었다.

옆에 있던 30대 젊은이가 누워서 연습하면 서서 하는 것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작은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처음부터 잘하겠다는 생각보다 꾸준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면 잘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힘을 얻고 다음 단계인 발성 연습을 했다.

복식 호흡과 발성 연습은 매 시간마다 반복되는 연기의 기본이다. /픽사베이
복식 호흡과 발성 연습은 매 시간마다 반복되는 연기의 기본이다. /픽사베이

“하나면 하나요. 둘이면 둘이요. 셋이면 셋이요~~열이면 열이다”를 외치면서 소리를 높여가는 것이었다. 복식호흡과 함께해야 쉬운 발성 연습이었다. 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목에서 나는 소리로 고함을 지르면 목소리가 쉬고 목이 아프다고 하셨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발성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혼자, 그 후에는 둘이서 핑퐁 게임처럼 서로 주고 받으면서 발성 연습을 했다. 가만히 서서 하기도 하고 상체와 손을 앞으로 보내는 동작을 하면서 “하나면 하나요. 둘이면 둘이요~~”를 주고받았다. 매회 시작할 때마다 복식호흡과 발성 연습을 기본으로 할 것이라고 하셨다.

지도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오래된 경력이 그대로 묻어났다. 저런 대단한 분에게 연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그 열정에서 순간순간 청년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말씀도 멋졌다.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돌발 질문과 행동에 능숙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본격적인 연기 지도는 '산국' 극본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께서 대본과 함께 2가지 숙제를 내주셨다. 하나는 대본을 읽고 줄거리와 의도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본인이 맡고자 하는 배역을 적고 왜 나는 이 배역을 연기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A4용지 한 장에 적어 오라는 것이었다.

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극본을 받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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