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데이' 이벤트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
아리아와 명화가 그린 '사랑'의 모습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을까마는 그래도 2,3월은 고백하기에 좋은 때이지요. 로마황제의 명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인을 집례했다가 순교한 성 발렌티누스의 기념일이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며, 특히 여성이 초콜릿 등 선물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과업계의 상술로 인한 행사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들은 한술 더 떠,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까지 챙기고 있지요. 이렇게 이벤트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답니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영원한 관심사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과 로맨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지요. 가슴 먹먹하면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다소 야하면서도 아름다운 대사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전개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입니다. 이 희곡을 원작으로 삼아, 샤를 구노가 작곡한 프랑스어 오페라가 <로메오와 줄리에트>입니다.
두 가문의 오랜 갈등을 암시하는 짧은 서곡이 흐르고 막이 오르면, 카퓰레트家의 줄리에트 생일을 축하하는 무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몬테규家의 로메오도 짝사랑하던 처녀 로잘린데를 찾아서 친구와 함께 가면을 쓰고 참석했지요. 그런데 정작 로메오는 줄리에트를 보고는 한눈에 반합니다.
꿈속에 살고 싶어요
그녀는 경쾌한 왈츠풍으로 아리아 ‘꿈속에 살고 싶어요’를 부르며, 자유롭게 살고픈 자신의 바람을 노래합니다. 이후에 목숨을 건 치열한 사랑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미난 일상에 빠진 어린 소녀가 꿈꾸듯 노래하는 발랄한 아리아랍니다.
하지만 로메오가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스러운 천사’ 운운하며 열렬하게 구애하자 줄리에트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로메오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그 뒤에 로메오의 정체를 알고는 침통해하지요.

로메오가 어둠을 틈타 줄리에트의 정원에 숨어들면서,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한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발코니 신이 시작됩니다.
발코니에 나타난 줄리에트가 밤하늘의 푸르른 별빛을 보며, 그가 원수 집안이지만 그를 미워할 수 없다며 사랑하는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녀의 속내를 알아챈 로메오가 자신을 드러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아름다운 달빛에게 애원하며, 별빛 속에서 서정적인 선율로 그들의 사랑을 노래하고 다짐하지요.
줄리에트는 자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신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자고 로메오에게 제안하지요. 마침내 두 사람은 로랑 수사의 도움으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식 후 두 가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로메오의 친구가 죽고, 로메오는 줄리에트의 사촌인 티발트를 죽이게 되지요. 이 일로 로메오는 추방되고 부친은 줄리에트에게 파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합니다.
줄리에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수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수사는 마시면 가사상태가 되는 약을 줄리에트에게 건네며 깨어난 뒤에 로메오와 함께 떠나는 계획을 짜줍니다. 이러한 계획이 로메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줄리에트가 죽었단 소리를 들은 로메오는 절망하여 즉시 베로나로 돌아오지요.
야밤에 몰래 줄리에트의 무덤을 찾은 로메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절망하여 음독하는데요. 이때 오페라에서는 원작과는 달리 비극에 빠진 연인을 위로하려는 듯 로메오와 줄리에트를 서로 만나게 해준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그의 귀에 “여기가 어디지?”라는 줄리에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습니다. 아, 꿈인지 생시인지! 그녀의 손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녀가 살아난 것이에요. 이럴 수가! 신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그녀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과 같은 속도로 로메오의 정신은 희미해지지요. 깨어난 줄리에트는 신부의 계획대로 같이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로메오의 손을 이끕니다. 그렇지만 이미 전신에 독이 퍼져 버린 로메오를 안고 오열하던 줄리에트는 그의 단도를 자신의 가슴에 입맞춤하듯 찔러 넣어 함께 죽음으로써 그들의 사랑과 로맨스를 완성합니다.
죽음으로 하나되는 피날레
비극으로 마무리된 그들의 로맨스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화가들이 그 사랑의 순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자주 모티브를 얻었던 스웨덴의 크론베르크는 ‘발코니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렸습니다. 배경은 구름 사이로 달빛이 비추는 은밀한 발코니입니다. 목숨을 걸고 막 발코니에 오른 로미오가 줄리엣과 숨막히는 키스를 하는 장면을 포착했는데, 유려한 곡선을 드러낸 자세로 줄리엣은 나른하게 로미오와 숨결을 나누고 있지요. 성글은 달빛은 그들을 비추는 동시에 숨겨주고 있고, 주위의 꽃과 나뭇잎도 숨죽이는 듯합니다.

이에 비해 명확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를 표현한 영국 화가인 브라운이 보여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소 느낌이 다릅니다.
배경은 역시 발코니인데, 두 사람의 표정과 자세도 은밀하거나 숨죽이고 있지는 않지요. 주변의 꽃들도 수줍음을 털고 화사하게 피었답니다. 멀리 여명이 밝은 것을 보니, 사랑을 나눈 뒤 헤어지는 순간을 그린 듯합니다.
로미오는 발코니 난간 밖으로 한 발을 걸친 채 줄리엣과 아쉬운 키스를 나누고, 그녀는 작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인 채 깍지 낀 두 손으로 그를 붙들고 있습니다. 로미오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카퓰레트家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속히 떠나야 하는 급한 마음에 손을 뻗어 갈 길을 가리키고 있지요.
‘죽음도 두렵지 않으니/사랑은 천만 개의 불꽃으로 온다’는 양광모의 시처럼 열정과 비극이 조합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득하지만 열정 가득했던 우리의 첫사랑도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지지요.
관련기사
- [한형철 더봄] '피가로의 결혼'과 욕망을 자극하는 편지
- [한형철 더봄] 버림받은 연인, 죽어야 받을 수 있는 애처로운 위로
- [한형철 더봄] 로마 여행 - 우리의 별이 된 화가와 아리아
- [한형철 더봄] 단테의 '신곡'과 푸치니 오페라 '외투'의 러브스토리
- [한형철 더봄] '라 트라비아타'의 이중 도덕과 회화에서의 관음증
- [한형철 더봄] 부활절 배경 오페라와 회화 그리고 '대부 3'
- [한형철 더봄] 여자가 한을 품으면···배신에 자식을 죽인 여인
- [한형철 더봄] 사람들은 불륜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사랑’이에요
- [한형철 더봄] 천일 왕비의 영광과 치욕, '안나 볼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