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운명에 휘둘린 오이디푸스 왕과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운명은 진정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요? 테베의 오이디푸스 왕은 ‘태어날 아기가 어머니와 관계를 갖고 아버지의 피를 묻힌다’는 예언을 회피하는 인생을 살지만 결국 실현됩니다. 어머니와 관계하여 아이까지 낳지요.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자결하고, 그에 충격받은 오이디푸스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찌르고, 자신의 왕국인 테베에서 추방됩니다.
오이디푸스와 같은 지독한 운명을 그린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1862년 초연)은 피하려 애씀에도 결국엔 비극적인 운명에 맞닥뜨리는 인간 그리고 그 파국의 운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장면에 처연하게 울려 퍼지는 목관의 선율이 바로 ‘운명의 테마’이며, 클로드 베리 감독의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에도 반복적으로 사용되지요.
오보에를 필두로 여러 목관악기가 교차하며 ‘운명의 테마’를 연주하고 막이 오르면, 레오노라가 그녀의 방에서 연인 알바로와 미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때 레오노라의 아버지가 칼을 들고 나타나 자기 딸을 유괴하려는 알바로를 처벌하겠다고 하지요. 알바로는 결백을 주장하면서 순응의 의사를 표하고 그가 들고 있던 권총을 땅에 던지는데, 아뿔싸! 순간 뜻하지 않게 발사된 총탄에 맞아 레오노라의 아버지가 숨지고 맙니다. 놀란 두 사람은 도망치고, 그들은 잔인한 운명의 늪에 빠지게 되지요.
돈 카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들을 찾아다닙니다. 도망치다가 알바로의 손을 놓친 레오노라는 그런 오빠를 피해 수도원의 암굴에 은밀히 숨어서 신께 평화를 갈구하며 기도하지요.
아리아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레오노라를 잃은 알바로는 그녀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연인을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살다가 죽기만을 소망하며 지냅니다. 우연히 알바로의 정체를 확인한 카를로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지요.
알바로는 운명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 아버지를 죽이지도 동생을 유혹하지도 않았음을 해명합니다.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말하지요. 카를로는 동생까지 모두를 죽일 것이라며 결투를 압박합니다. 다행히 주위의 만류로 결투를 면한 알바로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알바로가 이름을 바꾸고 수도 생활을 한 지도 5년여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카를로가 그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찾아와 또다시 결투를 신청합니다. 알바로는 결투를 피하며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자고 호소하지요. 그러나 카를로는 알바로의 피만이 자신의 더럽혀진 명예를 씻을 수 있다며 결투를 압박합니다.
두 사람의 팽팽한 긴장은 2중창 ‘알바로, 숨어도 소용없다’에서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오보에와 플루트 등의 처연한 선율을 배경으로, 알바로는 신께 기도하면서 카를로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거듭 반복하여 간청하지만 카를로는 그를 겁쟁이라고 몰아붙입니다. 그의 혈통을 모욕하고 급기야 뺨을 때리자, 격분한 알바로는 결투를 받아들입니다. 알바로의 자제력이 무너진 거지요.
2중창 ‘알바로, 숨어도 소용없다’
결투로 상처입은 카를로를 위해 알바로가 동굴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합니다. 수도 중이던 레오노라는 연인 알바로와 칼에 찔린 오빠를 동시에 만난 거예요. 레오노라를 본 알바로도 깜짝 놀랍니다. 죽은 줄 알았던 두 사람이 해후한 거지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쓰러져 있는 오빠를 발견하고 그녀가 다가가는 순간 카를로는 죽기 전 혼신의 힘을 다해 동생을 찌릅니다. 사랑하는 레오노라를 다시 만난 그 순간에 그녀와 그녀의 오빠가 죽다니… 지독한 복수, 잔인한 운명이 완성되어 버렸네요. 세 사람의 처절하고 끈질긴 운명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대표작으로 극찬한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많은 화가들의 비탄과 영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관련된 작품도 많습니다. 조셉 블랑의 위 작품은 예언을 피하려고 친부로 알고 있는 코린토스의 왕을 떠난 오이디푸스가, 길에서 시비가 붙어 아버지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살해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의 첫 번째 운명이 실현된 극적인 순간이지요. 전체적으로 붉은색으로 채색하여 잔인한 운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친부를 죽인 뒤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저주로부터 구합니다. 그 보상으로 왕비와 결혼하고 왕이 되지요. 자녀 넷을 낳아 행복하게 지내던 그가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운명이 완성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 눈을 스스로 찔렀으며,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 속에 테베에서 추방되고요. 처참한 상태인 그를 딸 안티고네가 효심을 다해 부양하지요.
코쿨라의 위 작품은 추방된 오이디푸스와 불행한 아비를 부양하는 안티고네를 그렸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다가오는데, 오늘은 어디에서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을까요? 눈은 멀고 지팡이에 의지하는 누추한 행색이지만 붉은 덧옷을 감싼 그는 오히려 숭고한 고행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애처롭게 아비를 바라보는 딸 안티고네도 단정하고 고결하게 흰 치마와 노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화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신들의 장난에 희생된 오이디푸스를 위로하려는 마음이었나 봅니다.

