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고요한 선율이 흐르는 파국의 치정 비극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클라이맥스 속 간주곡은 '대부 3'에 사용
'플란더스의 개' 네로가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은 어떤 작품?
온 기독교 세계가 부활절을 기리며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춘분 뒤 보름이 지난 후 첫 일요일을 축일로 정하는데, 말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신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교인들이 주변 사람들과 서로 달걀을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지요.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가 1890년에 초연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부활절에 발생한 사건을 다룬 오페라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촌스러운 기사’란 뜻인 이 작품은, 군대 간 사이 결혼해버린 옛 애인 롤라와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던 남자 투리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새로운 여자 산투차에게 냉정하게 굴다가 결투로 죽기 전에야 기사 흉내 내듯 어설프게 걱정해 준다는 내용이지요.
짙푸른 지중해 위로 넘실대는 파도와 시칠리아의 강렬한 태양에 오렌지가 붉게 익어가는 정경을 담은 듯한 이 오페라에서는 조용한 합창과 서정적이면서 목가적인 간주곡, 가슴 아린 격정의 아리아 등을 품고 있답니다. 특히 부활절이 배경이기에 종교적 엄숙함을 담은 고요한 선율이 흐르다가도 치열한 남녀 간의 긴장감과 처절한 분노 그리고 애잔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해주지요.
시칠리아 해변의 파도만큼 거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의 막이 오르면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아침 시골 마을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니, 이날은 부활절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가며 합창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부르는데, 부드러운 계절과 아름다운 사랑을 찬미하며 신께 감사하는 감동적인 노래랍니다.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투리두는 눈물로 애원하는 산투차를 모질게 밀치고 연인 롤라가 있는 교회로 갑니다. 충격받은 산투차는 바닥에 쓰러져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아뿔싸! 마침 롤라의 남편이 나타납니다. 질투가 치솟은 산투차는 두 사람의 불륜을 고자질합니다.
롤라의 남편이 복수를 외치며 투리두에게 달려가자 산투차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두려워하지만, 이제 비극은 막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관객도 흥분되어 긴장하지요.
이때 두 개의 하프연주에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현악기로 평화로운 정경을 그리듯 간주곡이 연주되는데, 이는 명곡 중의 명곡입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또는 CF에 사용된 이 곡은 <대부 3>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정명훈 지휘 ‘간주곡’
<대부 3>의 주인공 마이클은 아들 안소니의 오페라 첫 공연을 계기로 아들과 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가족애를 다시 느끼고, 아들의 첫 공연이 시칠리아 마시모 극장에서 열립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배신한 조직원이 보낸 암살자의 총격을 받아 딸 메리가 총에 맞아 즉사하지요.
아버지가 죽을 때나 친형을 죽일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마이클. 그러나 사랑하는 딸의 죽음 앞에 그는 소름 돋을 정도로 오열하며 절규합니다. 그 장면에서 배경에 흐르는 음악이 이 오페라의 간주곡이지요.
십자가에 매달리거나 부활하는 장면을 그린 회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중 옛 플랑드르 지방인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영국인 위다의 소설임에도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으로 더 알려진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평생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지만 인정 많고 선한 네로와 폭행당하고 버려진 개 파트라슈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화가를 꿈꾸던 네로가 대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어했지만 입장료가 없어서 보지 못하다가 죽기 직전에 그림을 보며 행복해하지요.

죽어가는 네로에게 감동을 준 루벤스의 작품은 성당의 제단화 ‘십자가를 세움’(위)과 ‘십자가에서 내림’(아래) 두 작품입니다.
위 작품은 중앙에 위치한 제단화로서 예수가 당한 수난의 정점을 보여주지요. 예수를 매단 십자가를 골고다의 언덕에 세우려고 근육을 모아 용쓰는 사람들과 달리 고통을 담담히 견디는 성스러운 예수의 몸에는 고요한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좌상향의 대각선 구도로 십자가를 세우는 역동성과 함께 긴장감을 잘 살리고 있지요.
위 작품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인, 아래의 ‘십자가에서 내림’ 역시 세 폭 제단화의 중앙을 장식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축 늘어진 머리와 푸르뎅뎅하여 창백하게 보이는 예수의 몸이 온몸으로 예수를 받치는 사도 바울의 붉은 핏빛 의상과 대비되어 강렬한 격정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위 작품이 예수 외에는 인물들의 얼굴 묘사를 피하고 있는데 반해 아래 그림에서는 성모 마리아(왼쪽 푸른 옷) 등 다양한 표정으로 애통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초상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먹구름 낀 하늘에 노을이 비추는 풍경화와 함께 빵과 물의 정교한 정물화까지, 플랑드르 회화와 당시 바로크 미술의 요소가 조화롭지요.
수년간 이탈리아에 머무르며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에게 영향을 받은 루벤스는 이처럼 강렬하고 색채와 역동성을 보여주는 인상 뚜렷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두 작품의 제목을 구분하는 하나의 단서는 예수의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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