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임윤찬이 사랑한 단테의《신곡》중 지옥
애욕의 오페라 <외투> 와《신곡》속 러브스토리

이탈리아 출신의 푸치니는 1818년에 피렌체 출신 작가인 단테의 《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3부작 <일 트리티코>(3폭짜리 제단화를 뜻함)를 작곡합니다.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3부작은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로 구성됩니다. 그중 지옥을 상징하는 <외투>는 파리 센강의 보트하우스에서 흔들리는 욕망과 질투의 광기를 외투 속에 감추는 형식으로 풀어낸 1막짜리 오페라입니다. 

그동안 이상기온으로 따뜻했지만, 이제 외투가 꼭 필요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외투는 배려이고 사랑이지요. 외투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거든요.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이들이 추워하면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곤 하며,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넓은 외투를 놀이터 삼아 그 안에서 서로 장난치며 놀기도 하지요. 하지만 오페라 <외투>에서는 외투란 욕정과 분노를 감추는 도구일 뿐입니다.

부인의 외도를 직감하는 남편과 남편 모르게 젊은 남자와의 욕망을 기다리는 아내, 그리고 결국 아내의 연인을 살해하는 질투심··· 인생의 다양한 편린이 요동치며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센강으로 가 볼까요.

푸치니가 단테의 '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곡한 오페라 '외투'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푸치니가 단테의 '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곡한 오페라 '외투'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막이 오르면 센강에서 고된 몸을 이끌고 등짐을 나르는 인부들 그리고 선장 미켈레와 아내 조르제타가 보입니다. 잠시 쉬는 동안에 떠돌이 악사의 연주에 맞춰 인부들과 조르제타가 춤을 추며 여유를 갖지요. 악사는 사랑을 하는 자는 사랑을 위해 죽는다는 ‘미미의 이야기’를 노래하며 떠납니다. 사랑을 위해 죽는다! 왠지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듯하군요.

일을 모두 마친 인부들이 독한 술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삶이 너무 힘들다는 신세 한탄을 하고, 젊은 루이지도 땀을 흘려 겨우 빵을 얻지만 사랑할 시간은 빼앗기고 있다고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합니다. 삶의 무게에 눌린 젊은 청춘의 꿈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조르제타도 물 위에서의 궁색한 생활이 지겨워서, 밤마다 빛나는 별을 찾아 배 위를 서성이고 있답니다. 추억을 공유하는 루이지는 같은 고향 출신이기에 둘은 더욱 공감하는 사이이지요. 젊음과 사랑을 노래하는 두 사람의 눈에 화려한 파리의 조명이 부딪쳐 반짝입니다.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눕니다. 

그때 미켈레가 선실에서 갑판 위로 올라와 일 끝낸 루이지가 아직 가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자, 자신을 루앙에 내려 달라고 말하려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미켈레가 다시 선실로 내려가자, 조르제타는 루이지에게 따지듯 이중창 '왜 루앙으로 가나요?’'를 부릅니다. 이에 루이지는 그녀를 홀로 온전히 차지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고통스럽기에 차라리 떠나겠다고 합니다.

두 남녀는 온전히 같이하지 못함을 애틋하게 느끼는 동시에 서로를 향한 욕정이 넘쳐흐르지요. 루이지는 일단 배에서 떠났다가 한 시간 뒤 안전한 시간에 미켈레가 잠들면 조르제타의 성냥불을 신호 삼아 돌아오기로 약속합니다. 

애욕의 2중창 '왜 루앙으로 가나요?''

잠들지 않은 미켈레가 다시 올라와, 서로 사랑하며 아이와 함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고 조르제타에게 그때로 돌아오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조르제타는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다며 남편의 청을 차갑게 거절하고 선실로 내려가지요. 

미켈레는 변해버린 조르제타가 야속합니다. 자신들 사이에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음을 직감하지요. 요즘 배 위를 서성대는 그녀의 마음을 훔친 녀석이 누구인지를 가늠하며 아내를 ‘더러운 여자’라고 힐난합니다. 음악은 더욱 무겁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흐르고, 극도의 분노에 사로잡힌 미켈레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겠노라고 다짐합니다.

미켈레가 분노를 삭이려고 담배에 성냥불을 붙이자 아뿔싸! 조르제타의 신호로 오인한 루이지가 배에 올라오네요. 미켈레는 그를 잡아 목을 조르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자백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루이지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버립니다.

분노에 휩싸인 미켈레는 그 말을 저주하듯 반복시키고 그때마다 목을 더욱 조이니 결국 루이지는 외마디 "사랑···"을 외치곤 숨을 거둡니다. 외투 속에 감춘 그의 시체를 발견한 조르제타의 외마디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센강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저 흐릅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연대 불명), 귀스타브 도레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연대 불명), 귀스타브 도레

단테의 《신곡》에는 애욕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 연인의 러브스토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제5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연이지요.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중동부 라벤나의 귀족인 귀도의 딸인데, 산마리노 인근 리미니의 귀족인 잔초토와 정략 결혼이 추진됩니다. 그런데 잔초토는 불구의 몸이어서 맞선장에 동생 파올로를 대신 내보냈지요. 억지 결혼에 반대하던 프란체스카는 훈남인 파올로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승낙합니다. 

그런데 결혼 후 첫날밤에 잔초토가 신방에 들어오자 프란체스카는 그제서야 진실을 알게 됩니다. 결혼을 무효로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답니다. 한편 파올로도 프란체스카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들은 결국 잔초토의 눈을 피해 밀어를 속삭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아슬아슬한 사랑은 결국 발각되고 말지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죽음(1870), 카바넬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죽음(1870), 카바넬

질투에 눈이 먼 잔초토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급습하여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목을 찌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애욕을 떨치지 못한 죄로 지옥에 떨어지지요.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다가 프란체스카를 만나 사연을 묻자, 그녀는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어요.”(제 5곡 121~122)라며 울면서 자신들의 애틋한 사연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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