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사람은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
나는 춤추는 것은 우스꽝스럽지만
대사 외우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지난 회에서 이어짐)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1%의 영감으로 천재가 만들어진다고?
그러나, 나는 천재는 만들어지기보다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고 질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을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노래는 어떤가? 춤은 어떤가? 연기는 어떤가?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연기를 잘할 때 우리는 신들린 연기, 또는 미친 듯한 연기라고 표현한다. 눈썹도 실룩실룩 움직이고 뺨도 경련을 일으키고 어깨도 자동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한다. 물론 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연기를 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연극 아카데미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 선생님은 연극은 생활 정서와 극적 정서가 있다고 하셨다. 내 나이가 50이라면 50년 동안 이미 연기 수업을 한 것이라고 하셨다. 즉 생활 정서에 익숙해져 있기에 여기에 극적 정서를 부여하는 것이 연기라고 하셨다.
예를 들어 돌잔치에 초대받았을 경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선물을 하고 상대 부모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지를 다 기획하고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생활 정서이며 50년을 산 사람은 이러한 생활 정서에 익숙해져 있기에 50여 년 연기 수업을 한 거라고 하셨다. 용기를 갖게 해주시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 생활 정서를 가진 50대의 그 어떤 이가 무대에서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 정서 외에 극적인 연기 요소는 배우고 익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만 하면 다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오랜 경력을 가진 배우가 모두 신들린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름 판단하지 않는가? 저 배우는 연기를 진짜 잘한다. 또는 어딘지 연기가 어색하다. 매번 그 연기가 그 연기다 라고 나름 평가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잘한다는 것은 타고난 그 무엇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가 영화 아마데우스의 두 주인공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아닐까? 내 노력 99%를 한순간에 뒤엎어 버리는 모차르트를 보면서 살리에리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음치, 몸치도 이 예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기 수업 중에 몸 동작과 안무 연습을 받으면서 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연기를 공부하면서 배우들은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연극을 보면 90분 동안 주고받는 그 많은 대사를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줄줄 외워서 동작까지 빈틈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했다.
나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음 날이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신비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는 상대방과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어머! 내가 그랬다고?”를 반문한다. 그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전에도 똑같은 말과 똑같은 표정으로 말했다고 하니 기억이란 낱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그래서 연기지도 선생님께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우냐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대사는 내가 외우는 것이 반이고, 상대방이 외우게 해주는 것이 반이다. 또 연극은 관객이 외우도록 해주기도 한다”라고.
예를 들어보자. 이번 공연 ‘새(鳥)’ 대사 중에 신참 배역이 하는 말 “···우리는 새(鳥)다 라는 신념, 먹는 것도 새(鳥)로 먹고 굶는 것도 새(鳥)로 굶어야 합니다. 안 그럴 바에는 이 날개 같지 않은 날개 차라리 다 잘라버리지 무엇 하러 달고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왕초 배역이 하는 말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가지 말어”는 신참이 극단적으로 말했기에 그런 대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내 대사의 반을 외우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사를 무조건 외우려고 하지 말고 그림을 연상하면 대사가 잘 외워진다는 것이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어떻게 대사를 외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듣고 또 듣고, 말하고 또 말하기를 반복하면서 대사를 외웠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랬다. 나는 타고난 배우가 아니다. 노력하는 배우다.
나는 앞 사람의 대사를 녹음하고 내 대사를 녹음하여 전철 타고 이동할 때, 집안일 할 때, 시장 갈 때 틈틈이 듣고 또 들으면서 대사를 외웠다. 길 가면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면 어떤 사람은 전화 받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정신이 살짝 나갔나? 라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머리에 큰 꽃을 꽂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사를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대사까지 내 입에서 줄줄 나왔다.
그렇게 대사는 외워졌고, 춤도 어찌어찌 흉내를 내고 이제는 대사와 동작의 하모니가 숙제로 남아있었다.
관련기사
- [김정희 더봄] 포기했던 춤, 연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다
- [김정희 더봄] 닭 연기 하는데 걷기 훈련은 왜 시켜?
- [김정희 더봄] 어렸을 때 추던 개다리춤 실력은 어디가고
- [김정희 더봄] 위세 당당한 양반집 마님으로 산 1시간 20분
- [김정희 더봄] 훌륭한 스승에 멋진 제자들
- [김정희 더봄] 연극 아카데미 학생들과 멋진 공연을 꿈꾸다
- [김정희 더봄] 연기란 뭘까?···걸음마부터 다시 배우다
- [김정희 더봄] '대나무 위 판다'가 깨버린 여우조연상의 꿈
- [김정희 더봄] 어느 중견 배우의 연기 팁···커피나 휴지가 되어보라
- [김정희 더봄] 이런 멋진 배역을 맡게 되다니!
- [김정희 더봄] 공연에서 리허설이 필요한 이유
- [김정희 더봄] 멋진 공연이란?
- [김정희 더봄] 공연 도중 있었던 돌발상황
- [김정희 더봄] 뒤풀이를 해야 하는 이유
- [김정희 더봄] 당신의 인생이 연극이라면 지금 어느 단계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